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 동상 모델은 일본인" 주장, 명예훼손 아니다…왜? [디케의 눈물 143]
입력 2023.12.02 06:18
수정 2023.12.02 06:18
피고, 강제징용 동상에 "일본인 모델" 주장…대법 "비판적 의견 표명, 문제 없다"
법조계 "예술작품 평가, 인격권 침해않는 이상 넓게 허용돼야…감상자의 주관적 평가 영역"
"판단 좁게 해석할 경우 비평 자유롭게 할 수 없어…그 과정서 범죄자 증가할 우려도"
"표현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이거나 사실 왜곡하는 공표라면 불법행위 성립"
일제 강제징용 노동자 동상을 두고 "모델이 일본인"이라고 표현한 주장에 대해 대법원이 명예훼손에 따른 손해배상을 인정하지 않았다. 법조계에선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넓게 허용돼야 하며 감상자의 주관적 평가 영역에 해당하는 만큼 섣불리 명예훼손으로 판단하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다만 표현의 형식과 내용이 모욕적이고 의견 표명으로서 한계를 벗어났다면 불법 행위가 성립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지난달 30일 강제징용 노동자상을 제작한 김운성·김서경씨 부부가 김소연 전 대전시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의정부지법으로 돌려보냈다. 이 동상은 조각가인 김씨 부부가 제작해 서울 용산역 광장에 설치된 예술작품으로, 이를 본 김 전 시의원은 SNS에 "강제징용 노동자상의 모델은 일본인"이라는 글을 적었다. 그러자 김씨 부부는 이를 허위사실에 의한 명예훼손으로 규정하고 3000만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다.
1심은 "모델이 일본인이라는 문제 제기가 김 전 시의원 지적 전부터 있었고 초등학교 교과서에 강제징용 노동자로 잘못 게재된 일본인 노동자 인물의 외모적 특징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반면 2심은 "야윈 체형과 허름한 옷차림은 강제징용 착취를 표현하기 위한 수단인데 일본인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허위사실 적시"라며 4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판결은 대법원에서 다시 뒤집혔고 대법은 "허위사실 적시가 아닌 비판적 의견 표명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김 전 시의원 손을 들어줬다
검사 출신 안영림 변호사(법무법인 선승)는 "명예훼손의 경우 사실이나 허위사실을 적시하여 명예를 훼손해야 할 때 인정된다. 그러나 의견 표시는 사실이 아니라서 처벌 받지 않는다"며 "예술작품에 대한 평가는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 이상 넓게 허용되는 것이 마땅하다. 예술작품이 외부로 공개되는 순간 감상자의 주관적 평가의 영역이고 인격권을 침해하지 않는다면 섣불리 명예훼손이 성립한다고 판단하면 안 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2심처럼 좁게 해석할 경우 예술작품에 대한 비평을 자유롭게 할 수 없고 그 과정에서 범죄자가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김소정 변호사(김소정 변호사 법률사무소)는 "표현행위의 형식과 내용이 모욕적이고 경멸적인 인신공격에 해당하거나 타인의 신상에 관해 과장을 넘어서 사실을 왜곡하는 공표행위를 함으로써 인격권을 침해한 경우 의견 표명으로서의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서 불법행위가 될 수 있다"며 "다만 대법원은 그 평가가 인격권 침해에 이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진다면 허용한다는 취지로 판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나아가 "모욕적, 경멸적 표현은 비방목적이 전제돼야 한다. 오로지 상대를 비방하기 위한 목적이 전제로 깔려있는지, 당사자들의 관계, 해당 표현에 이르게 된 경위, 표현방법, 당시 상황 등 객관적인 제반 사정에 비추어 상대방의 외부적 명예를 침해할 만한 표현인지 검토하게 된다"고 부연했다.
김희란 변호사(법무법인 리더스)는 "모델의 출처가 한국인인지 혹은 일본인인지를 두고 '일본인일 수 있다'는 하나의 의견 표명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예술이나 학문의 자유를 넓게 인정하지 않는다면 다수의 관점들이 매몰되고 표현의 자유가 몰각될 수 있다"며 "여러 증거나 자료 수집을 통해서 나온 의견인 만큼 피고에게 명예훼손의 고의도 없어 보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