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벌이 비애' 보이지 않는…서울교통공사 노조 총파업 [기자수첩-사회]
입력 2023.11.20 07:02
수정 2023.11.20 07:02
일부 서울교통공사 노조 간부들,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월급 타 가…'배부른 파업' 비난 봇물
적자 18조의 공사, 인력 감축안 제시했지만 노조 신규채용 주장…자구 노력 커녕 파업에만 몰두
2017년 시민 안전과 직접적 연관 없는 업무 무기계약직, 정규직 전환
합리적 노동운동과 괴리…시민 출퇴근길 볼모로 과연 파업할 자격 있나

"전기밥통 속에서 밥이 익어가는 그 평화롭고 비린 향기에 나는 한평생 목이 메었다"
소설가 김훈의 '밥벌이의 지겨움'에서는 이 비애가 가족들을 한 울타리 안으로 불러 모으고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아 밥을 벌게 한다고 말한다. 밥벌이에는 아무런 대책이 없기에 누구나 살아 있다면 해야만 하는 숙명이다.
밥벌이를 위해 자영업자들은 매일 가게 문을 열고, 버스 기사는 하루에도 수 차례 같은 노선을 왕복하며, 직장인들은 피곤을 참아가며 매일 아침 직장에 간다. 우리의 순조로운 일상은 매일 꾸역꾸역 해내는 일 덕분에 이루어진다.
최근 시민들이 서울지하철을 멈춰 세우는 민주노총(민노총) 공공운수노조 소속 서울교통공사 노조의 총파업을 곱게 보지 못하는 이유는 발법이의 비애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 감사 보고서에 따르면 일부 서울교통공사 노조 간부들은 출근도 하지 않은 채 월급을 타간 사실이 드러났다.
현행법상 공사는 노조 활동을 근로시간으로 인정해 임금을 받는 '근로시간 면제자'를 최대 32명까지 둘 수 있는데. 10배에 가까운 315명으로 늘렸다. 이들 대다수가 일을 하지 않고 급여를 챙겨갔다. 이 중에는 무려 10개월간 단 한번도 정상근무를 하지 않은 노조 간부도 있었다.

밥벌이를 제대로 하지도 않은 노조가 인력 축소에는 반대한다. 만성 적자를 해결하기 위해 사측은 2026년까지 전체 인력의 13.5% 수준인 2212명을 단계적으로 감축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으나, 민노총 측은 함께 자구 노력에 힘쓰기는 커녕 이달 22일 2차 무기한 총파업을 예고했다. 공사는 올해 말 기준 누적적자가 18조 4000억원에 달해 서울시민의 세금으로 적자를 메워야 하는 상황인데도 노조는 오히려 771명을 신규채용 해야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는 시민의 발을 묶으며 자기 밥그릇만 지키겠다고 파업하는 꼴이다.
하지만 인력 축소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기간 서울교통공사 정규직 인원이 과도하게 늘어난 것을 되돌리는 측면도 있다. 박 전 시장은 2017년 '노동존중특별시 서울 2단계 특별대책'을 발표했고, 이 정책으로 시민 안전과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업무 무기계약직이 정규직으로 전환됐다. 이 때문에 시민 안전이나 핵심 업무와 관련이 낮은 인력을 자회사 등에 위탁하고, 퇴직자가 있으면 채용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인력을 축소한다는 게 공사의 계획이다. 식당 조리원 135명, 목욕탕 관리사 10명, 이발사 12명을 위탁하게 된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번 파업은 합리적이지도 않고 명분도 약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조 정치화'에 반대하는 'MZ 세대'가 주축이 돼 결성한 '올바른노조'는 시민의 출근길을 볼모로 한 파업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송시영 올바른노조 위원장은 "노조 업무를 하지 않는 날에는 출근하는 게 정상인데, 수년간 그렇게 하지 않은 경우를 봤다"며 "이 때문에 인력이 모자라 어떤 지하철 역엔 여직원 1명만 근무하는 날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언론을 통해 밝혔다. 민노총과 함께 교섭에 나섰던 한국노총조차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다.
"서민의 교통수단인 지하철로 배부른 파업을 한다" "무인 자동화 지하철로 바꿔야 한다" 이번 파업을 주도한 기성 노조를 바라보는 시민들의 눈초리가 곱지 않다. 지난 9일 민노총 노조가 홀로 경고파업에 들어가면서 지하철 운행률이 평소의 87% 수준까지 떨어져 시민들이 불편을 겪어야 했다. 민노총 노조는 안전을 위해 파업을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파업으로 좁은 열차에 시민들이 몰려 타는 건 과연 안전한지 묻고 싶다. 꾸역꾸역 지겨운 밥벌이를 위해 집을 나서야만 했던 시민들의 출퇴근길을 볼모로 파업할 자격이 있는지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