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적 소명 다한 여가부, 흔들림 없이 폐지 추진해야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4.03.11 07:11
수정 2024.03.11 07:11
20년 넘게 존재하며 여성 인권 신장과 가족정책에 성과 거두기도
하지만 지금은 불필요한 갈등 일으키며 사회분열 야기…역효과
여가부만의 필수기능 없어…폐지돼도 업무공백 발생하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여성가족부 폐지가 본격화되고 있다. 김현숙 전 여가부 장관의 사표가 지난달 22일 수리되면서 여가부는 현재 신영숙 차관의 직무대행 체제로 운영되고 있다. 그리고 여가부 실·국장급 공무원들을 타 부처 출신으로 임명하면서 폐지 움직임은 더욱 뚜렷해지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이런 여가부 폐지 움직임을 4월 총선을 의식한 정부의 전략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여가부 폐지를 위해서는 정부조직법을 개정해야 하는데, 이는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승리하지 못한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적 전략을 떠나서 여가부는 사실상 그 시대적 소임을 다 했기에 폐지는 흔들림 없이 추진돼야만 한다. 이제는 '여가부만이 할 수 있는 일'이나 '여가부가 반드시 참여해야 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여성가족부는 1998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면서 신설된 여성특별위원회가 그 시초다. 이후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며 2005년 여성가족부로 개편됐고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여가부가 20년 넘게 존재하면서 과거 남성에 비해 억압됐던 여성의 인권을 신장시키고, 조손가구·1인가구 등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고려한 가족정책을 시행한다는 순기능은 이미 충분히 달성했다. 하지만 이제는 이 사회의 절반을 차지하는 남성에 대한 역차별 논란을 불러오며, 여가부가 사회 구성원 간 감정의 골을 더 깊게 하는 사회분열 부작용을 불러오고 있다.
한 예로, 지난 2018년 여가부는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에 따라 국민연금 등 연기금의 투자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모든 국민이 납부해서 조성됐고, 모든 국민의 노후를 책임져야 할 연기금을 여성 고위직을 만들어내는 데 동원하겠다는 발상에 온갖 비판이 쏟아지자 여가부는 이를 황급히 철회했다.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여성 고위직을 만들어 내야한다는 여론과, 기업의 자율경영을 침해하는 행위라는 여론이 맞붙으며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이 야기됐다.
더구나 여가부는 지난해 전북 새만금에서의 세계스카우트잼버리 부실 운영으로 인해 우리나라의 평판에 큰 악영향을 끼쳤다. 또 지금 20~30대 남녀간의 젠더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있음에도 여가부가 이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는 알려진 것이 없다. 사실 여가부에서 해결할 방법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여가부가 폐지되면 현재 여가부가 담당하고 있는 업무들에 공백이 생길 것을 우려하기도 한다. 하지만 여가부는 원래 만들어질 당시부터 정부 다른 부처들의 업무를 조금씩 가져와 운영했던 부처다. 여가부가 폐지되면 그 부처들에 해당 업무들을 다시 돌려주면 될 뿐이다.
여성의 일자리 문제는 고용노동부에서, 학교 밖 청소년과 여학생에 대한 문제는 교육부와 각 지자체에서, 여성 보건과 아동 양육에 대한 문제는 보건복지부에서, 성범죄에 대한 문제는 경찰·검찰 등 수사기관에서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
여가부만이 할 수 있는 필수 기능이 있다면 당연히 존속시켜야 할 것이다. 하지만 '이 일은 여가부만이 할 수 있다'고 자신있게 내밀 수 있는 업무는 없다. 이미 그 시대적 소명을 다한 부처는 폐지하는 것이 정답이다. 따라서 총선 결과와 무관하게 정부는 여가부 폐지를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가야 하며 야당도 이에 협력하는 것이 갈등으로 인한 에너지 소모를 줄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