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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비금 빼고 충당금으로 메꾸고…은행권 리스크 대응 '조삼모사'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입력 2023.10.05 06:00
수정 2023.10.05 06:00

1조1200억 환입±1조2000억 적립

"고금리 대비" 금융당국 압박 고조

금융 리스크 이미지. ⓒ연합뉴스

국내 5대 은행이 미래의 부실 가능성에 대비해 자본으로 쌓아뒀던 준비금 가운데 이제는 더 이상 필요치 않다고 판단해 이를 다시 되돌린 금액이 한 해 동안에만 1조원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또 다른 리스크 대응 방식인 충당금을 통해 더 많은 비용을 메꿔둔 만큼 준비금의 필요성이 그 만큼 적어졌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금융당국이 고금리 충격에 맞설 방파제 보강을 주문하고 있는 가운데, 은행권의 이런 행보는 사실상 조삼모사 식의 대처일 뿐이란 지적도 나온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은행 등 5개 은행이 대손준비금에서 환입한 액수는 총 1조3745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440.1%(1조1200억원) 늘었다.


이는 은행들이 여신 건전성 위험에 대응하기 위해 따로 보관해뒀던 자금에서 다시 빼낸 돈이 그 만큼 많아졌다는 의미다. 대손준비금은 금융사가 부실에 대비하기 위해 설정하는 회계 항목 중 하나다. 우선 은행들은 국제회계기준에 따른 자체 평가를 통해 이익의 일부를 대손충당금으로 쌓아 둔다. 그런데 만약 해당 충당금이 은행업 감독 규정에 명시된 대손충당금보다 적으면 모자란 만큼을 대손준비금으로 적립하게 된다.


은행별로 보면 국민은행의 대손준비금 환입액이 562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3978.3% 급증하며 최대를 기록했다. 농협은행 역시 2649억원으로, 신한은행은 2201억원으로 각각 74.9%와 153.6%씩 대손준비금 환입액이 증가했다. 우리은행도 대손준비금 환입액이 1869억원으로 305.3%나 늘었다. 하나은행 대손준비금은 436억원 전입에서 1398억원 환입으로 돌아섰다.


5대 은행 대손준비금 환입액 추이. ⓒ데일리안 부광우 기자

은행들이 대손준비금을 줄일 수 있었던 배경에는 불어난 충당금이 자리하고 있다. 대손준비금은 어디까지나 모자라는 충당금을 메우기 위한 항목으로 보기 때문이다. 충당금을 많이 쌓았으니 준비금은 그 만큼 덜어내도 된다는 뜻이다.


실제로 은행들이 잠재적 대출 부실에 대비해 쌓은 신용손실충당금은 줄어든 대손준비금을 충분히 상쇄할 수 있을 정도로 확대됐다. 5대 은행이 올해 들어 반년 동안 적립한 신용손실충당금은 총 2조4565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8.0%(1조2159억원) 증가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처럼 기계적인 접근으로 일관하기엔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계속되는 고금리 기조로 부실 대출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만큼, 평소와 다른 리스크 대응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사실 대손준비금과 대손충당금은 항목만 다를 뿐 비슷한 원리로 작동한다. 대출에서 연체가 불거지고 부실 가능성이 커지면 추가 적립이 필요하고, 부실채권을 상각·매각 또는 회수하거나 차주의 신용도가 제고될 경우 환입되는 같은 구조를 공유한다.


이 때문에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대손준비금과 대손충당금은 모두 충당금으로 묶여 있었다. 2017년 은행업감독규정과 시행 세칙이 바뀐 후에야 별도로 분리된 항목이다. 국제 기준을 따르는 기업회계와 우리나라의 사정을 감안한 감독회계가 달라서 나온 개념일 뿐이다.


이를 둘러싼 금융당국의 압박은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금융위원회는 특별대손준비금 적립 요구권 신설을 골자로 한 은행업 감독규정 개정을 예고하고 막바지 작업을 벌이고 있다. 향후 은행의 예상되는 손실에 비해 대손충당금이나 대손준비금이 부족하다고 판단되면 이를 추가 적립하라고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핵심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충당금이 늘어난 만큼 준비금이 줄어드는 현재 은행들의 회계는 원칙적으로 문제가 없지만, 손실 흡수 능력을 강화하라는 금융당국의 메시지를 놓고 보면 정책 취지에 어긋나는 대목일 수 있다"며 "특별대손준비금 제도가 시행되면 충당금과 준비금을 크게 한 덩어리의 개념으로 묶어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광우 기자 (boo073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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