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안중근의 두려움까지 다뤘다...차갑지만 식지 않는 '하얼빈' [볼 만해?]
입력 2024.12.23 13:24
수정 2024.12.23 13:25
우민호 감독 신작
안중근은 한국 역사에서 민족 독립과 저항의 상징으로,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희생적 리더십과 헌신의 본보기를 보여준 인물이다. '역사가 곧 스포'임에도, 안중근의 드라마틱한 서사와 영웅적 행보는 영화, 뮤지컬, 소설 등에서 다뤄졌다. 이번에는 근현대사로 대한민국 내부의 민낯을 비춰왔던 우민호 감독이 이번에는 카메라를 1909년으로 돌려, 안중근 장군의 뒷모습에도 빛을 밝힌다.
'하얼빈'은 안중근 장군(현빈 분)과 나라를 되찾기 위해 모인 이들이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척결하기까지 7일 동안의 이야기를 담았다. 신아산 전투에서 눈밭에 피를 뿌리며 일본군을 제압했지만 안중근 장군은 포로로 잡힌 일본인들을 풀어주려 한다. 이창섭(이동욱 분)은 분노하며 반대했지만 안중근 장군은 "모든 일본인들이 죽이는 것이 목표가 아닌, 독립이 목표"라면서 만국공법에 따라 포로들을 풀어줬다.
하지만 이 결정이 안중근 장군의 평생의 죄책감이 된다. 목숨을 건진 일본군들은 안중근 장군과 동료들이 있는 곳을 습격했고 한순간에 동료들을 잃고 만다. 충격과 슬픔에 빠진 안중근이지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위해 자신을 따른 동료들의 죽음을 헛되이 만들 수 없다. 이에 안중근은 이창섭, 우덕순(박정민 분), 김상현(조우진 분), 공부인(전여빈 분), 최재형(유재명 분)과 함께 늙은 늑대,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기로 결심한다.
역사 시대극은 이 때부터 첩보전 장르에 따라 흘러간다. 동료 중에 밀정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서로를 의심하는 관계성이 곁들여진다. 일본인들의 감시, 밀정의 배신 등 여정이 쉽지 않았지만 그렇게 1909년 10월 26일 안중근이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의 가슴에 총구를 당기고 "꼬레아 우라"(대한독립 만세)를 외친다. 안중근 장군의 치열한 여정의 끝에는 벅차오름이나 눈물이 있지 않다. 안중근의 인간적 고뇌. 자신의 결정으로 희생된 동료들, 목숨을 내건 암살 작전, 자신이 떠난 후에도 고되고 치열한 독립운동을 이어나가야 하는 독립운동가들에 대한 미안함 등이 담담하고 묵직하게 담겼다.
눈보라 속 독립운동 외에는 어디에도 눈을 돌리지 못하게 된 운명의 사람들의 이야기가 영화를 보는 내내 시리고 춥다. 하지만 한 명 한 명 같은 뜻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거대한 발자취가 영화의 온도를 올린다.
이 같은 영화의 감각을 완성한 건 현빈, 박정민, 조우진, 전여빈, 유재명 등의 배우들의 열연과 함께 영상미다. 한국 영화 사상 아이맥스 포맷으로 제작됐으며 CG를 최소화했다. 두만강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신아산 전투의 치열함, 얼어붙은 홉스홀 호수를 걸어나가는 안중근 장군의 결연함 등이 실제 자연과 어우러지면서 그림 같은 영상들을 완성했다. 러닝타임 114분. 24일 개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