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에…공은 '김은경 혁신위'로
입력 2023.06.20 06:00
수정 2023.06.20 07:20
李 "영장 청구하면 제발로 출석해 심사받겠다"
친명·비명 모두 일단 "환영"…현실화는 '과제'
혁신기구서 불체포특권 포기 현실화 논의 전망
일각선 혁신기구가 수렴청정 기구 될까 우려도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자신에 대한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고 전격 선언했다. 당내에선 이 대표의 결정을 일단 환영하는 분위기인 가운데, 공은 자연스레 오는 20일 공식 출범할 김은경호(號) 혁신 기구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혁신 기구에서 불체포특권 포기 방안을 구체화해 그간 당에 씌워져있던 '방탄 정당' 멍에를 벗겨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재명 대표는 19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나에 대한 정치수사에 대해 불체포권리를 포기하겠다"며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제발로 출석해서 영장실질심사를 받고 검찰의 무도함을 밝히겠다"고 주장했다. 해당 발언은 이 대표 측에서 사전에 배포한 원고에 포함되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 발언은 순식간에 정치권에 확산되며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냈다. 특히 민주당 내에선 이 대표의 발언에 '환영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친명계인 정청래 최고위원은 페이스북에 "나는 만류했으나 윤석열 검사독재정권과 맨몸으로 맞서겠다는 의지가 워낙 강했다"고 이 대표의 선택을 환영했다.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도 페이스북에 "이재명 답다. 국민과 정의의 승리를 믿는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비명계에서도 우선은 이 대표의 선언을 환영했다. 이상민 의원은 페이스북에 "매우 잘한 결정"이라고 환영의 뜻을 밝혔다. 또 다른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의 발언에) 깜짝 놀랐다"며 "그것만 보면 매우 잘한 일"이라고 화답하기도 했다.
이날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 포기 선언'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몇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이 대표는 현재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과 성남FC 후원금 의혹 등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백현동 개발비리 의혹 ▲정자동 관광호텔 개발사업 특혜 의혹 ▲정자동 한국가스공사 부지 개발 특혜 의혹 ▲쌍방울 그룹 대북송금 의혹 등도 이 대표를 향하고 있는 만큼 체포동의안이 재차 국회로 넘어올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 경우 국회의원 불체포특권은 헌법 제44조에 보장된 권한인 만큼 이 대표의 선언만으론 부족하다. 헌법 상 국회가 회기 중이라면 체포 대상이 원하지 않는다 해도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야 영장실질심사로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여당은 이 점을 들어 이 대표를 압박하고 나섰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대한민국 사법 시스템에 따라서 그 절차 내에서 행동하겠다는 말씀은 기존에 하셨던 말씀보단 좋은 얘기 아닌가 싶다"면서도 "다만 그걸 어떻게 실천하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도 이날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이번 특권 포기 약속이 여러 차례 보여줬던 공수표의 반복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며, 이 대표가 구체적으로 이 불체포특권 포기 약속을 어떻게 실천할 것인지를 밝혀달라"고 촉구했다.
이미 당내에선 불체포특권 포기를 현실화할 수 있는 다양한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현실적인 방안 중의 하나는 검찰이 향후 이 대표를 향해 구속영장을 청구할 경우 '가결'을 당론으로 정하는 방식이다. 다만 해당 방안은 친명계의 반발이 예상되는 만큼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기도 하다.
연중무휴(年中無休)격으로 열리고 있는 국회의 회기를 멈추고 일시 폐회하는 방안도 거론된다. 현재 국회는 지난해 8월 16일 이래로 이날까지 무려 308일째 하루도 쉬지 않고 열리고 있다. 국회의원의 불체포특권은 회기 중일 때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오직 특정인의 '방탄' 목적으로 국회가 연중무휴로 열리고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현재 열리고 있는 6월 임시국회를 폐회하되 7월 임시국회를 곧바로 소집하지 않으면, 회기 중이 아니게 되기 때문에 그 사이 검찰이 영장을 청구하고 이 대표가 법원에 나아가 영장실질심사를 받으면 "불체포특권을 포기하겠다"는 본인의 공언을 지킬 수 있게 된다. 그러나 이렇게 되면 그동안 300일 이상 계속해서 빈틈없이 국회를 열어왔던 게 허사로 돌아가기 때문에, 과연 민주당이 이러한 방안을 취할지 의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또다른 방안은 불체포특권을 실질적으로 내려놓는 법안을 강력하게 추진하는 것이다. 마침 유의동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의원 본인이 체포동의안을 수용하거나 체포영장 집행을 위해 일정 기간 국회가 열리지 않도록 요청하는 서류를 국회의장에게 제출할 경우, 의장이 이를 즉시 배부하고 공표하도록 하는 내용의 국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이 같은 방안을 추진할 수 있는 기구로는 공식 출범을 앞둔 당 혁신위가 꼽힌다. 우원식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불체포특권을 내려놓겠다는 이재명 대표의 선언은 당이 분열을 극복하고 국민이 신뢰할 수 있는 혁신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것"이라고 강조하며, 이번 혁신위에서 이 방안을 적극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점을 우회적으로 요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선 혁신위가 이처럼 불체포특권 포기 현실화에 앞장서기보다 오히려 이 대표의 수렴청정(垂簾聽政)을 위한 기구로 변질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이 대표가 설령 구속되더라도 혁신위가 이 대표를 대신해 대의원제 폐지나 권리당원의 지역위원장 직접 평가 등 '비명계 물갈이'를 위한 거짓 혁신을 단행할 수도 있다는 염려다.
민주당 한 의원은 "불체포특권 관련 논의는 당연한 것이고, 지금 혁신위는 대선·지선 패배와 이재명 체제 1년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불가능하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며 "정말 유의미한 수준의 혁신이라는 평가를 받으려면 현재 수사를 받고 있는 사람들을 공천하지 않겠다거나, 실언을 통해 당에 해를 끼친 사람들에게 징계를 내린다거나 하는 수준은 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