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명성황후’의 변화와 한계 [D:헬로스테이지]
입력 2025.03.15 08:50
수정 2025.03.15 08:51
3월 30일까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30년 역사의 한국 대표 창작 뮤지컬 ‘명성황후’가 돌아왔다. 3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화려한 무대와 캐스팅으로 관객을 유혹하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풀지 못한 숙제도 남아있다.

이문열 작가가 1994년 발표한 희곡 ‘여우사냥’을 원작으로 1995년 초연된 이후 국내에서 꾸준히 공연된 ‘명성황후’는 2000년 전후로 뉴욕과 런던에서도 상연되며 한국을 대표하는 창작 뮤지컬로 자리매김했다. 이번 시즌 공연을 통해 창작 뮤지컬 역사상 최초로 국내 누적 관객 200만명 돌파라는 새로운 이정표를 세우기도 했다.
작품은 임오군란(1882)과 명성황후 시해사건(1895)을 배경으로 한 대표적인 팩션(faction·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허구) 뮤지컬이다. 볼거리는 풍성하다. ‘명성황후’의 대표적인 무대구조로 꼽히는 회전 무대와 LED 패널을 활용한 영상 효과는 조선 왕실의 웅장함과 격동의 시대를 시각적으로 구현해낸다. 무과시험과 명성황후의 수태굿 장면도 등 전통공연에서 볼 수 있는 퍼포먼스 등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도 30주년 공연의 빼놓을 수 없는 관전 포인트다. 김소현과 신영숙은 뛰어난 가창력과 섬세한 연기로 관객을 사로잡고, 새롭게 합류한 차지연 역시 묵직한 울림으로 극을 이끌고 있다.
하지만 외적 화려함과 별개로 작품의 한계도 분명하다. 대표적으로 명성황후와 민씨 일가의 부정부패를 단순히 작품 속에서 백성들과 일본인들, 혹은 대원군 세력에 의해 대사로 표현하는 것이 그렇다. 작품은 여전히 왕실의 이야기와 열강들의 힘겨루기 속에서 어느 나라를 동맹으로 선택해야 할지 고뇌하는 조선이라는 나라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그 속에서 역사적 하위주체인 ‘백성’은 사실상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마지막 넘버 ‘백성이여 일어나라’는 ‘조선의 무궁’을 위해 ‘백성’의 용기와 지혜를 모으고 ‘목숨’을 걸고 맞서라고 말한다. 넘버 자체가 매우 웅장하지만, 그 내용까지 들여다보면 사실상 큰 울림을 주긴 힘들다. 이야기하려는 메시지가 앞선 서사에서 제대로 전달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30년을 거쳐온 만큼 ‘명성황후’는 분명 성장해왔다. 사실 작품은 초연부터 역사 왜곡 논란이 일었다. 명성황후를 너무 미화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었다. 대사 없이 노래만으로 극을 이어가는 ‘성 스루 뮤지컬’인 탓에 서사가 약하다는 말도 나왔다.
물론 여전히 비판할 지점들이 남아있지만, 시즌을 거듭하며 넘버와 대사를 보완하고 약점을 극복한 것처럼 작품의 본직적 가치를 높이면서 진정한 ‘한국 창작뮤지컬의 자존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3월30일까지 세종문호회관 대극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