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자가 재판 받고 싶은 나라, 한국…솜방망이 처벌 나아질까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4.03.28 07:06
수정 2024.03.28 07:06
대법원, 26일 권고형량 상향한 양형기준 신설…'솜방망이' 지적 반영
미성년자 대상 마약범죄, 최대 무기징역…스토킹범, 최대 징역 5년형
7월부터 새 기준 적용…법정최고형 얽매여 엄벌 못 내리는 경우 줄어들 것
판사들의 현명하고 엄중한 판단 필요한 때…사법부, 본연 기능 충실해야
'범죄자가 재판 받으러 오고 싶어하는 나라'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돌 정도로 죄인에게 한없이 너그러웠던 사법부가 처벌 기준을 상향한 새 양형기준을 마련했다. 마약류 범죄나 스토킹 등 일상에서 흔히 접하는 범죄들은 물론 핵심 기술의 해외 유출 행위에 대한 최대 권고 형량도 대폭 늘렸다. '솜방망이' 처벌이 매년 이어지고 있다는 지적을 어느 정도 반영한 결과이다.
대법원 양형위원회에서 지난 26일 최종 의결한 새 양형기준을 살펴보면 우선 마약류 범죄의 권고형량이 상향됐다. 특히 미성년자를 대상으로 하거나 대량으로 제조·유통하는 경우 최대 무기징역까지 선고할 수 있다. 최근 청소년 마약범죄 증가 추세와 마약류 확산세에 따라 마약 중독과 더 큰 범죄로의 발전을 막고자 함이다. 대마를 단순 소지하거나 투약하는 범행도 더 무겁게 처벌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
국가 핵심기술 등 국외 유출 범죄는 최대 징역 18년까지 권고한다. 일반적인 산업기술을 유출하는 경우도 국외는 징역 9년에서 15년, 국내는 징역 6년에서 9년으로 샹항하는 등 기존보다 무겁게 처벌할 것을 제안했다. 한 국가의 핵심기술이 곧 국가의 국력(國力)이자 경제력으로 이어지는 현대 산업구조상 기술 유출은 국가 경제 전반에 치명적인 피해를 안긴다. 선처 없는 엄중한 처벌이 필요한 이유다.
스토킹 범죄에 대한 양형기준 상향 및 신설도 눈에 띄는 대목이다. 스토킹은 살인 등 다른 강력 범죄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기에 죄질이 나쁜데도 함부로 벌금형을 선고하지 못하도록 양형기준을 신설한다. 흉기를 휴대할 경우 최대 5년까지, 일반 스토킹은 최대 3년까지 권고하며 흉기 휴대 스토킹에서 가중 인자가 많으면 원칙적으로 징역형을 선고해야 한다. 일반 스토킹 범죄와 잠정조치 위반죄도 가중 인자가 많으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벌금형을 선택할 수 있게 했다.
이 기준안은 오는 7월 1일 이후 공소 제기된 사건부터 적용된다. 양형기준은 재판부가 판결할 때 참고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라 반드시 따라야 하는 법적 구속력은 없으나 이를 벗어난 판단을 내리려면 그 이유를 판결문에 기재해야 한다. 합리적 이유 없이 기준을 위반할 수는 없다는 뜻이다. 법정최고형에 얽매여 죄에 합당한 처벌을 내리지 못하는 경우가 다소간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만큼 새 양형기준에 맞춘 판사들의 엄중한 판단이 긴요해 질 것이다. 사법부가 본연의 기능에 충실해 범죄자들이 두려워하는 법망을 구축해나가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