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ESS 전환·공급망 내재화…체질 개선 ‘잰걸음’
입력 2025.04.23 14:48
수정 2025.04.23 15:09
북미 중심 ESS 수요 확대…셀 3사 기술·공급처 동시 확보
ESS 수출 성장·中 배터리 규제 속 국내 기업 '전략 다각화'
포스코퓨처엠, 구형흑연 내재화…'탈중국' 밸류체인 구축

국내 배터리 산업이 전기차 수요 둔화와 공급망 다변화 압력 속에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삼성SDI·SK온 등 배터리 3사는 에너지저장장치(ESS) 중심으로 생산체제를 바꾸며 전기차 의존도를 낮추고 신시장 확보에 나섰다. 포스코퓨처엠 등 소재 기업들도 핵심 원료 내재화로 공급망 전략을 다각화하고 있다.
23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셀 제조사들은 전기차 배터리 캐즘(일시적 수요 정체) 장기화와 중국산 저가 공세를 넘어서기 위해 ESS 전환에 집중하고 있다. 북미를 중심으로 ESS 수요가 급증하면서 전기차 라인을 ESS 전용으로 바꾸는 작업이 본격화되는 분위기다.
이와 함께 니켈·코발트·망간 등 삼원계(NCM·NCA) 배터리를 육성해온 기술력을 바탕으로 중국이 장악한 저용량·고안전성 리튬인산철(LFP) 양극재 국산화에도 뛰어들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북미와 유럽을 중심으로 ESS 대응 체제를 정비 중이다. 미국 미시간과 폴란드 브로츠와프 EV 생산라인 일부를 ESS 전용으로 전환하고 있으며 미시간 홀랜드 공장에는 ESS 생산라인을 신설해 하반기부터 LFP 기반 제품 양산에 돌입할 계획이다. 미국 델타 일렉트로닉스와 4기가와트시(GWh) 규모의 주택용 ESS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공급처 확보에도 속도를 올리고 있다.
삼성SDI는 대형 수주를 기반으로 생산 전환에 나섰다. 미국 최대 전력사 넥스트에라에너지에 ESS용 NCA 배터리를 납품 중이며 이 중 약 4300억원 규모는 11월까지 우선 공급될 예정이다. 회사는 ESS용 LFP 배터리 개발과 함께 전기차 배터리 일부 생산능력을 전환해 전체 ESS 생산 비중도 20% 이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SK온은 사업 구조 자체를 ESS 중심으로 개편하고 있다. 지난해 말 ESS 조직을 사장 직속으로 격상한 뒤 제품 개발부터 수주까지 전 단계를 아우르는 체계를 갖췄다. 미국 IHI테라선솔루션스와의 협력 아래 북미 수출 확대도 추진하고 있다. 조지아주 전기차 배터리 공장의 유휴 설비를 ESS 전용 LFP 생산라인으로 전환하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미국 ESS 수요는 배터리 가격 하락과 신재생에너지 확산,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에 힘입어 빠르게 늘고 있다.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 수출이 감소한 자리를 ESS 수출이 메우고 있는 형국이다. 2023년 전기차용 리튬이온 배터리의 대미 수출은 16억5000만 달러에서 4억5000만 달러로 급감했지만 같은 기간 ESS용 배터리는 17억5000만 달러에서 21억9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보호무역 기조가 강화되고 있는 만큼 미국 내에서 중국산 배터리의 입지가 흔들릴 가능성도 주목되고 있다. 현재 중국은 전 세계 배터리의 약 80%, 리튬이온 배터리의 약 75%를 생산하며 전기차와 ESS 시장에서 압도적인 점유율을 유지 중이다.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시장을 장악해온 중국의 위상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우려 외국기관’(FEOC) 지정 등 강도 높은 규제를 연이어 도입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 공급망 자립도 국내 산업계의 핵심 과제로 떠올랐다. 기업들은 중국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소재 내재화 전략을 강화하고 있는 상황이다.
포스코퓨처엠은 음극재 핵심 소재인 구형흑연의 국산화를 추진하고 있다. 구형흑연은 배터리 4대 소재 중 하나인 음극재의 중간 원료로, 그동안 99% 이상을 중국에 의존해왔다. 회사는 3961억원을 들여 구형흑연 생산을 위한 ‘카본신소재주식회사(가칭)’를 설립하고 세종공장에서 천연흑연 기반 음극재 양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포스코그룹과 현대차그룹은 전기차용 배터리 소재 공동 개발에도 나설 것으로 보인다.
박소희 산업연구원 연구원은 “미국의 대중국 배터리 공급망 디커플링(탈동조화)이 가속화되면 국내 기업은 미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에서 수혜를 볼 수 있다”면서 “다만 궁극적으로는 기술 경쟁력에 기반해 글로벌 배터리 공급망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한 중장기적인 대응이 중요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