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한 계엄령] '6시간 천하' 오명 뿐인 비상계엄…윤 대통령 '탄핵 부메랑' 됐다
입력 2024.12.05 01:18
수정 2024.12.05 06:06
국회 '尹탄핵소추안' 본회의 보고, 6일~7일께 표결
가결시 대통령 직무정지…野, 부결시 '재발의' 예고
이재명 "5200만 국민 운명 짊어진 사람 행동 아냐"
'이탈표 8명'이 관건, 여당 결정에 달린 대통령 거취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 획책의 반국가적 행위 척결'을 내세워 한밤 중 기습 선포한 비상계엄령이 국회의 저지로 6시간 만에 일단락 됐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1979년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시해 사건 이후 45년 만, 1987년 민주화 이후 초유의 사태다.
'6시간 천하'로 막을 내린 이번 계엄 사태는 야권에 실질적·법리적 탄핵 명분만 제공한 흑역사로 기록될 전망이다. 여야를 막론하고 대통령 '탄핵'이 거론된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는 이번 계엄 선포는 윤 대통령 스스로 '탄핵의 부메랑'을 던졌다는 평가다.
5일 정치권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과 조국혁신당을 비롯한 6개 야당은 이날 자정이 지난 후 국회에서 본회의를 열고 윤 대통령 탄핵안을 보고했다. 국회법은 본회의 보고 24시간 이후, 72시간 이내 의결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표결은 오는 6일이나 7일께 실시될 전망이다. 야권은 이번 탄핵안이 부결되더라도 오는 10일 정기국회 종료 후 탄핵안을 재발의할 방침도 세웠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는 국회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 찬성이 필요하다. 본회의에서 탄핵안이 의결되면 대통령의 직무는 즉시 정지되고,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대행을 맡게 된다. 이 과정에서 헌법재판소는 윤 대통령의 탄핵 심리를 실시하게 된다.
헌재에서 탄핵이 인용될 경우 윤 대통령은 즉시 대통령직에서 파면된다. 후임 대통령 선거는 60일 이내에 치러진다. 기각되면 윤 대통령은 업무에 곧바로 복귀할 수 있다. 다만 지난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대한민국 헌정사에서 두 번째 '탄핵 대통령'이 될 가능성도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된 후 헌재가 파면을 결정하기까지 3개월이 걸렸다.
앞서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오후 10시 27분께 긴급 대국민담화를 열고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그러나 국회는 이튿날 오전 1시 재석 의원 190인 중 190인 전원 찬성으로 비상계엄 해제요구결의안을 가결했다. 여당 의원 18명도 찬성표를 던졌다. 이로써 비상계엄은 윤 대통령이 이날 오전 5시께 수용하면서 6시간 만에 해제됐다.
애초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일성의 배경은 '자유 헌정질서' 사수였다. 정부 출범 이후 민주당이 추진한 22건의 탄핵 시도를 비롯해 정부의 내년도 예산안 마저 야당이 헌정사상 처음으로 단독 감액 처리한 것 등이 언급됐다.
윤 대통령은 담화에서 민주당을 겨냥한 듯 "헌법과 법에 의해 정당한 국가기관을 교란시키는 것으로서 내란을 획책하는 명백한 반국가 행위"라며 "지금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됐고, 입법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고 말했다.
계엄은 '비상계엄'과 '경비계엄'으로 구분된다. 현행 계엄법상 비상계엄은 '전시·사변 또는 이에 준하는 국가비상사태에 있어 적과의 교전상태에 있거나 사회질서가 극도로 교란 돼 행정·사법 기능의 수행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 대통령이 선포토록 규정하고 있다.
민주당 중진 의원은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배경에 대해 "민의를 대리하는 우리당의 국정 정상화 기조를 '내란 획책'으로, 국민 다수가 바라는 김건희 특검법을 놓고 여야가 정쟁하는 것을 '교전 상태'로 해석했기 때문"이라며 "탄핵까지 갈 필요없이 스스로 하야 하시는 게 모두에 좋은 묘책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6시간 만에 마무리된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는 야권이 '공개적 퇴진' 성토를 낼 수 있게 했을 뿐만 아니라, 중대한 '법률적 탄핵' 명분까지 제공한 꼴이 됐다. 야권은 전날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사퇴촉구·탄핵추진 비상시국대회'에서 일제히 탄핵을 촉구했다.
이재명 대표는 "어젯밤부터 새벽 사이에 벌어진 일을 보면 5200만명의 국민 삶을 통째로 책임지고, 이 나라의 운명을 책임진 사람의 행동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직후에도 "그는 지금부터 대한민국 대통령이 아니다"라고 직격했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비상계엄 선포는 절차·내용 모두 헌법·법률 위반으로 탄핵 사유"라며 "헌법을 파괴하고 민주주의를 겁박한 윤석열은 반드시 단죄돼야 한다"고 일갈했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도 "윤석열을 대통령 자리에 잠시라도 놔둘 수 없다. 탄핵소추로 직무를 즉각 정지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에 대한 견제를 유지하면서도 탄핵소추에는 신중론을 펼치던 개혁신당도 이번 만큼은 팔을 걷어붙였다. 이준석 개혁신당 의원은 4일 국회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윤 대통령) 탄핵안 발의에 저희가 동참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조만간 실시될 국회 본회의에서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최종 가결되려면 200표 이상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현재 범야권의 합산표가 192표인 만큼, 국민의힘 내 최소 8표 이상의 이탈표가 나와야 통과된다. 그러나 당초 윤 대통령 탄핵에 '결사반대'를 외치던 여당 내에서도 탄핵 표결을 앞두고 미묘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 대선 당시 단일화를 이뤄 윤 대통령 당선에 공을 세운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페이스북에 "국민에 총부리를 겨눈 마당에 내각 총사퇴와 대통령 탈당만으로는 부족하다"며 "이번 사태에 책임을 지고 스스로 질서있게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실 것을 촉구한다"고 퇴진을 요구했다. 계엄 사태 이후 여당 내 첫 대통령 퇴진 요구다.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도 페이스북에 "여야 간의 극한대립 가운데 국민을 볼모 삼은 비상식적 국회 운영으로 파탄에 이르러왔지만, 그 어떤 이유라도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고 대한민국 헌법 가치를 훼손하는 명분 없는 정치적 자살행위에는 절대로 동조할 수 없음을 밝힌다"고 밝혔다.
한편 전날 국민의힘 비공개 최고위원회의에서는 윤 대통령의 탈당 및 탄핵론에 일부 공감대가 형성된 것으로 알려졌다. 야권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을 목전에 둔 현재 여당 의원 중 최소 6명이 찬성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