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위 맞나? 태권여제 향하는 김유진, 금빛 반란 원동력은 ‘체력+식빵’
입력 2024.08.09 06:42
수정 2024.08.09 06:59
‘세계랭킹 24위’ 김유진(24·울산광역시체육회)이 첫 올림픽 무대에서 강자들을 연파하고 시상대 꼭대기에 섰다.
김유진은 8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 팔레에서 펼쳐진 ‘2024 파리올림픽’ 태권도 여자 57㎏급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나히드 키야니찬데(이란)를 라운드 점수 2-0(5-1 9-0)으로 완파하고 금메달을 따냈다.
유럽 선수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큰 키(183cm)를 자랑하는 김유진은 1라운드에서 오른발을 앞세워 상대의 발을 묶었다. 1라운드 막판 상대 감점으로 리드를 잡은 김유진은 5-1로 이겼다. 지능적인 경기운영으로 1라운드를 잡은 김유진은 2라운드에서 머리 공격으로 3점을 따내 주도권을 잡은 뒤 몸통 공격까지 성공해 여유 있게 이겼다.
지난해 항저우 아시안게임 동메달, 올해 아시아선수권 우승을 차지한 김유진은 자신의 첫 올림픽 무대에서 금빛 발차기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박태준-김유진 활약으로 한국 태권도는 도쿄올림픽 노골드(은1·동2) 굴욕을 날려버렸다. 김유진 금메달로 대한민국 선수단은 2008 베이징올림픽·2012 런던올림픽에서 달성한 역대 올림픽 최다 금메달(13개)과 타이를 이뤘다.
한국 여자 태권도가 여자 57kg급에서 메달을 수확한 것은 무려 16년 만이다. 2000 시드니 정재은, 2004 아테네 장지원, 2008 베이징 임수정까지 3회 연속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했던 한국 태권도는 이후 메달도 추가하지 못했다.
답답했던 노메달 침체를 깬 선수는 김유진이었다. 사실 김유진은 올림픽 개막 전까지 ‘금메달 후보’로 꼽혔던 선수는 아니다. 파리올림픽 금메달리스트 박태준(경희대)을 비롯해 서건우(한국체대)-이다빈(서울특별시청·이상 4위)과 달리 대한태권도협회 내부 선발전-대륙별 선발전 등을 추가로 거쳐 올림픽 출전권을 받은 선수다.
파리에서 김유진이 보여준 과정과 결과는 기대치를 넘어섰다. 김유진은 세계 랭킹 1·2·4·5위를 연파했다.
16강에서 2020 도쿄올림픽 동메달리스트 하티제 일귄(튀르키예)을 완파한 김유진은 8강에서 세계랭킹 4위 스카일러 박(캐나다)마저 라운드 점수 2-0으로 제압하며 기세를 올렸다. 4강에서는 ‘세계랭킹 1위’ 뤄쭝스(중국)를 라운드 점수 2-1(7-0 1-7 10-3)로 밀어내고 결승에 진출했다. 올림픽 최고의 무대에서는 세계랭킹 2위 키야니찬데를 압도하며 시상대 꼭대기에서 애국가를 들었다.
전문가들은 김유진의 ‘금빛 반란’의 원동력을 긴 다리와 보완한 체력으로 꼽는다.
국제무대에서도 전혀 밀리지 않는 우수한 피지컬의 김유진은 긴 다리로 상대의 발을 봉쇄한 뒤 틈을 노려 찍어누르는 헤드 공격이 강점이다. 포인트를 잃은 상대가 덤벼들 때, 방어용이었던 긴 다리는 공격형 무기로 돌변해 상대 몸통을 가격한다.
피지컬과 기술은 이전부터 인정을 받았지만, 체력에 발목이 잡혀 정상권으로 떠오르지 못했는데 파리올림픽을 앞두고 실시한 맞춤형 유산소 훈련으로 이를 많이 보완했다. 파리올림픽에서도 전혀 지치지 않는 모습으로 상위 랭커들을 줄줄이 연파하고 해맑게 웃을 수 있었던 원동력 중 하나다.
멘탈도 빼놓을 수 없는 원동력이었다.
경기 후 "랭킹은 숫자에 불과할 뿐이다. 내가 일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고 밝힌 김유진은 그동안 '배구여제' 김연경(흥국생명)의 마인드를 닮으려 노력했다. 실패하면 ‘식빵’이라는 비속어와 함께 나쁜 기분을 털어내고 강한 승리욕으로 다시 일어선다. 주저앉지 않고 바로 일어나 다시 시작하다보니 방황하지 않고 태권도를 더 갈고 닦을 수 있었다.
김유진은 금메달을 목에 건 뒤 취재진 앞에서 “이렇게까지 내가 해야 하나 싶을 때도 있었다. 그만하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비속어를 뱉으면서)안 좋은 기분을 털어버렸다”며 “그렇게 살아왔는데 (파리에서)내 가치를 내가 스스로 입증해 정말 기쁘다”는 소감을 남겼다.
피지컬과 지능적인 경기운영능력, 그리고 약점으로 지적받았던 체력을 보완하고 강력한 멘탈 위에 금메달로 자신감까지 충전한 김유진은 이제 ‘태권여제’를 꿈꾸며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