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투세 시행→유예→폐지…정책 혼란에 증권사 매몰비용 ‘아쉬움’
입력 2024.11.06 07:00
수정 2024.11.06 07:00
유예 종료 2개월 앞두고 폐지 수순...업계 환영 속 복잡한 속내
대형사들 수년간 컨설팅·전산 개발 노력...400억대 자금 투입
정치권 오락가락 행보에 가이드라인 부재...자체적 구축 허비
정치권이 내년 시행 예정이었던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폐지에 동의하면서 금투세 찬반 논쟁이 4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증권사들은 금투세 폐지에 환영의 뜻을 밝히면서도 그간 적잖은 비용을 허비했다는 점에 아쉬움을 나타내고 있다.
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금투세가 유예 기간 종료를 2개월 앞두고 폐지로 가닥이 잡히면서 증권사들이 전산 시스템 개발을 위해 투입한 인적·물적 자금은 모두 매몰비용으로 남게 됐다.
금투세는 대주주 여부에 상관없이 주식·채권·펀드·파생상품 등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해 일정 금액(주식 5000만원·기타 250만원)이 넘는 소득을 올린 투자자에게 20%(3억원 이상이면 25%)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다. 지난 2020년 여야 합의로 통과돼 작년 도입될 예정이었지만 시스템 미비와 시장 침체 가능성 등의 이유로 2년이 유예돼 내년 1월 시행을 앞두고 있었다.
대통령실과 여당은 연초부터 꾸준히 금투세 폐지를 추진해왔는데 금투세가 도입되면 ‘큰손’ 이탈과 자본 유출을 야기할 것이란 우려에서였다. 반면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유예와 보완 시행을 놓고 오락가락 입장 변화를 보이면서 도입 여부를 둘러싼 논쟁이 지속됐다.
결국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지난 4일 당론을 번복하면서 금투세는 폐지 수순을 밟게 됐지만 업계는 환영 속에서도 복잡한 심경을 보이고 있다. 정책 불확실성이 해소된 것은 긍정적이지만 전산 시스템 구축을 위해 진행했던 투자가 불필요한 매몰 비용이 됐기 때문이다.
이헌승 국민의힘 의원이 금융투자협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말 기준 국내 10대 증권사의 금투세 시행 관련 컨설팅 및 시스템 구축 비용은 422억6000만원에 달한다. 그동안 금투세 컨설팅과 원천징수를 위해 시간과 자금을 퍼부었으나 이를 허비한 셈이다.
증권사들은 지난 2022년부터 금투세 시행에 대비해왔지만 정치권의 공방으로 정부가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내놓지 않으면서 시스템 개발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금융투자협회와 증권사들은 지난 2022년 말에 국회에 금투세의 도입 유예 결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내기도 했다. 당시 국회가 금투세 시행을 2025년으로 2년간 유예하는 법안을 통과시키면서 증권사들은 금투세 관련 인프라 구축에 자금과 인적 자원을 투입해왔다.
다만 가이드라인이 부재한 만큼 증권사별로 거액을 들여 자체적인 컨설팅·시스템 구축 용역을 진행하는 양상이 나타났다. 미래에셋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삼성증권, NH투자증권, KB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주요 증권사들은 금투세 전담 조직인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며 시스템 개발에 따른 비용을 집행해왔다.
그러나 유예 기간 종료를 두 달 앞두고서야 폐지 동의가 이뤄지면서 증권사들 입장에선 쓸데없는 자금이 낭비됐다는 아쉬움이 남게 됐다. 증권업계는 그동안 금투세 시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에서 막대한 비용을 들인 만큼 정치권의 빠른 결단이 필요하다는 점을 호소해왔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금투세 관련 전산 시스템을 구축하다가 폐지 논의에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시행 조짐이 보이면 작업을 재개하는 상황이 반복돼 왔다”면서 “폐지로 결정이 나면서 시스템 추가 보완에 대한 부담이 사라져 다행이지만 아쉬움이 있는 것도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금투세 시행을 염두에 두고 투입됐던 전산 및 세무 부문의 인력 활용에 대한 고민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업계 또 다른 관계자는 “증권사 자체 TF 구성 외에 외부에서 전문 인력까지 보강한 증권사들의 비용 부담이 더 큰 상황”이라며 “다만 세무 부문은 절세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크고 관련 사업을 확장하는 분위기라서 대응 전략이 크게 바뀌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