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간 보기 들어간 민주당…이재명 '대선카드' 염두 뒀나
입력 2024.12.20 05:50
수정 2024.12.20 05:50
19일 상법개정안 대국민토론
"이재명 대통령 해야겠다" 호응
당초 연내 처리 목표 '선회’
이미 공언했다 타이밍 조절
'휴면개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상법개정안 대국민토론 좌장으로 나섰다. '이사의 충실 의무'를 주주로까지 확대하는 민주당의 개정안을 두고 재계의 반발이 거세지자 토론회를 연 것이다.
다만 민주당이 상법 개정에 대한 연내 처리를 이미 공언했다가 타이밍 조절에 나섰다는 점에서, 이날 토론회의 일면엔 이 대표의 대선 카드로 사용하기 위한 표심 전략도 자리한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상법개정안'은 이사회의 직무 충실 범위를 회사에서 주주로 넓히는 '이사 충실 의무 확대' 등을 담고 있다. 기존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은 '회사'에 한정되어 있었다. 법 개정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입장에선 기업만 이익을 보고 주주들은 과실을 함께 나누지 못하는 구조 탓에 국내 기업들의 주가 부양이 되지 않는다는 이유를 들어왔다.
19일 토론회에서 경영진과 투자자 측은 민주당이 추진하는 이사의 충실의무 주주 확대 방안의 필요성과 부작용을 두고 치열한 논쟁을 이어갔다.
박일준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은 "이사의 충실의무가 확대되면 비상장 기업들의 상장 동기가 없어지기 때문에 주식시장이 위축되고, 결국은 기업 경영을 법원에 맡기게 된다"며 "'판사님을 회장님으로 모셔야 되겠다'는 이야기가 우스갯소리로만 들리지는 않는 상황"이라고 했다.
최승재 세종대 법학과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는 이해 상충을 방지하는 의무이기 때문에, 해법은 주주 충실의무가 아닌 선관의무 쪽으로 가야 한다"며 "주주 충실의무를 상법에 넣든, 자본시장법에 넣든 마찬가지 문제가 생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반면 투자자 측은 상법 개정안 없이는 주주의 손해를 회복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소액주주 보호가 한국 자본시장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명한석 참여연대 실행위원은 "회사에서 제일 중요한 주주들을 보호하는 장치가 없는 상황을 입법적으로 해결하자는 것이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도입하자는 취지"라고 주장했다.
또 "장기 투자자들 입장에서는 주주 보호 장치가 전혀 없어서 투자하기 너무 어려운 환경이고, 그래서 외국 주식시장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광현 두산에너빌리티 소액주주는 "우리나라 MZ(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자) 개미 투자자들은 한국장을 대거 이탈해 외국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을 돌아오게 하려면 경영진이 감내할만한 적정수준의 개혁은 어림도 없다"며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급진적 법안만이 투자자 이탈을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재명 대표는 재계측인 중견기업 '심팩'의 발언을 듣다 "회사 주가가 지나치게 저평가된 상태가 유지되는 건 너무나 평화적인 상황"이라며 "자본시장 원칙에 따르면 그 회사에 대한 적대적 인수합병(M&A)은 당연한 것 아니냐"고 상법개정 의지를 시사하기도 했다.
이 대표의 발언에 야권 성향 커뮤니티에서의 뜨거운 반응도 이어졌다. 야권 지지자들은 "재계 측 참석자들은 아무 말 못 하더라" "오늘 토론회 보니까 이재명이 대통령 해야 되겠다" "중도인데 이재명 보니까 은근 괜찮은 것 같다" "이재명의 '적대적 M&A가 당연한 거 아닙니까'라는 발언에 뿅 갔다(반했다)" 등의 반응이 이어졌다.
최승재 교수는 이날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오늘 전반적으로 봤을 때 '상법개정'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진행된 점이 아쉽다"며 "충실의무는 충실하라는 의무가 아니다. 법안 자체가 산으로 가는 게 바로 그 오해에서 출발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 교수는 "이사의 충실 의무는 회사의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앞세우면 안된다는 게 '충실의 의무'"라며 "애초에 회사와 계약을 하지 않은 주주는 '충실'로 규정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한편 토론회에서 다양한 의견이 오간 것과는 별개로 민주당이 당초 연내 처리하겠다는 목표를 '선회'했다는 점에서, 이 대표의 대선 카드를 염두에 둔 타이밍을 조절하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이날 결론이 재계 반발만 재확인한 데 그쳤다는 점에서, 민주당이 대선 카드로 활용하기 위한 타이밍만 엿보고 있다는 시각이다.
민주당은 오는 30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차원에서 다시 한번 공청회를 연다. 양측 의견을 수렴해 논의를 더 묵혀두겠다는 것이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에 동의한 민주당은 입법 속도전의 1순위로 상법개정을 꼽고, 연내 국회 본회의에서도 처리하겠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그러나 일정을 연기함에 따라 민주당이 공언했던 '상법개정 연내 처리'는 해를 넘기게 됐다.
이미 황정아 민주당 대변인은 지난 18일 상법개정 처리에 대해 "아직 시한을 정하고 있는 건 아니다"라고 시사한 바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토론회라기보다는 겉핥기식이었다"며 "이 대표는 상법개정을 결국 하고 싶어하는 것이고, 이를 위한 보여주기식 판만 깐 느낌"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