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메달 환희도 덮은 배드민턴 안세영 ‘작심 발언’ [2024 스포츠 이슈④]
입력 2024.12.24 08:01
수정 2024.12.24 08:01
올림픽 여자 단식 금메달 직후 배드민턴협회 잘못된 관행 꼬집으며 직격
정부도 경위 파악 뒤 개선 촉구했지만 협회 아직까지 실질적 변화 없어
한국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28년 만에 금맥이 터졌지만, 그로 인한 환희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안세영(22·삼성생명)은 지난 8월 5일(현지시각) 2024 파리올림픽 여자 단식에서 꿈에 그리던 금메달을 획득한 뒤 믹스트존 인터뷰에서 “대표팀에 정말 많이 실망했었다”며 “이 순간을 끝으로 계속 함께 가기 힘들 것 같다”는 폭탄 발언을 뱉었다. 이어진 공식 메달리스트 기자회견에서도 “부상을 겪는 상황에서 너무 크게 실망했다”며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며 격정을 토로했다.
안세영이 금메달을 따자마자 대한배드민턴협회에 직격탄을 날린 것은 혹사 논란과 대표팀의 미흡한 선수 관리 체계에서 비롯됐다.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무릎을 다쳤던 안세영은 협회와 대표팀의 안일한 부상 대처 아래 지난해 14차례나 국제대회에 출전했다. 국내 대회까지 합하면 총 20회에 이른다.
비단 부상 관리뿐만 아니라 훈련 방식·용품 사용·트레이너 고용 등 다양한 부분에 걸쳐 불만이 누적됐다. 올해 1월 협회와 면담 때도 ‘기존 후원사 용품 신발 대신 다른 신발을 신겠다’, ‘컨디션 관리를 위해 비행기 비즈니스석을 타고 싶다’, ‘선후배 문화를 지금까지 참아왔지만 더는 참을 수 없다’는 요구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안세영은 대한배드민턴협회의 훈련 방식과 선수 관리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하며 개선을 요구했다. 이른바 안세영 ‘작심발언’이 윤석열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됐고,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가 대대적인 조사를 벌인 결과 배드민턴협회가 보조금법을 위반한 정황과 후원 물품을 부당하게 배부한 혐의 등이 확인됐다. 조사에서 김택규 회장의 직장 내 괴롭힘과 폭언, 과도한 의전 요구 등도 드러났다.
문체부는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고 김택규 배드민턴협회장의 해임과 사무처장 중징계를 요구했고, 그간의 부조리를 바로잡을 것을 권고했다. 협회가 자정 노력을 하지 않을 경우 관리 단체 지정을 통해 모든 임원을 해임하고 선수 지원 외 모든 예산 지원을 중단할 방침도 밝혔다.
문체부 조사 결과 및 시정 지시에도 포상금을 상향 조정한 것 외에는 아직까지 실질적인 변화는 없다. 문체부의 해임 요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김택규 협회장은 연임에 도전한다.
“발에 맞지 않는 후원사 신발을 신지 않게 해달라”는 요청에 협회는 일시적으로 안세영에게만 한정해 허용하겠다고 밝히면서 안세영은 이를 거부할 수밖에 없었고, 여전히 후원사 신발을 신고 뛰었다. 오히려 배드민턴협회는 보조금법 위반 관련 지적에 대해 “보조금은 지침을 준수하고 상위 기관 승인 아래 집행한 것”이라며 반발했다.
갈등도 여전하다. 대한배드민턴협회가 ‘2024 파리올림픽’ 메달리스트들을 격려하는 포상식을 개최했는데 정작 '금메달' 주인공 안세영은 불참했다.
협회는 지난달 30일 경남 밀양 아리나호텔에서 2024 파리올림픽 포상식을 개최했다. 안세영은 개인 일정을 이유로 행사에 불참했다. 포상금은 소속팀 길영아 감독이 대리로 받았다. 행사가 진행 중인 그 시각, 안세영은 용인실내체육관에서 펼쳐진 여자프로농구(WKBL) 용인 삼성생명-부산 BNK전 현장에 있었다. 껄끄러운 관계가 된 배드민턴협회와의 충돌을 피하기 위한 행보였다.
불편한 상황에서도 안세영은 작심발언을 한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혔다. 안세영은 지난 17일 세계배드민턴연맹(BWF)과의 인터뷰에서 “문제점을 말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힘든 시간을 보냈다. 문제점이라고 하기 보다는 부족했던 부분을 개선하면 좋은 방향으로 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결승에서) 이기든 지든 말했을 것”이라면서도 “내가 그렇게 말하면서 파장이 이렇게 커질 것이라고는 솔직히 생각하지 못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답변을 한 것에 대해서는 크게 후회하지도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