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는 사이 미행·도촬 당했는데…스토킹 처벌 못한다? [디케의 눈물 205]
입력 2024.04.05 05:06
수정 2024.04.05 05:06
흥신소, 의뢰받고 피해여성 도촬 및 미행…법원, 스토킹처벌법 무죄 선고
법조계 "몰래 따라다녔다면 '스토킹 행위'는 맞으나…일회성, 처벌 어려워"
"의사에 반해 반복해서 따라다녀야 스토킹…인지 못했다면 죄 성립 안 해"
"스토킹법 최근 마련돼 흥신소 업무 관련 규율 미비…판례 더 축적돼야"
흥신소에서 남을 몰래 촬영하거나 미행했어도 상대가 이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스토킹 범죄가 성립할 수 없다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법조계에선 타인의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접근할 경우 스토킹 범죄가 성립하지만 상대가 스토킹 사실을 몰랐다면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꼈다고 볼 수 없기에 처벌할 수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기간이 길지 않아 판례가 축적되고 있는 단계라며 어느 범위까지 범죄로 볼 수 있는지 교율하는 법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구지법 형사항소4부(김형한 부장판사)는 의뢰인 요청으로 제3자 개인정보를 캐내 알려준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A(40대)씨에 대한 항소심에서 스토킹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에 한해 무죄를 선고했다고 2일 밝혔다. 앞서 흥신소 일을 하던 A씨는 지난해 7월 수년간 혼자 좋아해 온 여성을 스토킹하며 살해하려 준비하던 30대 남성 B씨의 의뢰를 받아 상대 여성을 미행하고 사진을 촬영해 B씨에게 전송한 혐의를 받았다.
스토킹처벌법 위반 혐의와 관련해 항소심은 A씨가 피해여성을 미행하려 직장 주변에서 기다린 사실을 상대방이 전혀 알지 못해 A씨 행위가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킬 만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또 A씨가 여성을 미행하기 위해 기다리거나 사진을 촬영해 B씨에게 전송한 행위가 각각 1차례에 불과해 스토킹 범죄 성립에 필요한 '지속적 또는 반복적 스토킹 행위'라는 구성요건도 갖추지 못했다고 봤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스토킹 처벌법은 타인의 의사에 반해 반복적으로 접근하거나 따라다녀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일으키는 행위를 금지한다"며 "해당 사안에서는 피해자가 인식조차 하지 못하였으므로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꼈다고 볼 수 없어서 범죄의 구성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시한 것이다. 구성요건 자체에 '불안감이나 공포심을 느낄 것'이 명시되어 있기에 인지하지 못한다면 지속적으로 따라다녀도 처벌할 수 없다"고 말했다.
김성훈 변호사(법무법인 현림)는 "'스토킹 범죄'란 접근하거나 따라다니며 진로를 막아서는 행위, 부근에서 기다리거나 지켜보는 행위 등을 지속적 또는 반복적으로 하는 행위를 뜻한다. 한 차례 피해여성을 따라다닌 A씨의 행위는 '스토킹 행위'로는 볼 수 있지만 지속성과 반복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어 스토킹 범죄로까지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스토킹처벌법이 시행된 지 얼마되지 않아 처벌 범위가 어디까지인가에 대해 조금씩 판례가 축적되어가고 있는 단계이다. 다만 흥신소의 업무를 스토킹 범죄로 볼 수 없다고 해도 스토킹 행위도 경우에 따라 불법 행위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합법적 테두리 안에서 이뤄지는지, 어느 범위까지 허용되는지 규율할 수 있는 관련 법이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예진 변호사(아리아 법률사무소)는 "개인의 정보를 위법적으로 수집할 경우 개인정보보호법이 성립하며 허락받지 않은 위치추적 행위 또한 위치정보법에 따라 처벌된다. 다만 해당 사건의 경우 상대방이 인지조차 못했을 뿐 아니라 미행 및 촬영 행위도 1회에 그쳤다"며 "스토킹처벌법 2조 1호에 명시된 지속성과 반복성이 없었기에 애초에 처벌이 불가한 것이고 법리와 문헌에 충실하게 해석한 판례이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