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직 후 걱정이 없어요”…노인이 잘 사는 나라 獨 [사회서비스 선진화②]
입력 2023.07.03 14:57
수정 2023.07.03 15:39
20여 년간 장기요양서비스 품질 관리
노인 장기요양시설 90%는 민간 운영
사회부조로 저소득층 사각지대 해소
여름의 초입. 베를린 시내에서 차로 삼십여 분을 달려 도착한 ‘키르슈베르크 노인거주공원’은 독일의 상록수와 각종 묘목들이 뿜어내는 초록빛과 풀벌레 소리로 청명했다. 키르슈베르크 노인거주공원은 민간 비영리 교회재단에서 운영하는 장기요양시설이다. 이름에 ‘공원’이 들어간 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시골 스타일의 한적하고 자연 친화적인 케어 환경을 제공한다.
한국 정부 출장단과 취재진들이 지난 7일 이곳을 찾은 건 복지강국 독일이 장기요양 서비스를 어떻게 제공하고 있는지 보기 위해서다. 노인 1명당 침대가 구비된 1인실을 사용하고 욕실은 2명이 함께 쓴다. 이곳 노인들의 라이프스타일은 주체적이되 매우 자유로웠다. 매일 요양실을 나가 야외활동을 하는 것을 중요시 여겨 원예, 단체놀이 등 각종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퇴직 후 여생의 삶의 질을 윤택하게 만드는데 초점을 둔 모습이다.
담보된 품질에 높은 자기부담금…대부분 공적연금으로 충당
품질이 뒷받침되는 만큼 노인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도 취재진의 예상보다 상당히 고가였다. 키르슈베르크 노인거주공원 기준 장기요양보험 2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의 요양서비스 비용은 332만원(2329유로)이다. 숙박비 71만원, 음식비 22만원, 투자비 13만원, 교육비(근로자, 26만원) 등은 별도 부담이다. 장기요양보험료 181만원을 받더라도 결국 286만원을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각 건물의 노후도와 질에 따라 40만원가량 숙박비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
키르슈베르크 노인주거공원에서 만난 한 노인은 “장기요양 3등급을 판정받았다”며 “총 요양비가 5000유로(714만원)가량인데, 이중 2750유로(396만원)을 다달이 부담금으로 내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게만 보면 요양자 자신 부담이 매우 크지만 본인부담금의 상당부분은 연금으로 충당된다. 2020년 기준 독일의 국민연금(공적연금) 수급자는 1845만명으로, 65세 이상 노인(1803만명) 100%가 연금을 수급받는다. 여기에 노인이 자발적으로 가입한 사적보험까지 합산한 다수 연금 총액으로 노후생활에 충당한다.
독일은 현재 66세인 정년을 2030년에 67세로 올리고, 같은 시기 노령연금 수급 연령도 65세에서 67세로 연장할 계획이다. 고령화로 연금 고갈 우려가 커지면서 연금제도의 지속성을 담보하기 위한 방안이다.
장기요양시설 10개 중 9개는 민간 운영…사회부조로 사각지대 해소
독일은 1995년 장기요양보험제도를 도입했다. 한국(2008년)보다 13년이 앞선 만큼 크고 작은 개혁을 통해 제도를 발전시켜왔고 사각지대 해소를 위해 고민을 해왔다. 장기요양시설의 경우 민간 운영 비중이 90%를 차지하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중 영리가 40%, 비영리가 50%를 이룬다. 공공 운영은 10%에 불과하다.
독일에서 요양서비스가 필요할 것 같다고 판단되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 의료보험이다. 그러면 의료보험에서 공적의료보험조합 의료지원단(MD)에 연락을 주고, MD 직원은 요양서비스 신청자 집에 방문해 검사를 진행하고 장기요양보험 등급 판정을 내려준다. MD는 장기요양서비스 등급 판정부터 제공기관들의 서비스 품질관리까지 담당하는 핵심기관이다.
장기요양등급 판정을 받은 노인은 재가서비스를 받을지 시설서비스를 받을지 결정한다. 중증자일수록 등급이 높아지고 지원금도 오른다. 장기요양 1등급 노인을 가족이 자택에서 직접 돌볼 경우 모든 비용을 100% 부담해야 하며, 2등급 45만원, 3등급은 77만원, 4등급은 103만원, 5등급은 128만원 지원금을 받는다.
같은 재가서비스라도 MD의 전문 요양보호사의 방문서비스를 받으면 가격이 오른다. 장기요양 1등급이 정기적으로 전문 요양보호사의 방문서비스를 받을 경우 모든 비용을 100% 부담해야 하며, 2등급은 98만원, 3등급은 185만원, 4등급은 229만원, 5등급은 284만원 지원금을 받는다.
본인부담금을 낼 여력이 없고 연금으로도 충당이 어려운 저소득층 노인들은 사회부조를 통해 지원받는다. 한국의 기초생활수급자처럼 의료보험 수급자 형태로 연방정부와 지방정부(코뮨)의 지원을 통해 비용 부담 없이 요양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키르슈베르크 노인거주공원의 프랑크 베르네케 노인돌봄 부서장은 “비용 부담이 어려운 사람들도 사회부조를 통해 요양원에 입소할 수 있어 교사, 공무원, 노동자 등 각계각층 사람들이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다”며 “그래서 이곳에 사는 사람들끼리 갈등이 생기기 마련이고 그걸 해결하는 것도 우리 요양원의 과제 중 하나”라고 말했다.
한국의 경우에도 건강보험 가입자가 장기요양시설 입소를 원할 때 본인부담금이 있지만 사회부조 대상자는 모든 비용을 국가에서 부담하는 점에서 독일과 유사하다. 한국은 장기요양보험 등급별로 급여를 지급하는데, 이때 급여액의 20%는 본인이 부담한다. 예를 들어 2023년 장기요양 1등급을 받은 노인이 요양시설을 입소하게 되면 월 245만원 급여를 받는데, 이중 49만원(20%)은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여기에 비급여항목인 식사재료비, 이·미용비, 상급침실이용료(1인실)는 추가비용을 내야 한다.
본인부담금을 부담할 수 없는 의료보험 수급자는 의료급여기금 등에서 돈을 받고, 추가 비용은 국가가 부담한다. 지자체에서 소득 재산 조사해서 사회부조 대상자로 지정해 국가 또는 지자체가 지원을 하는 구조다.
복지부 관계자는 “독일은 좋은 시설의 1인실을 사용하려면 노인이 주거비를 일부 부담해야 한다. 한 사람에게 방 하나 주고 인력을 붙여주는 것이 다 코스트”라며 “우리나라는 그 비용이 많이 반영되어 있지 않아서 1인실을 사용하는 경우가 적고 시설도 독일에 비해 비교적 협소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獨 장기요양 종사자 처우 개선했지만…지원수는 감소 추세
독일은 오랫동안 장기요양 제도를 발전시켜온 만큼 요양서비스 종사자 처우 개선도 이뤄냈다. 독일에 지정된 직업전문교육을 받은 요양서비스 종사자는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 518만원을 급여로 받는다. 주말과 밤근무를 하면 약 100만원 보너스가 붙어 600만원이 넘어간다.
직업전문교육을 받지 않은 요양서비스 도우미들은 주 40시간 근무 기준 월 417만원을 받는다. 한국에서 임금이 가장 낮은 업종 중 하나가 음식점 종업원인데 요양서비스 종사자가 비슷한데 독일은 어떻냐 묻자 베르네케 부서장은 “독일에서는 요양서비스 종사자가 그 수준보다 확실히 높다”고 설명했다.
요양서비스 종사자 처우가 개선됐음에도 아이러니하게 요양보호사 지원률이 감소하고 있는 점은 독일 정부의 고민이다. 독일은 장기요양보험 등급별 비율에 따라 필요한 요양보호사 숫자가 지정된다. 높은 등급(중증)이 많을수록 일할 요양보호사 수급도 늘어난다. 키르슈베르크 노인거주공원의 경우에도 3~4등급 입소자가 점점 많아지고 있음에도 요양 인력의 부재로 걱정이 많다.
베르네케 부서장은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저출산 현상이 심화되며 지원자 숫자가 절대적으로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라며 “2035년엔 직업교육을 받은 전문 요양서비스 종사자 30만명이 부족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이어 “급여가 보장됨에도 요양서비스 일이 몸이 너무 힘들고 워라밸이 보장되지 않는 것도 또한가지 이유”라고 진단했다.
키르슈베르크 노인거주공원 관계자는 “요양서비스 업종에서 더 개선돼야 할 것은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는 점”이라며 “요양서비스에 대한 마케팅 활동과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