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무구조도 의무화 첫날…긴장감 엇갈린 C레벨 '촉각'
입력 2024.07.03 13:43
수정 2024.07.03 13:46
C레벨 제재 대상…지주 회장은 처벌 어려워
금융권 초안 보완 작업…'1호 제재' 부담감
책무구조도 도입을 의무화하는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지배구조법) 개정안이 본격 시행되면서, 은행권 'C레벨' 임원들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기존에는 구체적 책무가 임원 별로 정해져 있지 않아 횡령 등의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담당 임원이나 최고경영자(CEO)에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 그러나 앞으로는 책무구조에 따라 이들도 제재 대상에 포함될 전망이다.
3일 은행권은 개정 지배구조법 개정안 시행으로 책무구조도 제출 시점을 놓고 고심 중이다. 법정 제출 기한인 내년 1월 2일까지 책무구조도를 작성해 전달하면 되지만, 금융당국이 ‘당근책’을 제시하면서 조기 제출을 유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당국은 전날 책무구조도 해설서를 공개하면서, 책무구조도를 미리 제출하면 내년 1월 2일까지는 금융사고가 발생해도 제재하지 않기로 했다. 책무구조도 제출 시점부터 제재 대상에 오를 수 있다는 금융권의 우려를 감안한 것이다. 이날 오후 2시에 열린 금융권 실무협의회에서도 이를 강조하며 빠른 제출을 독려했다.
책무구조도는 금융권에서 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배임, 횡령 등을 예방하기 위해 당국에서 새롭게 도입한 규제 장치다. 지배구조법상 금융사 임원의 직책별 내부통제와 위험관리에 대한 책임을 명시해 부실해 대한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해임요구, 직무정지, 문책경고, 주의적 경고, 주의 등 행정제재가 적용된다.
여기서 ‘임원’이란 CEO를 포함 최고리스크책임자(CRO), 최고재무책임자(CFO), 금융소비자보호총괄책임자(CCO), 최고정보보호책임자(CISO) 등 C레벨 임원들과 이사, 감사, 준법감시인, 위험관리책임자 등 일부 직원이 포함된다. 시중은행 기준 20~30여 명 수준이다.
금융당국은 금융사가 책무구조도를 제출한 시점부터 이를 위반한 경우 제재할 수 있다. 구체적 제재 수위 등에 대해서는 조만간 ‘내부통제 관리의무 위반에 대해 제재 운영 지침’을 마련해 공개할 예정이다.
다만 C레벨이라 해도 은행을 비롯해 증권·보험·카드 등 계열사에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지주사의 C레벨은 제재를 비껴갈 것으로 보인다. 금융그룹 회장들은 사실상 제재 대상에서 빠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책무구조도가 책무를 배분해야 하는 대상에 ‘책무에 사실상 영향력을 미치는 다른 회사 임원(대표이사 포함)’을 넣긴 했지만, 실제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때 지주 회장이나 임원이 계열사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규명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금융사고가 은행에서 주로 일어나는 것을 고려하면, 지주사까지 책임을 묻기 어려워 제도 실효성에 대한 지적이 나온다. 금융당국은 금융사 의견 수렴을 통해 개선 작업을 해나갈 계획이다.
책무구조도 제출 '첫 타자'는 은행권이다. 앞서 당국은 자산 규모로 업권별 유예기간을 차등했다. 지주와 은행은 6개월의 유예기간을 부여, 보험·증권·자산운용사에는 1년의 유예기간이 부여했다. 주요 지주 및 은행들은 책무구조도 초안은 이미 완성했고, 내부 임직원의 의견을 듣고 수정·보완 작업에 들어갔다. 은행연합회 차원에서도 모범사례 취합을 하고 있어 당국의 내부통제 제재 운영지침 등을 취합해 책무구조도를 완성할 것으로 예상된다.
관건은 제출 시기다. 책무구조도를 조기에 제출했다가 내부통제 부실 등으로 금융사고가 발생하면 '1호 금융사'라는 오명을 떠안는다. 일단 책무구조도를 제출하는 순간부터 CEO 관리책임 리스크를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고 가장 늦게 내면 인센티브까지 제시했던 금융당국에 '괘씸죄'로 찍힐 수 있다.
금융권에서는 홍콩H지수 ELS로 홍역을 치른 KB국민은행이나 최근 100억 횡령 사고로 금융감독원장으로부터 경고를 받은 우리은행이 상대적으로 책무구조도를 빨리 내놓을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제재 면책은 환영할 부분이지만 구체적 내용이 나오지 않아 신중을 기할 수 밖에 없는 부분"이라며 "각 사 별로 눈치싸움을 하다가 3분기 이후 본격 제출이 이뤄질 것 같다"고 내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