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뭔일easy] SUV만 팔거니? 세단의 끝을 잡고...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5.02.01 06:00
수정 2025.02.01 06:10

말리부, SM6, K3…국내 시장 '세단 퇴출' 가속화

넓은 실내공간, 다양한 활용도 앞세워 SUV '대세' 자리 잡아

세단 특유의 승차감, 주행 질감 선호층에는 아쉬운 추세



산업계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혹은 필연적으로 등장한 이슈의 전후사정을 살펴봅니다. 특정 산업 분야의 직‧간접적 이해관계자나 소액주주, 혹은 산업에 관심이 많은 일반 독자들을 위해 데일리안 산업부 기자들이 대신 공부해 쉽게 풀어드립니다.



AI 이미지.

#포지티브적 해석 : 사는 자는 쓸모 많아 좋고, 파는 자는 비싸게 팔아 좋고.

#네거티브적 해석 : "여보, 뒷좌석에서 김치 냄새 나..."


한때 ‘승용차의 정석’이었던 세단이 하나 둘씩 사라지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자동차를 생산해 판매하는 완성차 5사 중 한국GM은 쉐보레 말리부를 지난해 말 단종하면서 라인업에서 세단을 아예 지웠고, 르노코리아도 마지막 세단이었던 SM6 생산을 지난달부터 중단했습니다.


한국GM은 한때 소형부터 대형까지 세단 풀 라인업을 갖췄었습니다. 아베오(소형), 크루즈(준중형), 말리부(중형), 알페온(준대형) 등이 모두 각 차급에서 꽤 높은 인기를 얻었었죠. 알페온이 단종된 이후에는 비록 수입 모델이긴 하지만 임팔라를 들여와 준대형 세단 시장에서 현대차 그랜저의 아성을 위협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 둘씩 단종되더니 말리부를 마지막으로 SUV(스포츠유틸리티차량) 라인업만 남게 됐습니다.


르노코리아도 삼성자동차와 르노삼성 시절 세단으로 이름을 날렸던 회사입니다. 1998년 닛산 세피로를 베이스로 개발해 출시한 1세대 SM5는 질리지 않는 디자인과 뛰어난 내구성으로 큰 사랑을 받았으며, 2005년 1월 단종됐음에도 지금까지 도로에서 종종 눈에 띕니다. 생산된 지 20년 넘은 차가 현역으로 뛸 정도면 내구성은 알아줘야겠죠.


르노삼성 시절에는 SM5 외에도 SM3(준중형), SM7(준대형)까지 출시하며 BMW 3‧5‧7 시리즈처럼 차급별 구색을 맞췄습니다. 나중에는 중형 세단이면서도 경쟁차들과 차별화하겠다며 숫자 6을 붙인 SM6도 내놓았습니다. 하지만 이후로 오랜 기간 모델 체인지 없이 ‘사골’을 우리더니 하나 둘씩 시장에서 사라졌습니다. 르노코리아의 마지막 세단 SM6의 지난해 판매량은 월평균 60대를 간신히 넘기는 수준이었습니다.


KG 모빌리티는 애초에 세단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쌍용자동차 시절 준대형 세단 체어맨을 2018년까지 생산하다 멈춘 이후로 SUV 전문 브랜드를 표방한 지 오래 됐습니다.


결국 국내 완성차 업체 중 세단을 만들어 파는 곳은 현대차‧기아만 남게 됐습니다. 두 회사의 동급 차종은 사실상 ‘알맹이’가 같으니 소비자 선택권은 극단적으로 좁아진 셈입니다.


단종된 쉐보레 말리부. ⓒ한국GM

현대차‧기아라고 세단에 예전처럼 큰 공을 들이는 모습은 아닙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차종을 다 만들어 팔듯 촘촘한 라인업을 갖춰 온 그들 역시 SUV가 대세인 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세단 쪽에 힘을 빼고 있습니다.


현대차 엑센트, 기아 프라이드 등 소형 세단은 국내 시장에서 자취를 감춘 지 오래고, 지난해 10월부터는 기아의 준중형 세단 K3도 사라졌습니다. 대형 세단 K9도 월 100~200대를 오가는 판매량을 보면 산소호흡기를 뗄 날이 머지않은 것 같습니다. 중형 K5와 준대형 K8은 그나마 판매량이 쏠쏠하니 상대적으로 긴 수명을 예상해 봅니다.


현대차의 경우 아반떼(준중형), 쏘나타(중형), 그랜저(준대형)가 각 차급의 대표 차종으로 오랜 기간 군림하며 쌓아온 브랜드파워가 있어 기아보다는 상대적으로 세단 라인업에 대한 애착이 강할 것 같습니다.


다만, 현대차와 기아는 실적 발표 때마다 이구동성으로 ‘SUV 판매 비중이 높아지면서 수익성이 개선됐다’는 얘길 합니다. 앞으로도 세단보다는 SUV에 더 힘을 줄 여지가 크다고 볼 수 있겠네요.


세단의 대명사 그랜저. ⓒ현대자동차

사실 SUV로의 중심이동은 세계적 추세입니다. 한국GM의 모기업인 제너럴모터스(GM)는 일찌감치 산하 브랜드들에서 세단의 퇴출을 공식화했고, SUV와는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던 벤틀리, 페라리, 람보르기니, 마세라티 등 슈퍼카 브랜드들도 하나 둘씩 무릎 꿇고 SUV 차종을 내놓은 지 오래입니다.


불과 10여년 전만 해도 승용차라 하면 당연히 세단을 떠올리고, SUV는 사이드메뉴였던 걸 생각하면 격세지감입니다.


세단이 SUV에 자리를 내준 가장 큰 배경은 자동차의 용도가 다양화되는 추세일 것입니다. SUV는 그 추세에 잘 부응했고, 세단은 그렇지 못한 것이죠.


현대차 신형 팰리세이드 2열, 3열 시트를 모두 폴딩한 상태에서 성인 남성이 누운 모습. 대형 SUV에서 누릴 수 있는 넓은 공간감이다. ⓒ데일리안 편은지 기자

차체를 높여 넓은 실내공간을 확보하고 거주공간과 적재공간을 합쳐 다양한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2박스(Box) 형태의 SUV는 레저나 차박이 유행하는 시대에 ‘필수템’입니다. 트렁크에 김치를 싣고 다닐 게 아니라면 짐과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 게 크게 나쁠 건 없겠죠. 차를 여러 대 보유할 상황이 안 되고 단 한 대만 골라야 한다면 SUV를 고르는 게 당연시됩니다.


SUV의 넓은 헤드룸은 만족스런 공간감을 제공하고, 높은 지상고는 노면 상태에 대한 ‘쿨’함을 유지할 수 있는 배경이 됩니다. 높이 치솟은 차체가 주는 강인한 인상은 세단과는 다른 외모적 강점을 갖습니다. 과거엔 SUV 특유의 투박함이 저변을 넓히는 데 한계 요인이 됐지만, 요즘은 각을 다듬은 매끈한 형태의 도심형 SUV도 다수 나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도심형 SUV 뉴 르노 그랑 콜레오스. ⓒ르노코리아

그래도 세단의 특징을 선호하는 이들은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날렵하면서도 세련된 실루엣에 바닥에 착 가라앉는 승차감과 안정적인 주행 질감까지. 세단만의 확실한 매력이 있습니다. 상위 차급의 경우 세단에서만 느낄 수 있는 고급감과 품격이 있습니다.


‘자고로 자동차는 거주공간과 적재공간을 철저히 분리해 인간의 거주성에 우선을 둬야 한다’는 다소 꼰대스런 마인드도 세단은 아주 잘 충족시켜줍니다.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수입차 ‘투톱’은 오랜 기간 변함없이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와 BMW 5시리즈입니다. 둘 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세단이고, 국내 시장에서는 고급차의 상징 역할을 해왔습니다. 물론 이들 브랜드에서도 GLC(벤츠)와 X5(BMW) 등 SUV 라인업으로 조금씩 중심 이동이 일어나고 있긴 하지만요.


한국에서 여전히 잘 팔리는 수입 고급 세단 BMW 5시리즈. ⓒBMW그룹코리아

조금씩 줄어들다 소수의 마니아층으로 전락하고 종국엔 멸종되겠지만, 아직은 존재하는 세단족들을 위해 (별로 남는 장사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세단 모델들을 남겨놓은 자동차 브랜드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나마 세단이 몇 종이라도 판매되고, 세단을 몰고 다니는 게 별종처럼 보이지 않는 지금이 세단족들에 얼마 남지 않은 행복한 시기일지 모르니 충분히 즐기시기 바랍니다.


나중에 아카이브 다큐멘터리에서 세단을 타는 우리의 모습이 ‘옛날 사람들은 저런 납작한 차에 몸을 구겨 넣고 다녔다’는 자막과 함께 등장하는 건 아닐지 모를 일입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댓글 0

로그인 후 댓글을 작성하실 수 있습니다.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