‘150조’ 국민성장펀드 출범…1호 기금 계획도 아직 깜깜
입력 2025.12.10 07:36
수정 2025.12.10 08:24
산은 기금채 의존도 높아지면 채권시장 왜곡 우려
1호 투자처보다 ‘150조’ 재원 마련 방식이 핵심 변수
학계 “수요 검증·시장 영향 평가 선행돼야 정책 효과”
150조원 규모 국민성장펀드를 담는 첨단전략산업기금 설치 근거법이 10일 시행되면서 공식 출범이 임박했지만, 정작 기금 조성 방식은 여전히 불확실성이 짙다. ⓒ데일리안 AI 삽화 이미지
150조원 규모 첨단전략산업기금 설치 근거법이 10일 시행되면서 국민성장펀드가 사실상 출범했지만, 기금 조성 방식은 여전히 불확실한 상태로 반쪽 출발을 하게 됐다.
정부는 AI·반도체 등 메가 프로젝트에 수십조원을 투입하겠다는 청사진을 내놨으나, 막대한 재원을 어떤 방식으로 조달할지, 대규모 특수채 발행이 채권시장과 금리에 어떤 충격을 줄지에 대한 논의는 출범 전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출범이라는 개념이 사람마다 다르게 이해될 수 있다”며 “상징적 출발일 뿐이고, 실제 ‘출범’은 기금운용심의회가 꾸려져 개별 사업에 대한 승인 절차가 시작돼야 의미가 생긴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금운용심의회 구성 시점조차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법 시행 일정에 쫓기듯 사업 시작이 공식화 됐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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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산업은행법 개정안 제29조의8은 첨단전략산업기금 재원을 ▲첨단전략산업기금채권 발행 자금 ▲정부·한국은행 차입금 ▲지원기업·지원회사를 통한 회수금 ▲운용수익 ▲산은 및 금융회사 출연금 ▲민간 출연·기부금 등으로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중 실질적으로 비중이 큰 축은 산은이 발행하는 기금채와 정부 보증을 통한 조달이다. 한국은행 차입까지 허용한 만큼, 구조상 기금은 ‘부채성 조달’이 전면에 배치된 형태다.
문제는 이미 시장에서 특수채 공급 확대에 대한 경고음이 반복돼 왔다는 점이다.
국민성장펀드 논의 초기부터 산은채·수은채 등 정책금융 특수채가 연간 수조~수십조원씩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면서, 국고채·회사채로 향할 자금이 특수채로 빨려 들어가 채권시장 수급을 왜곡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
정부 보증에 기반한 AAA급 채권이 대거 쏟아질 경우, 민간 기업이 조달하는 회사채의 금리와 스프레드가 더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도 금융권의 공통된 문제의식이다.
그럼에도 아직 국민성장펀드 1호 투자처는 물론 구체적인 기금채 발행 계획까지 논의되기 어렵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통화에서 “여러 개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지만, ‘1호 투자처’는 아직 최종 결정된 바 없다”며 “언론 보도에서 검토 대상을 앞서 1호로 규정하는 바람에 실제 첫 투자처가 바뀔 수도 있는 상황이다. 구체적으로 결정된 것은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전략위원회는 어디까지나 자문기구로, 개별 투자 건을 결정하는 기구가 아니다”라며 “국민성장펀드의 진짜 핵심은 기금운용심의회가 꾸려지고, 이 심의회를 통해 개별 프로젝트에 대한 승인과 투자 집행이 이뤄지는 단계”라고 설명했다.
그는 “법 시행으로 이제 기금운용심의회를 언제든 구성할 수 있는 법적 기반이 생긴 수준”이라며 “심의회 인선과 초기 프로젝트 구성은 아직 구체 일정이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이처럼 출범 일정만 앞서고 정작 기금 조성 계획이 명확하지 않으면, 150조원이라는 규모 자체가 정책적 상징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국채, 특수채, 회사채 발행이 동시에 늘어나는데 수요 주체는 크게 늘지 않으면 채권 가격은 떨어지고 금리는 올라갈 수밖에 없다”며 “결국 기업과 정부의 자금조달 비용이 함께 뛰는 ‘구축 효과’(crowding-out)가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안 교수는 “수십조원 규모의 기금채를 누가 어떤 조건으로 떠안을지에 대한 설계 없이 규모만 앞세우면, 시장금리 상승과 조달 여건 악화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민성장펀드가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을 높이려는 정책이라면 기금채 발행 규모·국채 발행과의 조합·은행·기관투자가 부담 수준까지 포함한 정교한 조달 로드맵을 먼저 제시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