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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심과 욕망이 만들어낸 참사 [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4.07.20 08:23 수정 2024.07.20 08:23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

일상의 공간이 악몽의 현장이 되고 친근한 존재가 위협의 대상이 된다면 어떨까. 재난영화 장르에서 주로 사용되는 공식이다. 재난 상황이 우리의 일상과 가까울수록 관객의 긴장감은 더욱 극대화되기 때문에 일상의 공간, 친근한 존재를 위협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최근 개봉한 영화 ‘탈출: 프로젝트 사일런스’는 우리의 일상 속에 있는 공항대교가 연쇄 추돌 사고로 붕괴 위기에 놓이게 되는 재난영화로 고인이 된 이선균 배우의 유작이다.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국가안보실장 정현백(김태우 분)의 신임을 얻고 있는 안보실 행정관 차정원(이선균 분)은 해외로 유학 가는 딸 경민(김수안 분)을 배웅하기 위해 공항으로 향한다. 기상 악화로 한 치 앞도 구분할 수 없는 안개 속에서 연쇄추돌사고가 발생하고 충돌 차량의 폭발로 공항대교는 붕괴 위기에 놓인다. 이때 극비리에 이송 중이던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군사용 실험견들이 풀려나고 모든 생존자가 그들의 타겟이 되어 무차별 공격당하는 통제 불능의 상황이 벌어진다. 사고 수습을 위해 정원과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책임연구원(김희원 분)이 투입되지만 목숨이 위태로운 절체절명의 상태에서 공항대교를 탈출하기 위한 극한의 사투가 시작된다.


재난 속의 다양한 인간군상의 모습을 보여준다. 영화는 시작부터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이 사건과 사고를 발생시킨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러한 설정은 캐릭터의 구축에서도 드러난다. 인생 한 방을 위해 사는 레커차 운전기사 조박, 슬럼프에 빠진 골프선수 유라, 첫 해외여행을 다녀온 병학과 순옥 부부 등 다양한 인간들을 통해 이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기심과 이타심, 사랑과 희생정신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조명한다. 군견이 살상용 실험견으로 길러진 것이 국가 프로젝트였다는 사실을 은폐하려는 정치인의 욕망과 이기심이 얼마나 잔인한 결말로 초래하는지도 드러낸다.


극한의 상황에서 부모애를 다룬다. 권력욕이 강한 차정원은 공항대교에서 초대형 사고가 일어났음에도 냉정하고 침착하게 차기 대선 후보이자 국가 안보실장인 정현백에게 유리하도록 사고를 톱뉴스로 내고 군사 실험견 프로젝트 사일런스의 진실도 숨긴다. 오로지 정무적 판단하에 비인도적인 언행을 일삼지만, 딸에게만은 따뜻한 부성애로 일관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에게 한없이 누그러지며 딸의 유학을 위해 집까지 파는 등 자식을 향한 사랑을 보인다. 영화의 빌런인 실험견 역시 모성애를 보여준다. 군사 실험견 에코9이 사람들을 향해 공격하는 이유는 자기의 새끼들이 군사용 실험견으로 만들어지고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결국 영화는 인간과 동물의 부모애가 다르지 않음을 전한다.


재난영화 공식을 따랐지만 과감한 편집과 배우들의 열연이 돋보인다. 붕괴 위기의 대교에서 고립된 사람들이 탈출을 위해 사투를 벌인다는 이야기는 재난영화에서 익숙한 플롯이다. 다만 캐릭터나 설정, 전개에서 변화를 줄 수 있지만 영화 ‘탈출’은 재난영화에서 보았던 공식을 그대로 답습한다. 새로운 것 없는 아쉬움이 남는 재난 블록버스터지만 지루하게 늘어질 뻔한 전개를 과감하게 편집했다. 러닝타임은 95분으로 맞추고 긴장감과 속도감 있게 편집해 몰입감을 살린 것은 장점으로 남는다. 배우들의 열연 또한 빛난다. 이선균을 비롯해 주지훈, 김희원, 김수안 등이 펼치는 연기력 덕분에 영화의 부족한 개연성을 상쇄한다.


인간의 본성은 이기심을 기본 바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이타심 또한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는 질서와 따뜻함을 유지할 수 있다. 인간의 이기심 중에서 정치인들의 권력에 대한 이기심은 특별하다. 영화 ‘탈출’은 국민보다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치인들의 과도한 이기심을 조명하고, 부모애는 인간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가 지닌 기본 본능임을 실험견을 통해 보여줘 우리에게 시사점을 준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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