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 '가드레일' 세우기…한덕수·시진핑, 26분간 할 말 다했다
입력 2023.09.24 05:00
수정 2023.09.24 05:00
"서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익에 대해
잘 처리하자고 언급"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막식 참석차 중국을 방문 중인 한덕수 국무총리는 23일 항저우 시후 국빈관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처음으로 양자 회담을 가졌다.
26분간 진행된 회담에서 양측 모두 '존중'을 언급했지만, 함축된 의미에 있어선 큰 차이를 보였다.
서로 물러설 수 없는 부분을 명확히 제시하는, '가드레일' 구축을 본격화하며 성숙한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다.
韓 "규칙 기반 질서하에서
건강하고 성숙한 관계 추진"
한 총리와 시 주석의 양자회담은 이날 오후 4시 26분에 시작돼 약 26분간 동시통역으로 진행됐다.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은 이번 회담 관련 브리핑에서 "매우 정중하고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진행됐다"며 "양국 관계와 관련해 총리님께서는 현재와 같은 불확실한 정세, 공급망 불안정 등 다양한 도전과 과제가 있는 상황 속에서 우리는 중국 측과 상호 존중, 호혜, 공동이익을 추구하는 '규범(규칙) 기반 질서' 하의 건강하고 성숙한 한중관계 발전을 추진코자 한다는 점을 언급했다"고 전했다.
중국이 규칙 기반 질서를 미국 주도 질서로 규정하고 거부감을 피력해 온 상황에서 우리 정부가 한중관계의 '기본 요건'으로 규칙 기반 질서를 언급한 것이다.
특히 대만에 대한 중국의 무력침공 가능성이 규칙 기반 질서를 위협하는 대표 사례로 간주되는 만큼, 시 주석 면전에서 윤 정부 대외노선을 선명하게 밝혔다는 평가다.
中 "서로 존중하며
협력의 큰 방향 유지하길"
시 주석도 부드럽지만 확실하게 중국 입장을 피력했다.
중국 관영통신 신화사에 따르면, 시 주석은 "한국이 중국과 함께 중한 관계를 중시하고 발전시키겠다는 것을 정책과 행동에 반영하고, 서로를 존중하며 우호 협력의 큰 방향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해당 언급은 우리 정부 브리핑에선 공개되지 않았다.
대만 문제, 남중국해 문제 등 중국이 '핵심 이익'으로 간주하는 분야에 대한 존중을 촉구한 셈이다. 특히 한중 수교 과정에서 '하나의 중국 원칙'을 수용한 한국이 '대만은 중국의 일부'라는 점을 확실히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아시안게임을 계기로 열린 회담이었고, 시간도 30분 정도였기 때문에 이슈별로 깊이 들어갈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면서도 "서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익에 대해서는 잘 처리하자는 취지의 언급이 있었다"고 전했다.
정부 "경제협력이 관계 발전
중요 동력이라는 데 의견 일치"
한 총리와 시 주석은 양국 경제협력과 한반도 정세 관리, 교류 확대 등에 있어선 큰 틀의 공감대를 형성했다.
무엇보다 "양국 간 경제협력이 한중관계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라는 점에 의견을 같이했다"는 게 정부 설명이다. 실제로 양측은 산업협력과 안정적인 공급망 관리,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후속협상은 물론, 문화 및 인적 교류 증진을 위해 협력해 나가기로 했다.
한 총리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윤 정부 대북구상인 '담대한 구상'과 최근 한반도 관련 정세를 설명하며 중국 측의 건설적 역할을 당부하기도 했다.
이에 시 주석은 "남북 양측의 화해와 협력을 일관되게 지지한다"며 "한반도 평화·안정을 위해 중국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
시진핑 "방한 진지하게 검토"
한일중 외교장관 회담·정상회의
개최 후 한중 정상회담 추진할 듯
정부 "한중관계 잘 관리되고 있어"
정부는 이번 회담을 동력 삼아 중국과의 외교적 접촉을 이어가며 시 주석 방한을 이끌어내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시 주석 방한 문제는 우리가 먼저 거론하기 전에 시 주석이 먼저 말했다"며 "본인의 방한문제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하겠다'는 말이 있었다"고 전했다.
해당 당국자는 '우리가 먼저 방한을 요청한 게 아니냐'는 질문에 시 주석이 먼저 언급했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며 "(시 주석이) 방한할 차례이긴 하다. 본인이 방한할 차례라는 걸 알고 있다는 거겠죠"라고 밝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지난 2017년 12월 방중해 한중 정상회담을 진행한 바 있는 만큼, 외교관례에 따라 시 주석이 답방할 차례라는 점을 거듭 강조한 셈이다. 문 전 대통령은 지난 2019년 12월 한중일 정상회의 참석차 중국을 방문해 시 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기도 했다.
시 주석의 한국 방문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지난 2014년 7월 국빈 방한이 마지막이다.
이번 회담에서 중국 측은 한일중 정상회의가 "적절한 시기에 잘 개최됐으면 좋겠다"는 입장도 밝혔다. 3국 정상회의 개최 필요성에 사실상 공감한다는 견해를 피력한 셈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오는 26일 서울에서 3국 정상회의 관련 논의를 위한 한일중 고위급회의(SOM·Senior Officials' Meeting)가 개최된다는 점을 언급하며 "단계적으로 (논의를 진척시켜) 조속히 (3국 정상회의를) 개최해 갈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일중 정상회의로 이어지면, 그 이후 시 주석 방한의 연결고리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는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외교당국은 SOM 이후 △연내 3국 외교장관 회담 △연말·연초 3국 정상회의 △시 주석 방한을 차례로 추진한다는 '시간표'를 구체화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 고위 당국자는 "그동안 한미협력이 강화되면서 한중관계가 소원해지는 것 아니냐는 일각의 우려가 있었다"면서도 "이번 (한 총리) 방중을 통해 한중관계가 잘 관리되고 있다는 점을 확실히 보여줄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