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류업 지수 ‘혼돈의 카오스’…거래소는 ‘우왕좌왕’ [데스크칼럼]
입력 2024.09.27 07:00
수정 2024.09.27 09:05
SK하닉·두산밥캣·KB·하나금융…모호한 선정 기준
거센 논란과 비판에 발표 이틀 만에 부랴부랴 해명
공정성·형평성·객관성 없이 투자자 신뢰 확보 못해
정부의 밸류업 정책의 결정판으로 기대를 모았던 ‘코리아 밸류업 지수(K-밸류업 지수)’가 오히려 시장을 혼돈의 카오스(Chaos)에 빠뜨리고 있다. 지수에 편입되는 종목의 선정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면서 공정성·형평성·객관성 논란이 불거진 탓이다. 한 외국계 증권사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이러한 모호함은 연초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 발표에 맞춰 그동안 기업가치 제고 계획 공시와 주주환원에 앞장서 온 금융사들의 사례에서 잘 드러난다. 상장사 중 가장 먼저 기업가치 제고 계획을 공시한 KB금융과 주주 환원에 앞장서 온 하나금융은 밸류업 지수 편입 종목에서 제외됐다.
각각 자기자본이익률(ROE)과 주가순자산비율(PBR) 요건에 미달했다는 것이 한국거래소가 설명한 제외 이유지만 저PBR주를 재평가해서 기업 가치를 끌어 올리자는 것이 밸류업 지수의 취지라는 점에서 궁색하게 들린다. 게다가 이러한 이유로는 같은 금융주로 대표적인 저PBR주인 신한지주와 우리금융이 편입 종목에 선정된 이유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다.
또 편입 종목들이 특정 산업군에 집중되지 않고 고르게 분포될 수 있도록 했다는 거래소의 설명을 감안해도 고평가 기업인데다 편입기준으로 제시한 ‘2년 합산 흑자’를 충족시키지 못한 SK하이닉스가 선정된 것은 KB금융과 하나금융과는 다른 고무줄 잣대가 적용됐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주주환원과는 반대의 행보를 보인 두산밥캣이 포함된 점은 선정 기준의 의문점을 더욱 키우는 대목이다. 두산그룹은 두산밥캣과 두산로보틱스간 합병 추진 과정에서 두산밥캣 주주들에게 불리한 합병비율을 제시했다가 투자자들의 거센 비판과 당국의 지적을 받고 최근 합병 계획을 철회한 바 있다. 주주가치를 훼손하며 밸류업에 역행하려는 기업이 밸류업 지수를 구성하는 종목으로 편입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기준에 부합하지 않은 종목들은 포함되고 정작 들어가야 할 종목들은 제외되는 이러한 이상한 모습은 정부의 밸류업 프로그램과 밸류업 지수의 취지가 정녕 무엇인지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밸류업 지수를 둘러싼 혼란은 밸류업 프로그램을 통한 자본시장의 발전을 바탕으로 한국 경제의 지속 성장을 견인하겠다는 목표가 무색할 정도다.
밸류업 지수를 발표한 거래소의 안일한 대응은 시장의 혼란을 더욱 부추기는 양상이다. 거래소는 지난 24일 K-밸류업 지수를 발표 당시 편입 종목들에 대한 세부적인 설명을 내놓지 않다가 국내외에서 선정 기준에 대한 비판과 혹평이 나오면서 이틀 뒤인 26일 부랴부랴 긴급 브리핑을 마련해 해명에 나선 것이다.
단적인 예로 브리핑에서 이번 지수 편입에 가장 논란이 큰 SK하이닉스에 대해 ‘잔류 특례제도’가 적용됐다고 밝혔는데 지수 발표 당시에는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내용을 뒤늦게 해명으로 내놓은 셈이다.
정은보 이사장이 직접 나선 밸류업 지수 발표가 얼마나 졸속으로 이뤄졌는지 알 수 있는 대목으로 거래소가 밸류업 지수를 시장의 수요자가 아닌 공급자 관점에서 얼마나 안일하게 접근했는지가 드러나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다.
밸류업 지수는 정부가 연초부터 코리아 디스카운트(국내 증시 저평가) 해소를 위해 추진해 온 밸류업 정책의 결정체라 할 수 있다. 그만큼 공정한 기준에 따라 객관성과 형평성이 담보돼야 시장과 투자자들의 신뢰를 확보할 수 있다.
시작부터 스텝이 꼬인 이 상황이 개선을 위한 예방주사가 될 지, 아니면 더 큰 부작용을 불러오는 약물이 될 지, 그 선택은 오롯이 한국거래소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