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소통 행보, 순서도 맥락도 없다
입력 2024.04.22 07:07
수정 2024.04.22 07:07
한동훈만 쏙 빼고 홍준표, 이재명부터
뒤늦게 ‘단체 오찬’ 제안…독대 피하면서
대권욕으로 韓 두들겨 패는 洪과 4시간 만찬?
韓 잘못이 2할이면 尹 책임은 8할, 아직도 몰라
대통령 윤석열이 심히 중심을 잃고 있다.
그의 정부 성공을 위해 여당 승리, 최소한 참패는 모면하려고 최선을 다한 끝에 물러난 한동훈에게 위로와 감사의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여론이 심상치 않자 대통령실이 뒤늦게 비대위원들 모두와의 ‘단체 오찬’을 제안했으나 한동훈이 건강을 이유로 완곡히 거절했다. 홍준표를 먼저 만나고 韓은 끼워 팔겠다는 형식이 문제였다.
이재명은 법원에서 10여 개 혐의 중 단 한 개라도 유죄를 선고받을 가능성이 여전히 크다. 그래도 제1야당 대표는 대표다. 그와 만나서 한두 시간 대화하는 건 당연하다. 한사코 소매(영수회담의 수(袖)가 소매)를 뿌리침으로써 ‘오만 불통’ 비판을 들을 필요가 없었다.
일부 강성(꼴통) 보수우파 지지자들의 성원을 여전히 받고 있는(4월 후반 현재 전국 지지율 3%, 한동훈 24%) 홍준표하고도 심야에 장시간 술(이게 빠졌을 리 있겠나?)을 마셨다. 그러니 192석 권력을 쟁취한 민주당 대표를 안 만날 수도 없다.
홍준표는 사실상 경선 불복자로서 윤석열이 대선 승리 이후 거들떠보지 않았던 인물인데, 그를 먼저 불렀다. 마지못해 시작한 소통 행보가 갈팡질팡, 순서가 뒤바뀌고 맥락도 없다.
윤석열은 한동훈부터 찾았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사적인 관계로는 맏형으로서, 여당 대표를 위로하고 (개헌과 탄핵 저지선이라도 지켜 준 분골쇄신에) 고마움을 표해야 도리다.
192 대 108 대패의 책임이 韓 2할이라면 尹 몫은 8할이다. 선거 전후 모든 여론조사가 그걸 보여 주고 있다. 또 현장에서 악전고투한 국민의힘 낙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전하는 민심도 일치한다.
“대파-의료-이종섭-황상무 사태로 망했다.”
윤석열은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의 입에서 “내가 선거를 말아먹었다”라고 해석될 수 있는 말은 지금까지 전혀 나오지 않았다.
윤석열 외 신문에 이름이 나는 유명 인사 중에 한동훈 탓이 절대적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딱 둘이다. 하나는 대구시장 홍준표고 다른 하나는 한때 윤석열의 멘토라고 소개됐던 변호사 겸 SNS 책사 신평이다.
이 신평과도 윤석열이 4시간 만찬을 하게 될지 몹시 불안하다. 윤석열은 합리적 지지자들에게 그만큼 신망을 급속히 잃고 있다. 왜 ‘꼴통 보수 잘난 체 선수인 뒷방 노인네’들을 갑자기 그토록 좋아하게 됐나?
신평은 한동훈을 ‘과대망상 병 환자’로 취급했다.
“국민의힘 총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은, 한동훈의 과신이다. 오직 자신이야말로 나라를 구할 수 있다는 과도한 자기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혼자서 선거판을 누볐다. 변명은 그만하자.”
윤석열은 한동훈 탓을 해줄 사람을 만나 그 얘기를 듣고 싶은 처지로 빠져 있다. 신평이 저렇게, 홍준표가 이렇게 한동훈을 무참하게 패니 위안이 되는가?
“총선을 대권 놀이 전초전으로 삼다가 역대급 참패를 당한 그는 우리에게 지옥을 맛보게 했던 정치 검사였고, 윤석열 대통령도 배신한 사람이다. 더 이상 우리당에 얼씬거리면 안 된다. 정권 황태자 행세를 하다 자기 주군에게 대들다가 폐세자가 되었을 뿐이다.”
대통령실이 4시간 만찬을 선전해 주자 의기양양한 그는 ‘김한길 총리-장제원 비서실장’ 추천 사실도 “필요한 때만 솔직한 사람이 미주알고주알”(권영세) 누설했다.
자신의 차기 대권 도전 가도를 대통령 불도저로 닦아 놓기라도 한 듯한 기세다. 한동훈이 홍준표의 ‘배신’ 공격에 답하는 글을 지난 주말 SNS에 올렸다.
“잘못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은, 배신이 아니라 용기다. 사심 없이 신중하기만 하다면. 정교하고 박력 있는 리더십이 국민의 이해와 지지를 만날 때 난관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신념을 가지고 있다. 정교해지기 위해 시간을 가지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
한동훈 공격으로 ‘걸레’ 비난받는 홍준표보다 스타일을 더 크게 구긴 사람은 윤석열이다. 이제야 비로소 그가 왜 ‘김건희 여사 사건은 국민 눈높이로 봐야 한다’라는 발언 후 한동훈에게 비대위원장 당장 그만두라고 소동을 벌였는지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이 많다.
한동훈의 책임 2할은 대권 의식 셀카 찍기에 있지 않다. 그것은 지지자 결집과 흥행에 도움이 됐고, 한동훈 자신에게도 ‘자기 몸을 소진할’ 투지 제공 원천이기도 했다.
도태우-장예찬 공천 취소 좌파 전략으로 집토끼들 다 잃었다고? 윤석열 술친구였다는 검찰 수사관 출신 주기환을 공천 배제해 호남을 소외시켰다고? ‘윤빠’들의 광신도 공격이다.
생각해 보자. 도태우-장예찬 공천을 유지했으면 민주당과 좌파 선동 매체들이 가만히 있었겠나? MBC는 장예찬 외설 어록을 다량 발굴해서 발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동훈에게 보란 듯 윤석열이 대통령 민생 특보로 임명한 주기환은 또 얼마나 좋은 먹잇감인가?
한동훈이 놓친 부분은 선대위를 원톱 대신 야당의 대파 네거티브 선동 등에 대응하는 팀으로 구성하지 않은 것과 용산에 더 강하게 할 말을(언론 플레이를) 하지 않은 것이다. 그는 이준석 같지 않아서 너무 점잖았고, 차마 ‘윤석열 형’에게 심한 소리를 도저히 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리고 20~30대 중도 무당층을 끌어들이는 전략 부재도 그의 부족한 역량으로 평가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들은 용산이 잘못해서 일어난 결과에 대한 분석이다.
윤석열이 평소에 소통을 더 잘하고, 겸손하고, 대파나 이종섭, 의료 대란 같은 실수나 패착을 두지 않아서 총선에서 대패하지 않았더라면 한동훈은 잘한 일밖에 없다는 평가로 도배됐을 것 아닌가?
윤석열은 변하지 않고 있다. 다 안 변해도 한동훈에 대한 졸렬한 감정만큼은 변해야 한다. 그것이 자기도 살고 보수우파 정권도 사는 길이다.
글/ 정기수 자유기고가(ksjung7245@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