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안 열어주는 아내에 화 나 우유 투입구에 불 붙인 남편…방화 '무죄' 왜? [디케의 눈물 222]
입력 2024.05.08 05:00
수정 2024.05.08 05:00
피고인, 아내가 현관문 열어주지 않자 우유 투입구 방화…법원, 현주건조물방화 '무죄'
법조계 "화재 규모 우유투입구 그을린 정도에 그쳤고 고의성 없다고 판단해 무죄받은 것"
"겁 주려는 목적으로 우유 투입구에 불 붙였더라도…재판부, 더 엄격하게 처벌 했어야"
"피고인, 술먹고 난동부리고 방화까지 한 만큼 '협박죄' 추가 기소 가능성…유죄 선고될 것"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꾸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 아내에게 화가 나 우유 투입구에 불을 붙인 혐의를 받는 50대 남성이 무죄를 선고받았다. 법조계에서는 화재의 규모가 우유 투입구를 그을리는 정도에 그쳤고 방화에 고의성이 없다고 판단해 무죄가 내려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피고인이 당시 '죽여버리겠다'고 난동 부리고 방화까지 저질렀다는 점에서 검찰이 협박죄로 추가 기소한다면 유죄가 내려질 수 있는 사안이라고 판단했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2부(조승우 부장판사)는 현주건조물방화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최근 무죄를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0월 술을 마시고 귀가했을 당시 폭력을 우려한 아내가 현관문을 열어주지 않자 "죽여버린다. 불 지른다"고 소리치며 일회용 라이터로 우유 투입구에 불을 붙인 혐의로 기소됐다. 수사기관에서 A씨는 불을 붙인 이유에 대해 "현관문을 열도록 B씨를 겁주기 위함이었다"고 진술했다. 그의 휴대전화에 따르면 A씨는 불을 붙이기 전후 아내에게 문을 열라고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재판부는 "피고인이 불을 붙인 당시 집에는 아내뿐 아니라 딸도 거주하고 있던 점, 바로 앞집에는 나이 든 어머니가 거주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며 "피고인이 불을 질러 가족들을 위험에 빠뜨릴 의도가 있었을지는 의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피고인이 일으킨 불은 화력이 약해 건물 내부 화재방지 센서 등이 작동할 정도의 연기까진 나지 않았고 아내가 페트병에 담겨있는 물을 부어 쉽게 껐다"며 "불을 붙이기 위해 일회용 라이터만 사용했을 뿐 다른 인화성 물질은 사용하지는 않았다"고 판시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현주건조물방화죄가 성립하려면 피고인이 매개물에 불을 켜서 붙였거나 또는 피고인의 행위로 인하여 매개물에 불이 붙게 됨으로써 연소작용이 계속될 수 있는 상태에 이르러야 한다. 또한 피고인에게 방화의 고의가 있어야 한다"며 "그러나 이번 사안은 화재의 규모가 우유 투입구가 그을리는 정도에 그쳤고 피고인과 부인의 진술 또한 방화의 고의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 피고인에게 현조방조물 방화라는 죄명을 엮기엔 화재 규모, 고의성 측면에서 다소 무리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도윤 변호사(법무법인 율샘)는 "현주건조물방화죄의 고의 여부는 미필적 고의로도 충분하다. 아울러 실제로 불이 나지 않았더라도 불이 날 가능성만으로도 이미 위험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며 "비록 겁을 주려는 목적으로 현관문 아래쪽 우유 투입구에 불을 붙였다고 할지라도 그로 인해 큰 불로 이어질 가능성, 실제 불이 났을 때 발생할 피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볼 때 재판부에서 좀 더 엄격하게 처벌하는 게 타당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1심에서는 피고인에게 현주건조물방화죄의 고의가 없다는 취지로 무죄가 선고됐기에 검찰 측에서 당시 상황, 피고인의 진술 등을 다시 한 번 검토해 항소를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과거 현주건조물방화죄의 고의를 부정한 판례도 있어 항소심에서 원심 판결을 뒤집기 위해서는 사실관계 등의 재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조언했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현주건조물방화죄가 성립하려면 불이 매개물을 떠나 건물 자체에 붙어 독립해서 타오를 가능성을 인식 또는 용인하는 고의가 입증돼야 한다. 재판부는 방화의 고의가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피고인에게 무죄가 선고된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화재 피해 규모가 작다고 하더라도 이웃에게 번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판결과 별개로 협박죄로 기소할 수 있는 사안이다. 협박죄는 피해자가 공포심을 느꼈는지 여부가 가장 중요하다"며 "피고인은 사고 당시 현관문 앞에서 '죽여버리겠다'며 난동을 부리고 방화까지 저질렀다. 검찰이 협박죄로 기소한다면 충분히 유죄가 선고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