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열의 시대에 대한 경고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입력 2025.01.10 14:08
수정 2025.01.10 14:08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
역사 속에는 찬란한 문명을 꽃피우며 한때 세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는 제국들이 있었지만 대부분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으며 사라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은 패권국가, 강대국으로 세계 정치와 경제에 큰 역할을 했다. 그러나 역사 속의 제국들과 같이 미국도 분열로 쇠망해질 수 있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서로 다른 문화가 모인 미국이 정치적 분열로 해체될 것이라는 상상을 기반한 작품이다.
미국이 내전으로 둘로 갈라졌다. 캘리포니아와 텍사스 주를 주축으로 한 서부군과 나머지 19개 주가 뭉친 플로리다 동맹이 분열로 내전이 일어난 것이다. 역사상 최악의 내전 상황에서 기자인 리(커스틴 던스트 분)와 조엘(와그너 모라 분), 새미(스티븐 핸더 분) 그리고 제시(케일리 스테니 분)는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워싱턴DC로 향한다. 내 편이 아니라면 바로 적이 되는 숨 막히는 현실, 이들은 전쟁의 현실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경험하게 된다.
영화는 정치적 분열의 심각성을 알린다. 미국은 지리적 특성상 외국 군대가 침략하기 어려운 국가로 알려졌다. 하지만 160년 전, 미국은 전쟁을 겪었다. 그것은 바로 이 영화의 제목과도 같은 ‘시빌 워’ 즉 남북전쟁이다. 노예제도 폐지가 원인이 된 남북전쟁으로 미국은 큰 충격과 교훈을 얻게 된다. 링컨은 “갈라진 집안은 바로 설 수 없다”며 국가관을 고취시켰고 미국인은 이러한 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최근 미국에서는 크고 작은 갈등으로 분열의 조짐이 엿보이고 있다. 대표적으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의 국회의사당 습격이 그것이다. 여기에 미국 내 차별과 혐오 등 크고 작은 사회적, 이념적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영화는 정치적 분열로 미국내 내전이 일어나서는 결코 안 된다고 역설한다.
기자의 역할과 기록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영화는 21세기 중반 미국이 두 번째 내전에 휩싸이며 두 세력으로 갈라진 군사 세력들이 워싱턴DC로 진격해 오는 상황을 다루고 있다. 그리고 종군기자 4명이 대통령을 인터뷰하기 위해 뉴욕에서 워싱턴으로 향하는 이야기를 그린다. 어딜 가나 총격전이 이어지고 도시와 도로는 피로 물들어 있다. 당신은 어느 편인가에 따라 목숨이 달려있다. 종군기자의 사명은 현장의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생명을 앗아가는 위태로운 상황이 여러 번씩 반복되지만 리는 제시에게 현장을 기록해야 하는 중요성을 강조하며 어떠한 순간에도 카메라를 놓쳐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요즘에는 기자들이 현장에 직접 뛰어들어 취재하지 않는 경우도 늘고 있다. 오히려 힘든 현장을 찾아가는 몫을 유튜버가 대신하기도 한다. 영화는 4명의 종군기자들의 사명감을 통해 현장 기록의 중요성과 기자의 본분과 임무와 책임을 말한다.
전 세계적 분열의 세계관도 담고 있다. 영화는 미국 내전을 소재로 하고 있지만 극단적 분열로 쪼개진 세상은 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다. 미·중 신냉전 구도와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그리고 중동에서의 전쟁 등 세계는 혼돈 속에서 요동치고 있다. 미국 또한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아슬아슬하게 이룬 힘의 균형이 언제든지 깨질 수 있음을 영화는 경고한다. 그리고 이러한 분열의 시대는 비단 미국뿐만 아니라 세계적 추세임을 보여주고 있다.
1월 20일 출범을 앞두고 있는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보호무역정책으로 성장률이 더욱 낮아져 중소상공인과 서민들의 생활이 어려워질 것이 우려된다. 이런 상황에서 정치인들은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탄핵정국으로 들어가 국론은 분열되고 있다. 갈라진 집안은 바로 설 수 없다는 링컨 대통령의 말과 조선시대 당쟁이 떠오르는 지금이다. 영화 ‘시빌 워: 분열의 시대’는 국내 정치적 분열의 비극을 상기시키면서 동시에 국가가 유지되기 위해서는 당파의 이익보다는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는 애국심을 발휘해야 한다는 것을 전해주고 있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