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교체돼도 정책기조 그대로”…복지강국 스웨덴 비결은 [사회서비스 선진화③]
입력 2023.07.06 06:30
수정 2023.07.06 06:30
“韓 정권 바뀔 때마다 ‘갈지(之) 자’ 정책”
“스웨덴은 법안 하나 통과에 10년 소요”
“일관된 정책 추진에 국민 신뢰체제 작동”
<스웨덴 린데大 최연혁 교수 인터뷰>
“한 세대, 적어도 15~20년 이상 일관성 있게 추진할 정책의 틀을 만드는 것, 다시 말해 정권은 바뀌어도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는 것이 스웨덴 복지가 무르익을 수 있었던 비결이죠. 어느 정권이 들어서든 갈지자 정책을 펴지 않고 정책의 연속성을 보여왔습니다. 이것이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이죠.”
최연혁 스웨덴 린네대학교 정치학과 교수는 1988년 스웨덴으로 건너가 스웨덴 복지와 민주주의에 대해 연구해왔다. 스칸디나비아 정책연구소를 세워 한국과 스웨덴 교류에 앞장서고 있기도 하다. 그는 지난달 12일 스웨덴을 방문한 한국 정부 출장단과 취재진들에게 스웨덴이 복지강국을 이룰 수 있었던 비결을 허심탄회하게 나눴다.
“스웨덴, 갈지(之)자 정책 원천불가…발 못 붙이는 누더기 법안”
스웨덴은 진보정권이든 보수정권이든 간에 갈지(之)자 정책을 펴지 않는다. 정책에 연속성과 통합성이 있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한국은 정권이 바뀌어 미래 청사진을 바꿀 때 진보와 보수정권 간 청사진에 큰 차이가 나는데 스웨덴은 정권이 바뀌어도 청사진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중도좌파인 사회민주당이 1932년부터 1976년까지 집권하면서 설계한 복지사회보장체제가 뿌리 깊이 심어졌다. 44년간 닦여진 스웨덴의 복지제도는 이미 노동, 환경, 교육, 경제와 얽힌 체계로 굳혀졌기 때문에 정권이 바뀌더라도 손대기 쉽지 않은 구조다.
실제로 1976년 우파정권이 집권한 이후에는 여섯 번의 정권교체가 있었지만 정책기조가 시계추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정치 체제와 복지정책의 일관성 있는 추진은 국민의 신뢰 체제를 작동시키면서 정치인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번복될 여지를 차단해왔다.
스웨덴의 정책이 정치권의 이해관계에 흔들리지 않는 또 한 가지 이유는 탄탄한 입법 시스템이다. 최 교수는 “한국은 국회에서 법률안을 제정할 때 정당 중심으로 밀어붙일 수 있지만 스웨덴에서는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스웨덴은 법률안 발의 전에 최적의 입법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공공조사위원회를 한시적으로 설립해 입법 평가를 실시한다. 공공조사위원장은 교수와 전문가 등을 조사연구원으로 세우고, 2년간 전국을 돌면서 세미나, 공청회, 이해당사자회의 등을 열어 법안 발의를 위한 정책 제의를 받는다. 다양한 이해당사자 목소리를 취합한 의견은 300-400페이지 분량의 국가조사보고서(SOU)로 기록된다.
국가조사보고서가 제출되면 법률안과 관련된 필수적 의견수렴절차(REMISS)가 시작된다. 법률안과 관련해 부처별로 리스트화 돼 있는 다양한 이해관계자 및 관련 기관·단체에 최종보고서를 송부해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최 교수는 “SOU는 300-400페이지, REMISS는 1000페이지가 넘어간다. 스웨덴의 제도 개혁 과정을 담은 두 자료는 국가자료원에 보관된다”며 “이러한 입법 시스템으로 인해 스웨덴에서 법안 하나가 통과되기까지 보통 1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덜 내고 더 받던 연금, 확 바꾼 스웨덴
스웨덴의 일관성 있는 정책기조는 연금개혁을 이뤄냈다. 1991년 총선에서 우파연합이 사회민주당을 꺾고 정권 교체를 이루면서 국가 재정 안정화와 함께 연금개혁에 힘이 실렸다. 의회에 입성한 7개 정당 중 양 극단을 제외한 5개 정당은 ‘더 많이 내고 더 적게 받는 시스템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는 큰 틀에서 개혁안에 합의했다.
최 교수는 “당시 5개 정당은 여야 막론하고 지속가능한 연금제도 유지를 위해 반드시 개혁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하고 책임정당이 되어 함께 개혁을 주도했다”며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 백년대계 문제이고, 다음세대를 살 수 있게 해주는 현 세대 책임성의 문제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정부의 신속한 추진력을 바탕으로 1998년 연금제도를 전면 개편했다. ‘덜 내고 더 받는’ 확정급여(DB)형을 ‘낸 만큼 돌려받는’ 명목확정기여(NDC)형으로 바꾸는 구조개혁에 성공했다. 현재 스웨덴의 보험료율은 18.5%(공공연금 16%, 개인연금 2.5%)이며, 소득대체율은 41.3%다. 한국은 보험료율이 9%에 머무르고 있는데 소득대체율은 42.5%로 스웨덴보다 높다. 2028년에는 40%까지 내려간다.
스웨덴의 연금개혁은 현재도 진행 중이다. 올해부터 정년과 연금 개시 연령을 65세에서 67세로 높였는데, 69세 연장을 또다시 논의 중이다. 정치권 내부에서는 75세까지 늘리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저출산·고령화 물결이 몰려오며 연금개혁이 전 세계 공통과제가 됐는데 스웨덴 역시 예외될 수 없었다.
스웨덴의 연금개혁은 우리나라에 시사점을 준다. 한국은 정부가 개혁안을 내놓아도 정치권에서 공방을 벌이며 시간을 흘려보낸다. 연금개혁의 핵심인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을 조정하는 모수개혁에 매번 실패하며 미래세대가 짊어져야 할 짐의 무게가 늘어난다. 지금처럼 유지될 경우 국민연금은 2041년부터 적자로 전환해 2055년엔 기금이 소진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기일 보건복지부 1차관은 “연금개혁 핵심은 지속가능한 제도를 만들어내는 것인데 보험료율 9%, 소득대체율 40%로는 불가하다”며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 지금 개혁을 안 하면 미래 세대가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최 교수는 “스웨덴은 포퓰리즘식의 누더기 법안이 발의되거나 사업이 단기적으로 급조될 수 없는 구조”라며 “법안이 4~5년마다 바뀌는 우리나라는 정책 후진국이다. 제도 개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연금개혁은 불가하다고 보여진다”고 지적했다. 이어 “단기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시간이 걸려도 20-30년 뒤 연금받을 분들 중심으로 장기적으로 제도 개혁에 나서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