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무산…영풍·MBK, 고려아연 경영권 차지하나
입력 2025.01.21 17:39
수정 2025.01.21 17:51
법원, 영풍의 고려아연 임시 주총 의안상정금지 가처분 인용
조건부 청구, 기한 미준수, 과도한 기업 부담 등 이유로 반대
영풍·MBK, 이사회 과반 확보 전망
오는 23일 고려아연 임시 주주총회에서 집중투표 방식으로 이사를 선임해선 안 된다는 영풍·MBK파트너스의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의 경영권 방어를 위한 '히든카드'인 집중투표제 도입이 무산되며, 영풍·MBK가 승기를 잡았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김상훈 수석부장판사)는 21일 영풍이 고려아연을 상대로 낸 임시 주총 의안상정금지 가처분을 인용했다.
앞서 영풍·MBK는 유미개발의 집중투표 방식을 통한 이사선임 청구는 상법 문언에 정면으로 반한다고 주장하며 이를 금지해달라는 가처분을 신청했다.
법원은 영풍의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이며 이에 대한 네 가지 근거를 제시했다.
우선 고려아연의 정관에 '집중투표제를 적용하지 않는다'고 명시돼 있는데 상법 제382조의2 제1항에 따르면 해당 규정이 있으면 주주는 이를 청구할 수 없다. 현행 상법 제382조의2 제1항은 명시적으로 주주의 집중투표청구에 관해 '정관에서 달리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이라는 요건을 기재하고 있다.
또한, 유미개발은 정관을 변경한 후 집중투표를 실시하자는 조건부 청구를 제안했지만, 법원은 상법이 정한 청구 방식에 맞지 않고 기한 준수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문제로 삼았다.
법원은 상법에 따라 정관에서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경우 집중투표청구 자체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조건부 청구는 정관 변경 후 효력이 발생하기 때문에 상법이 규정한 주주총회일 6주 전 청구 기한을 준수할 수 없다는 점에서 법적으로 성립할 수 없다고 봤다.
법원은 "상법 규정 어디에도 해당 회사의 정관에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위 규정이 개정될 것을 조건으로 해 집중투표청구가 허용된다는 취지의 규정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조건부 집중투표청구가 허용된다면, 조건부 집중투표청구의 효력은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정관규정을 개정하는 의안이 가결된 후 발생하게 된다"며 "결국 조건부 집중투표청구는 집중투표를 실시하는 주주총회일 당일에서야 그효력을 발생하게 되는데, 이 경우 주주총회일의 7일 전까지(상장회사의 경우 6주 전까지) 집중투표를 청구해야 함을 규정하고 있는 상법 제382조의2 제2항(상장회사의 경우제542조의7 제1항) 규정을 위반하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고 덧붙였다.
조건부 집중투표청구를 인정할 경우, 상장회사가 항상 집중투표를 준비해야 하는 과도한 부담을 지게 되며 이는 실무상 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에서도 반대했다.
그러면서 "현재 우리나라 상장회사는 대부분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정관 규정을 두고 있다"며 "만약 조건부 집중투표청구가 상법상 허용되고, 회사는 이와 같은 청구를 항상 받아들여야 된다고 해석하는 경우 소수 주주의 정관변경 주주제안 및 조건부 집중투표청구가 있는 경우 회사는 해당 회사의 정관에 집중투표를 배제하는 규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항상 집중투표를 위한 준비를 해야 하는 바, 이는 회사에 지나치게 무거운 의무를 부담시키는 것"이라고 봤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임시이사회에서 고려아연 주주인 유미개발의 주주제안인 집중투표제 도입을 임시 주총 안건으로 확정했다. 유미개발은 고려아연에 대해 소액주주 보호와 권한 강화를 명분으로 이를 청구했다. 유미개발 이사회는 최 회장을 비롯한 가족들로 구성돼 있어 사실상 최 회장의 제안으로 볼 수 있다.
영풍·MBK가 의결권 기준 지분이 과반에 가까워 우세한 상황이다. 다만 집중투표제가 도입되면 3%를 초과하는 지분을 가진 주주는 초과분에 대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없는 규정에 따라 여러 소수 주주로 구성된 최 회장 측에 좀 더 유리한 상황이 조성된다.
영풍·MBK는 집중투표제 방식이 도입되면 이사회 과반을 장악하기 어렵게 되고 경영권 분쟁은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져 반대해왔다. 이번 법원의 판결로, 이변이 없는 한 영풍·MBK가 이사회 과반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영풍·MBK은 이날 입장문을 내고 “이번 법원의 결정으로 인해, 고려아연 거버넌스 개혁에 신호탄이 쏘아졌으며, 23일 임시 주총을 통해 이사회의 개편과 집행임원제도의 도입 등 실질적인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이 시작될 것”이라며 “고려아연 임시 주총이 단순 투표 방식으로 정정당당하고 공정하게 진행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려아연도 입장문을 통해 "법원의 이번 판단은 이번 임시주총에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는 안건과는 무관한 사항인만큼 소수주주 보호 및 권익 증대라는 애초 취지에 맞춰 집중투표제 도입 안건을 적극 추진해 나갈 예정"이라며 "당사에 대한 국내외 의결권 자문사들과 국민연금, 소액주주연대, 그리고 울산 등 지역사회와 시민단체, 정치권의 긍정적 평가를 바탕으로 핵심 기술진과 노동조합, 임직원이 한 뜻으로 투기적 사모펀드 MBK와 적자 제련 기업 영풍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를 막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