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혹한 동물학대범, 징역형 늘고 있다…달라진 판사들 [디케의 눈물 197]
입력 2024.03.15 05:21
수정 2024.03.15 06:47
40대 남성, 들개에 70cm 길이 화살 쏴 관통상…동물학대 혐의 징역 10개월
법조계 "구형량 넘어선 처벌 이례적…잔인한 수법, 중한 처벌요소로 본 것"
"아직 민법상 동물은 '물건'으로 취급되지만…생명체라는 인식 확립돼 가고 있어"
"동물학대 범죄, 양형기준 아직 구체적으로 없어…재판부 따라 형량 갈리기도"
지나가는 개를 향해 화살을 쏴 관통상을 입힌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40대에게 검찰 구형량보다 높은 징역 10개월 실형이 선고됐다. 법조계에선 피고인의 행위가 매우 잔혹하며 범행도구로 쓰인 활을 직접 제작하는 등 치밀하게 범행을 준비한 점이 중한 처벌요소로 작용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특히, 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확립돼 가면서 판사들도 동물학대범에게 징역형을 선고하는 사례가 늘고 있고 실질적인 처벌 형량도 계속 높아지고 있는 추세라고 강조했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제주지방법원 형사2단독은 최근 동물보호법 위반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A(49)씨에게 징역 10개월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앞서 A씨는 2022년 8월25일 제주 서귀포시 대정읍에서 자신의 닭 사육장 주변을 지나가던 들개를 향해 70cm 길이의 화살을 쏴 관통상을 입혀 학대한 혐의를 받았다. A씨는 해외 직구로 화살 20개를 구입하고 활은 나무와 낚싯줄로 직접 만든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법정에서 '당시 60m 떨어진 곳에서 화살을 쐈는데 맞을 지 몰랐고 당황스러웠다'는 취지로 고의가 없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결심공판에서 A씨에 대해 징역 6개월을 구형하면서 "피고인은 과거 들개로부터 자신이 키우던 닭들이 모두 물려 죽어 들개에 대한 앙심이 있었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목격자 등의 진술과 피해견의 수술 당시 사진, 압수된 활과 화살 등을 보면 범행 내용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동물법 전문 김태연 변호사(태연 법률사무소)는 "동물보호법에 따르면 동물이 죽지 않더라도 상해에 이르게 할 경우 2년 이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 벌금형에 처한다. A씨가 받은 징역 10개월은 법정형 내에서 이뤄진 처벌이기는 하나 검찰의 구형량을 넘어섰다는 점은 이례적이다"며 "재판부는 개를 70cm 길이의 긴 화살로 쏜 피고인의 잔인한 행위를 중한 처벌요소로 본 것 같다. 또한 '동물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동물학대 사건을 주의 깊게 보고 있는 여론의 시선도 반영됐을 것이다"고 설명했다.
이어 "민법상 동물은 하나의 '물건'으로 지칭하고 있으나 최근에는 이런 인식에서 벗어나 동물은 '물건이 아닌 생명체'라는 취지로 변화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보다 징역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늘었고 실질적인 처벌 형량이 점차 올라가고 있다"며 "법정형의 변화가 없음에도 실제 형량이 높아지고 있는 것은 법원에서도 국민 법감정을 충분히 인식하고 반영하고 있다는 뜻이다"고 강조했다.
동물법 전문 한주현 변호사(법무법인 정진)는 "재판부에서는 범행 행태의 위험성이나 의도성을 중하게 본 것 같다. 특히 개에게 쓴 활을 본인이 직접 제작하고 화살을 해외 직구로 구하기까지 했다는 점은 개에게 상해를 입히겠다는 확실한 의도를 갖고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뜻이므로 폭력성의 잠재적인 모습 나아가 다른 범행으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엿보인다고 법원에선 판단한 것이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법정형에 부합할 정도의 선고가 많이 안 나왔지만 2~3년 전부터 실형 선고가 늘었다. 실제로 지난해 이른바 '동물학대 N번방'으로 불리며 동물을 포획하고 학대 영상·사진 등을 공유한 사건에 대해서 실형이 내려지기도 했다"며 "다만 동물학대 범죄의 기준에 대한 양형 기준이 구체적으로 마련돼 있지 않아 아직 재판부에 따라 형량이 비일관적으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에 경찰청에서도 양형 기준 마련을 위한 의견을 꾸준히 내고 있는 상황이다"고 덧붙였다.
전문영 변호사(법무법인 한일)는 "통상적으로 6개월 정도의 구형량이 나왔을 때 피고인이 초범이고 혐의를 인정하며 반성하고 있다면 집행유예 혹은 구형량의 70~80%가량만 인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며 "특히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에서 실형이 나오는 사례는 흔하지 않은데 이번 판결은 보기 드문 사례이다"며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사회적으로 강화되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흐름에 발 맞춰 법원의 인식도 변화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