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그룹 부실채권 대응력 '균열'…'조 단위' 충당금에도 '허덕'
입력 2024.11.19 06:00
수정 2024.11.19 06:00
NPL 커버리지비율 '악화일로'
이제 고금리 터널 끝 보이지만
리스크 부담 해소까진 '먼 길'
국내 대형 금융그룹들의 부실채권에 대한 대응 여력 지표가 눈에 띄게 나빠진 것으로 나타났다. 부실에 대비해 쌓는 충당금을 한 해 동안 3조원 가까이 더 쌓았지만, 연체가 불어나는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있어서다.
길고 길었던 고금리 터널의 끝이 보이고는 있지만, 금융권이 리스크 관리에서 한숨을 돌리기까진 아직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19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KB·신한·하나·우리·NH농협금융 등 5대 금융그룹의 고정이하여신(NPL) 커버리지비율은 평균 148.9%로 전년 동기 대비 34.2%포인트(p) 낮아졌다.
이는 금융사가 향후 잠재적인 부실에 대비할 수 있는 여력이 축소됐다는 뜻이다. NPL 커버리지비율은 금융사가 보유한 부실채권을 가리키는 고정이하여신 잔액과 비교해 충당금을 얼마나 적립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우선 하나금융의 NPL 커버리지비율이 128.4%로 같은 기간 대비 39.2%p 떨어졌다. 신한금융 역시 141.1%로, KB금융은 145.6%로 각각 41.6%p와 34.8%p씩 해당 수치가 하락했다. 우리금융도 152.3%로, 농협금융은 177.0%로 각각 27.7%p씩 NPL 커버리지비율이 낮아졌다.
하지만 금융그룹들이 리스크에 대비한 충당금 쌓기를 게을리했던 건 아니다. 실제로 조사 대상 기간 동안 이들 금융그룹의 충당금은 총 19조2464억원으로 16.6%(2조7350억원)나 늘었다.
금융그룹별로 보면 KB금융이 4조5574억원으로, 신한금융이 4조2548억원으로 각각 20.4% 14.1%씩 증가하며 충당금이 4조원을 훌쩍 넘어섰다. 농협은행도 3조8350억원으로, 우리은행은 3조3135억원으로 각각 18.1%와 24.3%씩 관련 금액이 늘었다. 하나은행의 충당금도 3조2857억원으로 6.6% 증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금융그룹들의 위기 대응력이 나빠진 건 그 만큼 부실채권이 빠르게 확대된 탓이다. 5대 금융그룹이 떠안고 있는 고정이하여신은 총 13조471억원으로 44.2% 늘었다.
고정이하여신은 금융사가 내준 여신에서 통상 석 달 넘게 연체된 여신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금융사들은 자산을 건전성에 따라 ▲정상 ▲요주의 ▲고정 ▲회수의문 ▲추정손실 등 다섯 단계로 나누는데 이중 고정과 회수의문, 추정손실에 해당하는 부분을 묶어 고정이하여신이라 부른다.
부실채권이 계속 몸집을 불리는 배경에는 장기간 이어져 온 고금리 기조가 자리하고 있다. 쌓여가는 이자 부담에 차주들의 연체가 늘고 있어서다.
한국은행은 2022년 4월부터 지난해 1월까지 사상 처음으로 일곱 차례 연속 기준금리를 인상했다. 이중 7월과 10월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5%p 올리는 빅스텝을 단행했다. 이에 따른 한은 기준금리는 3.50%로, 2008년 11월의 4.00% 이후 최고치를 최근까지 유지해 왔다.
다만 비로소 한은 기준금리가 내려가기 시작하면서 여신 건전성 문제는 다소 해소돼 나갈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 달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기준금리를 3.25%로 0.25%p 내렸다. 이로써 2021년 8월 시작된 통화 긴축 기조는 3년 2개월 만에 비로소 종지부를 찍었다.
다만 지나친 낙관론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여전하다. 금융권 관계자는 "국내와 국외 금융시장이 모두 불확실성이 큰 만큼, 기준금리 인하 폭이 생각보다 제한될 수 있다"며 "당분간은 부실 리스크 확대에 대응해 충당금을 충분히 쌓아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