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원, 조작·왜곡 판단에 통계 신뢰 시험대…불씨 여전
입력 2025.04.21 14:52
수정 2025.04.21 15:35
근거 없는 표본가격 상향에도 “문제 없다”
감사원 “통상적인 조정으로 보기 어려워”
조사 가격 공개 등 신뢰 확보 장치 마련해야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통계 등 국가 통계를 왜곡했다는 내용이 담긴 감사원의 최종 결과 보고서가 나오면서 한국부동산원의 통계 신뢰가 시험대에 오르게 됐다.
통계 왜곡 판단에 따른 파장과 별도로 부동산원이 외압으로 인해 표본을 입맛대로 손질하는 통계 조작을 범했음에도 통상적인 통계 처리라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어 향후 재발 가능성을 남겨 놓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21일 감사원의 ‘주요 국가통계 작성 및 활용실태’ 감사보고서 전문에 따르면 부동산원은 청와대와 국토교통부의 요청으로 지난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102차례에 걸쳐 집 값 통계를 조작했다. 이 과정에서 부동산원은 표본 가격을 조작하거나 표본을 전면 교체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른바 ‘표본가격 현실화’라고 일컫는 통계 기법을 사용한 것으로 부동산원은 주택 가격 변동률을 계산하는 기초 데이터인 매매가격 지수(표본가격)을 한꺼번에 끌어올렸다.
실제 거래가가 올랐는데 표본에 반영된 가격은 그대로면 통계에 왜곡이 생겨 표본가격을 조정했다는 것이 그 이유다. 또 과거 가격까지 올려 가격 상승률을 보합 또는 마이너스 상태로 관리했다.
이에 따라 지난 2020년 1월 2주차 서울 잠실 엘스 아파트(전용 85㎡)의 실제 가격은 전주 대비 19.7% 상승했으나 발표된 통계에서는 0.25%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외에 반포래미안퍼스티지(11.5%→0%)·은마아파트(4.5%→0%)·마포래미안푸르지오(15%→0%) 등 주요 단지의 가격 변동률이 왜곡됐다.
표본가격을 조정할 때는 수 개월간 점진적으로 시장가 반영을 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부동산원은 특정 시점까지 한 번에 끌어올린 것이다.
해당 시점은 문 대통령 취임 2주년, 부동산 대책 직후 등 정치적 일정과 맞물렸다는 것이 감사에서 확인됐다. 표본가격을 한꺼번에 올리면 지수가 급등하니 이전 가격도 올려서 변동률을 0%로 만들었다. 통계를 변경하려면 ‘사전 공표’가 원칙인데도 한 번도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부동산원은 감사 당시 통계청으로부터 표본 변경에 대한 변경 승인을 받아 놓은 상태였다며 절차상으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감사원은 부동산원이 정부 방침대로 통계를 조작했다고 판단했다. 감사원은 보고서에서 “표본가격을 일괄 상향하게 된 동기는 현장조사 과정에서 오차가 발생했기 때문이 아니라 지속·반복된 변동 률 왜곡에 따라 표본가격이 시장가격보다 현저히 낮게 작성·관리됐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부동산원은 통계지수가 급격히 상승하는 것을 숨기기 위해 담당부서에서 매주 및 매월 매매가격지 수를 산출할 때마다 주택동향조사 전산시스템을 사용하지 않고 별도 프로그램을 통해 수작업으로 지수를 재산출한 점이 확인됐다”며 “전산 시스템으로 자동산출되는 매매가격지수와 공표된 매매가격지수가 큰 차이를 보이는 등 정상적인 연쇄지수 사용이라 볼 수 없다”고 반박했다.
가상의 매매가격지수를 만들고 기준시점을 변경한 실무자료의 존재가 확인됐기 때문에 통계청이 승인한 통상적인 방법을 사용했다는 부동산원의 주장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못 박았다.
이에 부동산원 관계자는 “표본 일괄상향 조정업무는 통계적 기법으로 연쇄지수 사용은 통계청 승인 내용”이라면서도 “통계 신뢰성 제고를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이번 사태로 정부 통계에 대한 국민적 불신도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집값 통계 조작은 국민의 삶과 시장 질서까지 흔들 수 있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부동산원의 주택가격동향조사는 KB부동산 등 민간 기관과 결과치가 엇갈리는 경우가 종종 발생해 이전부터 신뢰성 논란이 있어 왔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부동산 정책의 설득력과 실효성이 약화될 수 있는 만큼 통계 신뢰를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창무 한양대학교 교수는 “통계 입력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다든지, 조사에서 명백한 오판이 있었다면 표본을 바꿀 수야 있겠지만 아무런 근거가 없는 상황에서 과거 조사 가격을 20%씩 갑자기 올린다는 것은 비도덕적인 행태”라고 일갈했다.
이어 “부동산원은 주택가격동향조사 결과만 작성·공표하고 있으나 표본 아파트명, 표본주택가격 등 구체적인 통계자료는 공개하지 않고 있어 의혹만 더 키우고 있다”며 “통계의 독립성과 신뢰성을 보장 받는 최선의 방법은 조사된 가격을 공표하는 것 뿐”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감사원은 대통령비서실, 국토부, 부동산원 등 관계자 12명을 직권 남용 및 통계법 위반 등의 혐의로 검찰에 수사 요청했다. 김현미 전 국토부 장관, 김상조·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 등 11명은 이미 기소돼 재판이 진행 중이다. 이번 결과에 대해 국토부와 부동산원은 별도 입장 자료를 내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