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 피플] 악수 거부했던 펜싱 하를란 눈물 “러시아에 의해 죽은 선수들 위한 메달”
입력 2024.07.30 14:01
수정 2024.07.30 14:06
우크라이나 올하 하를란(34)이 최세빈(24·전남도청)을 밀어내고 동메달을 목에 건 뒤 세계에 메시지를 전했다.
하를란은 30일(한국시각) 프랑스 파리 그랑팔레에서 펼쳐진 ‘2024 파리올림픽’ 여자 사브르 개인전에서 최세빈을 15-14로 누르고 동메달을 획득했다. 5-11로 끌려가던 하를란은 내리 7점을 뽑아내면서 스코어를 뒤집었고, 치열한 접전 끝에 14-14에서 최세빈을 찔러 동메달을 확정했다.
파리올림픽에서 나온 우크라이나의 첫 번째 메달이다.
최세빈과 대접전 끝에 15점을 확인한 하를란은 승리의 감격에 젖어 무릎을 꿇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우크라이나 국기가 그려진 마스크를 벗고 그것에 입을 맞췄다. 하를란은 손톱에도 우크라이나를 상징하는 파란색과 노란색을 칠했다.
러시아 침공 이후 우크라이나가 겪은 수난을 잘 알고 있는 관중들은 하를란을 향해 뜨거운 박수를 보내며 이름을 연호했고, 하를란은 피스트에도 입을 맞췄다.
러시아와 2년 넘게 전쟁으로 고초를 겪고 있는 우크라이나의 하를란은 메달을 가리키며 “조국을 위한 메달이다”라고 말했다. 이어 “다섯 번째 메달인데 의미가 남다르다. 러시아에 의해 목숨을 잃어 파리에 올 수 없는 선수들을 위한 승리다. 또 우크라이나를 대표해 올림픽에 출전한 동료들을 위한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하를란은 2008 베이징올림픽 단체전 금메달, 2016 리우올림픽 단체전 은메달을 비롯해 개인전에서도 동메달을 2개 획득한 우크라이나 펜싱의 상징과도 같은 선수다. 이날 동메달을 목에 걸며 우크라이나 역사상 가장 많은 올림픽 메달(5개)을 보유한 선수가 됐다.
러시아 선수와의 악수를 거부해 파리올림픽 출전 기회를 놓칠 뻔했던 하를란에게 이번 동메달은 더 큰 의미로 다가온다.
하를란은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무대에서 러시아 출신 안나 스미르노바르 15-7 완파했다. 경기 후 악수를 거부해 논란이 됐다. “경기 종료 뒤 선수들끼리 악수를 해야 한다”는 국제펜싱연맹 규정을 어겨 실격 처리됐다. 그런 상황에서도 하를란은 “러시아 선수들과 싸울 수 있지만, 결코 악수하지는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행동이다”라고 말했다.
악수 거부 후 파리올림픽 출전 기회를 잃는 듯했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하를란의 상황을 참작해 출전권을 부여했다. 결국 하를란은 불이익을 감수하면서도 의지를 굳게 지킨 끝에 올림픽 시상대에 올라 우크라이나 최다 메달리스트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