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진 물폭탄…재해는 집요하게 ‘허점’만 파고 들었다
입력 2024.07.11 13:27
수정 2024.07.11 13:27
본격 시작한 홍수기 인명·재산 사고 속출
‘도심침수방지’ 집중하자 지역서 피해
AI 동원한 대책 마련에도 ‘허점’은 남아
전문가 “최대한 촘촘하게 대책 만들어야”
사흘간 쏟아진 물폭탄에 중·남부 지역에서 인명과 재산 피해 사례가 속출했다. 정부가 지난해부터 인공지능(AI) 등을 동원해 예방에 최선을 다했지만, 빗줄기는 예상했던 지역을 빗겨 퍼부었다.
11일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지난 8일부터 시작한 장맛비로 충청도와 경상북도, 전라북도 지역에서 인명사고와 재산 피해가 속출했다. 이날 오전 6시 기준 6명이 숨지고 2명이 실종됐다.
산사태로 충청남도 서천군 비인면에서 70대 남성이, 금산군 진산면에서 60대 여성이 사망했다. 논산의 한 오피스텔에서도 승강기 침수 사고로 남성 1명이 숨진 채 발견됐다.
대구광역시 북구 조야동에서는 밭일을 나왔던 60대 남성이 불어난 물살에 목숨을 잃었다. 충청북도 옥천군 옥천읍에선 승용차가 하천으로 추락해 70대 운전자가 사망했다.
광주광역시 동구 광주천에서도 징검다리를 건너던 70대 남성이 신발을 주우려다 물에 빠져 숨졌다.
지난 8일 충북 옥천군 옹벽 붕괴 사망자까지 포함하면 이번 장마로 인한 사망자는 7명에 이른다.
실종자도 있다. 지난 9일 경북 경산에서 40대 여성이, 10일 충북 영동에서 70대가 실종돼 수색작업 중이다.
시설 피해는 10일 오후 8시 기준 도로와 하천제방 등이 577건 유실됐다. 주택과 차량 등 민간 피해는 271건으로 집계됐다. 6개 시도 42개 시군구에서 4500여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정부는 최근 몇 년 홍수기 잇따른 인명피해가 발생하자 지난해부터 도심지역 침수 예방을 위한 대대적인 시설 보수에 나섰다.
환경부는 지난 4월 광역 지방자치단체 하수도 담당자를 대상으로 도시 침수 예방을 위한 하수도시설 관리현황 점검회의를 열어 시도별 ▲빗물받이 점검 및 청소 실적 ▲맨홀 추락방지 시설 설치 현황 등을 검토한 바 있다.
도시 침수 대비 나선 정부, 빗줄기는 지역에 집중
앞서 지난해 12월에는 ‘도시 침수 걱정 없는 안전한 하수도 정비체계 구축’ 방안을 발표해 ▲대심도 빗물터널 설치 ▲하수도정비 중점관리지역 기반 시설(인프라) 구축 지원 확대 ▲하수관로 유지관리 기준 마련 등 도시침수 예방 정책을 이어오고 있다.
‘재난은 방심을 파고든다’는 말처럼 정부가 도심지 침수 예방에 공을 들이는 사이 물폭탄은 도시 외곽을 공격했다. 이번에 집중호우 피해가 발생한 대부분 지역은 읍면이거나 도시 중심에서 벗어난 곳이다. 도시 밖에서 내린 비는 산사태와 하천제방 붕괴 등을 발생시키며 인명피해를 키웠다.
재난은 취약 지역, 사회적 약자일수록 큰 피해를 보기 마련이다. 정확히는 재해를 통해 취약 지역이 어디인지 드러난다고 봐야 한다. 정부가 적극 대응하는 곳은 피해가 줄기 마련이고, 반대로 관심 밖 지역은 여지없이 사고를 겪는다. 이번 재해는 물론 재작년 서울 신림동 반지하 참변이나, 지난해 충북 청주시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 참사도 마찬가지다.
현실적으로 재해재난을 100% 막기는 힘들다. 다만 과학적 예측과 촘촘한 대응책으로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법은 있다. 정부가 홍수예측지도를 만들고 AI 기술을 이용해 강우 상황을 사전, 사후 예상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오윤경 행정연구원 선임연구원은 “기후 위기로 지난해 집중호우와 같은 기록적 강우가 반복 또는 심화할 가능성이 큰 가운데, 지자체 재난대응체계를 강화하기 위한 과제의 내실 있는 추진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오 연구원은 특히 “정부가 추진 중인 기존 계획 내 과제들이 단위 과제별로 제시돼 있어 종합적인 지자체 재난안전관리 인력 보강이 필요한 기능 및 규모에 대해 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재난취약계층에 관한 관심과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김동진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정책연구위원은 “우리나라는 관련 법에 근거한 안전 취약계층 범위가 재난 취약집단을 충분히 포괄하고 있지 않아, 재난으로부터의 피해 예방과 적절한 사후 지원이 어려운 실정”이라며 “재난으로부터 취약집단 건강을 지키려면 개념 재정립과 함께 법적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 심리·의료 등 지원 정책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