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증원 원점 재검토에 ‘정치적 고려’ 있었나…자충수 둔 정부
입력 2025.01.15 12:00
수정 2025.01.15 12:00
정부가 필수·지역의료 붕괴를 위해 추진하던 의대증원이 결국 정치적 고려가 들어갔다는 의혹이 커지고 있다. ‘소아과 오픈런’ ‘응급실 뺑뺑이’ 등을 해소하기 위해 2035년까지 1만명의 의대증원이 반드시 필요하다던 정부가 급격히 정책 방향을 돌리면서다.
정부가 의대증원을 추진할 수 있었던 명분은 국민 80%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는 이유였다. 문재인 정부 시절 진행했던 의대증원이 의료계 반발로 무산됐던 만큼 윤석열 정부에서는 같은 사례로 다시 실패하지 않겠다는 입장이기도 했다.
이러한 결연한 의지와 자신감은 당시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의 말을 통해서도 전달됐다.
조규홍 복지부 장관은 의대증원 계획을 발표하면서 “국민 생명과 건강이 달린 의대증원을 문제를 의사단체와의 협상으로 정할 수는 없다”며 “다른 나라에서도 협상을 통해 의대정원을 결정하는 사례는 없는 걸로 알고 있다”고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또 의대증원의 필요성을 역대 정부에서도 느꼈지만 추진하지 못했던 것이 정치적 고려 때문이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의약분업 과정에서 의사들의 반대에 밀려 정원을 감축한 이후 19년간 정체했고 그 이후로도 정치적 고려로 인해 추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박민수 복지부 제2차관은 “이번 증원 결정은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오직 국민 보건을 위한 정책적 결정”이라며 “같은 기간 주요국에서는 의사를 증원하면서 미래 의료 수요에 대비했다. 특정 직역의 반대에 의해 의료개혁이 좌초되는 과오를 더 이상 되풀이하지 않겠다”고 증원의 필요성을 못 박았다.
정부가 많은 비판 속 증원의 당위성을 피력한 건 이뿐만이 아니다. 당시 일부 여론에선 의대증원 발표가 선거용이라는 의심이 제기되기도 했었다.
이에 대해 정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는 헌법적 책무를 이행하고 급격한 고령화에 대응하기 위한 최소한의 증원 규모”라면서 “국민과 국익만을 바라보며 유불리를 따지지 않고 개혁에 뛰어들지 않는다면 이 나라에 미래가 없다”고 우려하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서울대 의대 교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에서 의대증원을 1년 뒤에 결정하자는 것에 대해선 완강하게 거절하기도 했다.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의료수요를 감안할 때 시기를 1년이라도 늦추면 그 피해는 훨씬 커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6월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증원 처분에 대한 집행정지가 대법원에서 최종 기각된 것과 관련해선 “의대증원과 관련 대법원 판결까지 난 만큼 정원 재논의를 고집하지 말고 의료체계 발전에 힘을 모아주시기 바란다”고 전하기도 했다.
그간 증원 규모를 수정하기 위해선 과학적이고 객관적이며,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해야한다는 입장과 달리 올해 들어 정부는 어떤 맥락도 없이 원점 재검토의 뜻을 밝혔다.
필수의료 부족으로 인한 국민의 고통을 생각할 때 증원 규모 감축은 정부가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이 아니라면서 일축해 오던 것과 너무 상반된 모습이다.
전날 조 장관은 2026학년도 의대 정원과 관련 “동결과 감원 포함 원점부터 논의하겠다”며 “3월 신입생이 돌아오기 전 의료계와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전공의 복귀를 위해서라면 정부가 ‘흔들리고 후퇴한다’는 비판도 감수할 것이라고도 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교수는 “그동안 정부는 의대증원이 국민을 위해 꼭 필요하고 조금이라도 늦춰지면 굉장히 피해를 보는 것처럼 얘기하면서 양보할 수 없는 문제라고 강조해 왔다”며 “최근 모습들은 증원을 지지하는 국민 입장에선 정부의 이런 태도를 이해할 수 없게끔 하고 신뢰를 저버리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지자가 납득할 수 없는 입장 변화는 의대 증원이 과학적, 객관적이지 않았다든지, 또는 총선용이었다든지 지난해 이슈였던 명품가방 물타기였다는 논란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