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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시장에 혼란 초래"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입력 2024.08.15 12:00 수정 2024.08.15 12:00

경총 '이사 충실의무 확대 관련 상법 개정에 관한 연구' 용역 결과 발표

서울 대흥동 한국격영자총협회 회관 전경. ⓒ한국경영자총협회

기업 밸류업 대책의 일환으로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가 논의되고 있는 가운데, 이는 법적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 내용을 담은 상법 개정이 이뤄질 경우 소송 증가 및 주주 간 갈등 심화만 빚어질 것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이사 충실의무 확대 관련 상법 개정에 관한 연구’ 용역 결과를 15일 발표했다.


용역을 수행한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이사 충실의무 대상 확대 주장에 대해 ▲충실의무의 법적 개념에 대한 오해 ▲글로벌 스탠더드(분석대상 주요국 법률에 유사한 규정 없음) 위배 ▲주주평등 원칙 훼손 ▲소송증가 및 주주간 갈등 증폭 야기 등을 문제점으로 제기했다.


현행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규정하고 있으나, 최근 이 대상에 ‘주주’를 포함시켜 이사회가 M&A나 기업분할 같은 중요한 경영상 결정을 내릴 때 소액주주를 포함한 모든 주주의 이익까지 고려토록 명시적으로 규정하자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올해 들어 정부에서 기업 밸류업 대책의 일환으로 상법상 이사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도 포함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을 검토하겠다고 밝힌 바 있으며, 22대 국회에도 이러한 내용의 상법 개정안이 발의됐다.


경총을 포함한 경제 8단체는 해당 사안에 대해 ▲기존 회사법 체계 훼손 ▲소송 남발로 인한 경영활동 위축 초래 ▲각 주주의 이해관계를 모두 만족시키기는 불가능 ▲글로벌 스탠다드 위배 등의 이유로 현행 법 유지가 필요하다는 공동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최준선 교수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로까지 확대하자는 최근의 상법 개정 주장에 대해 “이사의 충실의무’ 개념에 대한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사의 충실의무란 이사가 회사에 충성할 의무가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이사와 회사 간의 이해가 충돌할 때’ 회사의 이익을 우선시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뜻하는 것이다.


즉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게 되면, 이는 ‘이사와 주주 간의 이해가 충돌할 때’ 주주의 이익을 우선해야 한다는 의미가 되는데, 이사는 주주 전체의 총의인 주주총회의 결의를 집행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사와 주주의 이해가 충돌한다는 전제 자체가 구조적으로 성립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최 교수는 또 주주의 ‘비례적 이익'이 회사법의 기본 이념인 ‘주주평등원칙’에 의해 이미 보호되고 있는 상황에서, ‘주주의 비례적 이익을 위한 충실의무를 명시적으로 추가하자’는 주장은 오히려 소액주주에 대한 ‘반비례적 이익’을 보장하려는 시도가 돼 주주평등원칙을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비례적 이익의 보장은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와 충돌하며, 다수결 원칙을 무시하고 소수의 이익을 우선시하게 돼 주식회사의 경영에 불필요한 복잡성을 더할 위험이 있다.


이사의 충실대상이 주주로 확대되면 기업지배구조가 개선된다는 주장이 있으나, 이는 이사에 대한 소송 증가 및 주주 간 갈등 증폭만 가져올 뿐 코리아 디스카운트는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사 충실의무 대상을 주주까지 확대하면, 이를 오해한 주주들에 의해 이사의 충실의무 위반을 이유로 손해배상 소송이 증가할 우려가 크며, 지배주주와 소수주주 간 갈등 증폭 등 경영상 혼란이 커질 우려가 크다.


최 교수는 무엇보다 회사와 위임계약을 맺고 이사에 임명된 자가 주주에 대해 직접 충실의무를 부담하면 이사회의 독립성과 우리 상법 및 민법 체계를 혼란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보고서에서 미국을 포함한 6개국의 법률을 분석한 결과, 영국, 일본, 프랑스, 독일, 중국과 같은 해외 주요국 법률에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규정은 찾아볼 수 없었다.


영국은 ‘구성원 전체’, 일본은 ‘회사’, 프랑스는 ‘회사 및 제3자’, 독일은 ‘회사’, 중국은 ‘회사’로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규정하고 있다.


일부에서 영국은 판례를 통해 이사에게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를 부여하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영국 판례의 경우 이사의 주주에 대한 책임은 ‘가족 소유 기업’, ‘이사가 주주의 주식 처분을 제안하는 경우’ 등 이사와 주주 간에 특별한 신뢰 관계가 존재하는 경우에 한해서 인정되며, 일반적인 이사-주주 관계에서는 이사의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성립되지 않음을 명확히 하고 있다.


미국에서도 전체 50개 주(州) 중 48개 주의 회사법에는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에 주주를 포함하는 규정이 없다.


다만, 모범회사법과 델라웨어주, 캘리포니아주 회사법에서 ‘주주’를 언급하고 있는데, 이는 간접적이고 선언적인 규정으로,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를 직접적으로 포함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고서는 설명했다.


최 교수는 “상법이 개정되면 오히려 소송 증가 및 주주 간 갈등 증폭으로 기업 경영상의 혼란을 가중시킬 가능성이 높아 현행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유지해야 한다”며 “시장에서 특수한 상황이 발생하는 경우 이를 법률로 일반화하기 하기보다는 현행법과 판례를 통해 해결을 도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그는 이어, “이사가 자기 자신 외에 제3자(주요주주나 지배주주 포함)를 위해 회사의 이익을 희생하는 경우에도 충실의무 위반이 될 수 있고, 이는 현행법상 충실의무위반으로 되므로 현행법으로 구제된다. 이때는 이사와 지배주주 등은 배임‧횡령으로 형사처벌을 받게 된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또 “지배주주에게 이익이 편중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해도 상법상 이사 등의 자기거래 규정을 활용해 대응할 수 있다”면서 “상법 개정 없이도 현재의 다양한 법제도를 활용하면 지배주주에게는 이익이 되고 소액주주에게는 손해가 되는 거래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하상우 경총 본부장은 “선진국에 비해 배임죄가 폭넓게 규정돼 있고 형사처벌이 가혹한 우리나라에서, 글로벌 스탠더드에도 맞지 않는 이사 충실의무 확대는 적극적인 경영활동을 위축시켜 기업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결과만을 초래할 것으로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액주주의 정당한 이익보호가 중요한 것은 당연하나, 현재에도 이를 위법적으로 침해한 경우 상법을 비롯한 여러 법 규정과 정부의 감시 기능을 통해 규제를 받게 돼있는 만큼, 부작용만을 초래할 수 있는 상법 개정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박영국 기자 (24py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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