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끌면 18개 가져온다'…대놓고 '상임위 독식' 엄포 놓는 野, 협치는 어디로?
입력 2024.06.04 05:15
수정 2024.06.04 10:21
오는 7일 원 구성 협상 시한 앞두고 여야 이견 팽행선
쟁점은 법사위·운영위·과방위…與 "野, 무리하면 배탈 나"
22대 국회 상임위원장 배분을 놓고 더불어민주당의 완강한 태도가 이어지고 있다. 여야 협상이 지지부진하면서 거대 야당인 민주당이 상임위원회 18개를 독식할 가능성이 커졌다는 해석도 나온다.
3일 정치권에 따르면 여야는 지난달 중순부터 원 구성을 위한 협상에 돌입했지만, 171석 다수 의석을 확보한 야당과 견해 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국회법에 따르면 개원 직후 열리는 임시국회 첫 본회의에서 국회의장단을 선출하고, 이로부터 3일 안에 상임위원장을 선출해야 한다. 22대 국회 본회의는 오는 5일 처음 열리기에 7일이 원 구성 협상 시한이 된다.
박찬대 민주당 원내대표는 전날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여야 합의로 상임위를 짜는) 관례보다 법이 우선"이라며 "국민의힘은 시간만 끌고 있는데, 계속 무성의한 태도를 보인다면 국회법 규정대로 원 구성을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박 원내대표는 "원만하게 협상이 이뤄지면 상임위원장 자리는 민주당 11곳, 국민의힘 7곳으로 배분하겠지만, 국민의힘이 시간만 허비한다면 표결로 18개 상임위를 다 가져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7일까지 원 구성이 미완료될 가능성에 선을 그은 것이다.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도 "여야가 원 구성을 논의한 지 벌써 3주가 지났다"며 "이 정도면 정말 큰 이견이 존재한다고 해도 결론을 내기에 충분한 시간 아니냐"고 말했다. 그는 "그동안 국민의힘은 매우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했다"며 "자신들의 안조차 내놓지 않고 자꾸 언론을 상대로 관례 이야기만 반복하는데 이건 명백한 시간끌기"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임위 배분 방식에 대한 국회법 규정은 없지만, 민주화 이후 원 구성 협상은 의석 수를 기준으로 상임위원장을 나눠왔다. 핵심은 법제사법위원회와 운영위원회 등 주요 상임위원장 배분이다.
법사위는 다른 상임위서 다뤄진 법안을 본회의에 상정할지 여부를 판단하는 주요 권한을 갖고 있다. 이로 인해 원내 1당이 국회의장을 배출하면, 2당이 법사위원장직을 맡는 게 균형추처럼 여겨졌다. 문제는 민주당의 '싹쓸이 구상'이 이어지면서 견제와 균형의 원칙이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민주당은 지난 총선에서 승리를 거두며 171석 다수 의석을 차지한 후 '총선 민의'를 앞세워 법사위원장과 운영위원장 확보에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미 법사위에 5선의 박지원 의원과 정청래·서영교·장경태 최고위원 등 친명 중진급과 핵심 지도부 인사들을 배치하고, 과방위원장도 반드시 가져가겠다는 태도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국민께서 민주당에 다수 의석의 지위를 주셨지만, 입법 독재를 하라고 하신 적은 없다"며 "민주당이 총선에서 나타난 민의를 아전인수식으로 해석하고 정치효능감 운운하며 핵심 상임위를 독점하고 막가파식 국회 운영을 하면 국민들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고 성토했다.
그는 "민주당은 여야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한 협치와 합의라는 대원칙에 기초해 원 구성 협상에 임해주길 바란다"며 "1당이 국회의장을 가져가면 2당이 법사위원장을 하는 것이고 운영위는 87년 민주화 이후에 아직까지 한 번도 깨지지 않은 여당이 차지해 온 관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추 원내대표는 "민주당은 원 구성 협상에서 힘자랑하며 떼를 쓰는 정치를 그만하기를 바란다"며 "남의 것을 다 빼앗아 무리하게 드시면 큰 배탈이 난다는 것을 유념하기를 바란다"고도 덧붙였다.
역사적으로 독주 상황이 계속되면 역풍은 부수적으로 따른다. 민주당은 21대 국회 전반기 상임위원장을 '싹쓸이' 했던 전례가 있다. 당시 민주당은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 협상 대신 정보위를 제외한 17개 상임위원장을 단독으로 선출했다. 32년 만에 첫 사례로, 법안 처리에 관해 절대 권한을 거머쥐었다.
이후 민주당은 쟁점 법안이던 공수처법과 부동산법 등을 단독 처리했다. 하지만 압도적 수적 우위를 앞세워 입법 폭주를 하는 것처럼 비치자 중도층의 경고가 이어졌다. 이를 바라보는 지지층의 이탈 또한 2년 뒤 대선에서 고스란히 드러났다. 독주 지적에 뒤늦게 상임위원장을 분배하는 협치 움직임을 보였지만, 민의보다 이해관계를 우선시한 한계가 노출된 셈이다.
한편 민주당이 국회 정보위원회를 포함한 18개 상임위원장 자리를 독식하면 9월 정기국회 운영마저 불투명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1988년 13대 국회 전반기부터 21대 국회까지 모두 18차례의 원 구성 가운데, 국회법상 시한을 준수한 경우는 임기 개시 9일 만에 문을 연 18대 후반기 단 한 차례뿐이었다.
최악의 원 구성 협상 진통을 겪은 14대 전반기 국회 때는 국회의장 선출에만 한 달이 걸렸고, 그 뒤로 약 석 달이 지난 후에야 상임위원장 선출이 완료됐다. 국회가 정식으로 문을 여는 데 125일이 걸렸다. 직전 21대 국회는 2020년 6월 16일에 원 구성을 완료해 47일이 소요됐다. 13대 이후 원 구성에는 평균 41.7일이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