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석의 견위수명(見危授命) [정국 기상대]
입력 2025.03.18 00:10
수정 2025.03.18 00:12
야당 각종 공세·비상계엄·탄핵 정국 속
대통령 비서실 수장으로서 버팀목 역할
"정 실장, 혼란 속 살신성인 자세로 지켜"

헌법재판소의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선고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의 '견위수명(見危授命·나라가 위태로움에 처하면 목숨을 바친다) 보좌'가 돋보인다는 평가가 정치권 안팎에서 나온다.
지난해 4월 22일 대통령 비서실장을 맡은 이후 야당의 각종 특검법·탄핵 공세, 12·3 비상계엄 사태, 탄핵 국면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정 실장은 엄연히 현직 대통령의 지위에 있는 윤 대통령의 곁을 지키는 소임을 묵묵히 다하는 모습이다. 또 어수선해진 대통령실의 기강을 다잡으며 참모들이 각자 위치에서 맡은 바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국정 공백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대통령 비서실 수장으로서 버팀목이 되고 있다는 평가다.
여권 관계자는 "윤 대통령 탄핵심판 변론에 증인으로 출석한 복수의 전현직 국무위원들의 발언을 보면, 윤 대통령은 정 실장에게 비상계엄과 관련한 어떤 정보도 미리 알려주지 않았던 것 같다"며 "비서실장 입장에서 보면 배신감까지 느꼈을 텐데, 나라가 혼란스러우니 살신성인의 자세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검찰 조사 과정에서 정진석 실장이 긴급히 소집된 국무회의장으로 들어올 때의 상황을 자세히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 실장이 들어오면서 조 장관에게 "왜 이렇게 모였느냐"고 물어 윤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하려 한다고 하자, 이를 들은 정 실장이 "무슨 일이 터진 것도 아닌데 국민들께서 납득하시겠느냐"라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도 경찰 조사에서 "정 실장이 (조태열 장관으로부터 설명을 듣자) '지금이 어느 때인데 비상계엄이냐'라면서 집무실로 들어갔다"며 "나와서는 '설득이 안된다'고 말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검찰 조사에서 "정 실장이 '비상계엄은 안된다'고 대통령에게 말했다"며 "대통령은 '나를 설득하려 하지 말라'고 했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어찌 보면 정 실장 본인도 12·3 비상계엄 사태의 피해자임에도 정 실장은 지난 7일 법원의 윤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이 나온 순간부터 실제 석방이 이뤄진 8일까지 이틀 연속 서울구치소를 찾아 구치소 정문에서 윤 대통령이 석방돼 나오기를 기다렸다.
윤 대통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에 체포되기 전날인 지난 1월 14일엔 윤 대통령의 처지를 '고성낙일'(孤城落日·남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사정)에 빗대면서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로) 직무가 중지됐다 해도 여전히 국가원수이자 최고 헌법기관인 윤 대통령을 마치 남미의 마약 갱단 다루듯 몰아붙이고 있다"며 불구속 수사를 촉구하는 내용의 대국민담화를 전격 발표했다.
정 실장은 또 지난해 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나 국정감사에 출석했을 때에도 윤 대통령의 해병대 채 상병 사건 관련 의혹, '윤 대통령·명태균 녹취록' 등을 고리로 한 야당의 파상공세를 노련하게 방어했다.
지난해 7월 한동훈 대표 체제 출범 후 원만하지 않았던 당정 관계 회복을 위해 막후에서 고군분투하기도 했다.
여권 관계자는 "정 실장은 주요 정치적 국면 때마다 '견위수명'이라는 사자성어를 종종 언급하는 것으로 안다"며 "자신이 즐겨 쓰던 사자성어를 몸소 실천하고 있는 모습"이라고 했다.
실제로 정 실장은 지난 2월 서울구치소에 구속 수감돼 있는 윤 대통령을 접견한 뒤 대통령실 직원들에게 '견위수명의 자세'를 당부했고, 지난 2022년 9월 '정진석 비대위'가 출범했을 때와 2016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로 선출됐을 때 국립서울현충원을 참배한 뒤 방명록에 이 사자성어를 쓰며 각오를 다진 바 있다.
충남 공주 태생인 정 실장은 6선 의원과 충남지사를 지낸 고(故) 정석모 전 의원의 아들로, 15년 기자 생활을 마감한 후 16대 총선 당시 충남 공주·연기 지역구에서 당선돼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이명박정부 시절 청와대 정무수석, 박근혜정부 시절 새누리당 원내대표, 현 정부 출범 후엔 비상대책위원장 등을 맡았었다. 국회부의장과 국회사무총장도 역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