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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냐의 선택

데스크 (desk@dailian.co.kr)
입력 2023.10.15 07:07
수정 2023.10.15 07:07

원칙 고집하는 '오베'…시대적 성숙을 향한 현대인의 갈망

지도자의 본질은 자신의 양심을 파괴하지 말아야

소설 '오베라는 남자' ⓒ워싱턴 스퀘어 프레스, 다산책방

선생님이 되기로 한 젊은 대학생 소냐는 알고 있었다. 그녀가 철도 승강장에서 이제 더 이상 그리 많이 볼 수 없는 종류의 사람을 우연히 만났다는 것을. 그래서 그녀는 그 사람을 꼭 잡았다. 다들 사회성이 없다고 하는 남자, 싹싹하지 않은 까칠한 남자, 흑과 백만 있는 남자, 그녀의 친구들이 그와 결혼한 그녀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 해하는 남자가 그였지만 소냐는 개의치 않았다.


그 사람은 정의, 페어플레이, 근면한 노동,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세계를 확고하게 믿는 남자다. 훈장이나 학위, 칭찬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마땅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남자 말이다. 그는 그의 아버지가 그 달 16일에 사망했기 때문에 미리 받은 월급 중 14일 치는 회사에 반납하겠다고 우기는 남자다.


그는 하나님과 우주와 기타 세상 모든 것이 이기도록 놔두지는 않겠다는 의지, ‘돼지 새끼들은 지옥에나 가라’는 의지를 포기할 의사가 전혀 없는 사람이다. 세상에는 질서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고, 반복되는 일상이 있어야 하고, 그 일상에서 안정감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부인들이 머리를 새로 한 걸 남편이 알아보지 못했다는 이유로 짜증을 낼 때, 이 남자는 머리를 새로 한 부인이 달라졌다고 며칠 동안 짜증을 내는 사람이다.


그는 조용히 있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떠벌리는 사람이 아니다. 그에게 있어서 ‘남자의 품위’란, 다 큰 사람은 스스로 자기 일을 처리해야 한다는 사실을 뜻했다. 따라서 품위라는 건 어른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게 되는 권리라고 믿었다.


사람은 자기가 뭘 위해 싸우는지 알아야 한다고 믿으며, 스스로 통제한다는 자부심, 올바르게 산다는 자부심, 어떤 길을 택하고 버려야 하는지 아는 것, 나사를 어떻게 돌리고 돌리지 말아야 하는 건지를 안다는 자부심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이런 남자들은 말로 떠드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존재였던 세대에서 온 사람들이었다.


그는 사람들은 제 역할을 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믿었고, 그 역시 언제나 자신의 역할을 했고, 그 누구도 그에게서 그걸 빼앗아갈 수 없었다. 지옥 같은 불길에서 달아나는 대신에 그 안으로 뛰어드는 남자다.


그럼에도 그는 소냐에게 심장에 이상이 있어 군 복무를 하지 못한 청소부일 뿐인데, 소냐와 같이 기차를 타는 게 정말 즐거워서라는 이유 하나 때문에, 군인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그가 그녀와 레스토랑에 들어섰을 때, 레스토랑 안의 모든 사람들이 그녀가 그에게 과분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음을 명백하게 깨달았다. 그래서 그 스스로 무척 바보스럽게 느껴졌다. 그녀가 자신과 같은 사기꾼과 식사할 정도로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자기가 이 세상에서 유일한 남자가 되는 것 같은 이 기분은 옳지 않다는 것을 알 만큼은, 또 더 이상은 이렇게 앉아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을 만큼은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가려는데, 소냐가 테이블 너머에서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잡았다. 왜냐면 그는 기차에서 마치 그녀가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소녀인 양 그녀를 쳐다보는 남자였고, 태어나 그녀의 목소리만큼 굉장한 걸 들은 적이 없었던 남자였기 때문이다. 아마 그는 그녀에게 시도 써 주지 않을 테고 사랑의 세레나데도 부르지 않을 것이며 비싼 선물을 들고 집에 찾아오지도 않을 테다. 하지만 다른 어떤 소년도 그녀가 말하는 동안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좋다는 이유로 매일 몇 시간 동안 다른 방향으로 가지는 않았다. 그래서 소냐는 수없이 많은 사람을 지나쳐 이 남자와 결혼했다. 그의 이름은 ‘오베’다(프레드릭 배크만, 오베라는 남자).


나는 이런 종류의 남자가 한국에도 아직 멸종하지 않고 남아 있을지 극히 의심스럽다. 한국에선 지도자라는 사람, 대선 후보자였던 사람조차도 모른다, 안 했다, 관계없다고 우긴다. 심지어는 자신의 수족처럼 부리던 사람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한다. 국민은 지도자를 따른다. 옳은 것이 옳은 것이 되어야 한다는 세상은 과연 올 수 있을 것인가, 혼돈의 한국 땅에서 소냐는 오베를 만날 수 있을 것인가. 온갖 꼼수가 난무하는 여의도를 보면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잡으려는 것이 아닐지.

글/ 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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