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시장 주름잡는 K-전기차, 숨은 공신은 ‘환경 정책’[저공해차 시대②]
입력 2023.06.17 07:00
수정 2023.06.17 07:00
짧은 역사 불구 자동차 강국 부상
세계적 기술로 친환경 시장 이끌어
환경부 등 직·간접 지원으로 뒷받침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1955년 국제차량공업사에서 미군 차량을 바탕으로 첫 국산 차 ‘시발(始發)’을 내놓았고, 1962년 문을 연 새나라자동차는 이듬해까지 2773대의 자동차를 판매하고 문을 닫았다. 그 사이 버스 등 대형 차량을 주로 만든 ‘하동환자동차’ 회사도 있었다.
첫 국산 차 시발은 1955년 만들었지만, 최초 고유 모델 개발은 1975년 12월에야 이뤄졌다. 사실상 국산 차 대중화(양산 차)의 시초라 할 수 있는 ‘포니’의 탄생이다. 1885년 칼 벤츠가 세계 최초 가솔린 자동차를 발명했으니 이보다 90년 정도 늦은 셈이다.
포니를 개발한 현대자동차는 짧은 역사 속에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기준 세계적으로 684만5000대를 판매해 일본 도요타와 독일 폭스바겐에 이어 3위를 기록했다. 현대차그룹의 세계 판매량 순위는 지난 20여 년간 꾸준히 상승해, 2010년에 120년 역사의 미국 포드를 제치며 처음으로 5위권에 들기도 했다.
현대차와 기아는 특히 전기·수소차와 같은 친환경 차 시장에서 빠른 성장 속도를 보이는 중이다. 기아를 포함한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전 세계 시장에서 약 37만 대의 전기차를 판매해 7위를 기록했다. 전년 대비 52.9% 성장한 수치다. 중국 자동차 업계가 급격히 성장하면서 점유율은 전년 대비 0.4%p 하락했으나, 여전히 시장에서는 여전히 가장 가파른 성장세를 보인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지난달 22일(현지시간) ‘현대차가 어떻게 이렇게 멋있어졌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저가 브랜드라는 평가를 받았던 현대차가 이제는 전기차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며 현대차 성장 과정과 전기차 시장에서 약진을 집중 조명한 바 있다.
국내 시장에서도 선전 중이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자동차 누적 등록 대수는 2550만3000대로 전년 대비 59만2000대(2.4%) 늘었다. 늘어난 차량 가운데 친환경 차(전기·수소·하이브리드)가 차지하는 비중은 72.8%다. 출고된 신차 10대 가운데 7대 이상이 친환경 차다.
지난해 늘어난 순수 전기차는 15만8000대다. 전년 대비 68.4% 많아졌다. 수소차는 1만 대 늘어나 전년보다 52.7% 많아졌다. 하이브리드는 26만2000대 늘어나 28.9% 증가율을 보였다.
국산 자동차의 성장, 특히 친환경 차 시장에서의 약진에는 정부 조력이 큰 힘이 됐다. 산업 성장 지원과 기후위기 정책이 만나 전방위 지원이 됐다.
특히 환경부는 전기·수소차 중심 무공해차 보급 정책을 2010년부터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2010년 12월 제10차 녹색성장위원회에서 발표한 ‘세계 4강 도약을 위한 그린카 발전전략 및 과제’를 시작으로 2015년 12월에는 ‘제3차 환경친화적자동차 개발 및 보급 기본계획’을 내놓았다.
그로부터 다시 6년이 흐른 2021년 ‘제4차 친환경자동차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향후 2030년까지 450만 대의 무공해차 보급을 추진 중이다. 특히 무공해차 450만 대 보급 계획은 ‘탄소중립 녹색성장 국가전략 및 제1차 국가 기본계획’에 포함해 사업 추진이 더 큰 힘이 실린 상태다.
친환경 차 구매보조금, 전기차 폭풍 성장 이끌어
환경부 지원책을 자세히 살펴보면 2011년 2월 전기차 실증사업 결과와 전문가 자문을 토대로 전기차·충전시설 지원기준 등을 설정해 보급 기반을 마련했다.
먼저 국가기관과 지장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을 대상으로 전기차 구매 때 동급 내연기관 차량과 가격 차를 보조했다. 충전 인프라 구축도 지원했다. 친환경성과 주행거리 등 전기차의 특성을 살린 다양한 전기차 운행모델을 개발·보급에도 애를 써왔다.
2011년에는 EV(Electric vehicle) 선도도시를 출범시켰다. EV 선도도시는 교통부문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낮추고 대기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친환경 전기자동차 보급에 앞장서는 저탄소 녹색도시를 의미한다.
환경부는 서울, 대전, 광주, 제주, 경남 창원, 강원 춘천, 경기 안산, 충남 당진, 경북 포항, 전남 영광 등 모두 10개 도시를 EV 선도도시로 지정했다. 이들 도시에는 전기자동차 보급이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국비(國費)를 우선 지원했다.
특히 관광객이 많은 제주에서는 전기차 공동이용(카셰어링)과 관광렌터카 등을 통해 시민이 직접 전기차 친환경성, 경제성을 체험할 수 있도록 했다. 2014년에는 민간보급지역을 전국으로 확대했고, 운전자에게 충전소 정보를 실시간으로 제공하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 정보시스템도 구축했다.
환경부의 전기차 친화 정책에 ‘구매보조금’이란 금전 지원이 더해지면서 전기차 판매는 날개를 달았다. 환경부는 2013년부터 전기차 구매 비용 일부를 지원해 왔다. 구매보조금은 2013년 누적 보급량 1000대 돌파를 시작으로 2015년부터 가파르게 증가 2016년에 누적 1만 대를 뛰어넘었다.
전기차 구매보조금 지급을 시작하면서 전기차 보급은 급증했다. 국토교통부 자동차 누적등록 대수 자료를 보면 2013년 첫 지원으로 1000대를 돌파한 이후 2016년 1만855대였던 전기차는 1년 만에 2만5108대로 두 배 이상 늘어났다. 같은 기간 수소차는 87대에서 170대로 증가했다.
2018년에는 전기차 5만5756대, 수소차 893대로 각각 전년 대비 122.1%, 425.3% 많아졌다.
2019년 전기차 8만9918대, 수소차 5083대에 이어 2020년 전기차 13만4962대, 수소차 1만906대를 기록하며 본격적인 친환경 차 시대 문을 열었다.
2021년에는 전기차가 23만1443대를 기록하며 5년 만에 23배 늘었고, 수소차 또한 1만9404대로 같은 기간 222배 많아졌다.
친환경 차량 구매보조금 효과는 해외 사례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2017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조사에 따르면 초기 전기자동차 시장 활성화를 위해 전기자동차 구매보조금은 가장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으로 평가된다.
전기자동차 보급이 활성화된 북서 유럽 5개국(노르웨이, 네덜란드,프랑스, 독일, 영국)을 비교하면 전기자동차 구매보조금 정책을 시행한 국가들의 전기자동차 보급 속도가 전기자동차 구매 보조금 정책을 시행하지 않은 국가들에 비해 빠르게 나타났다.
가열되는 친환경 차량 경쟁, 정부 지원도 가속
전기자동차구매 보조금을 시행한 국가(노르웨이,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들에서 전기차가 신차 시장에서 0.5%의 비중을 차지하는 데 걸린 시간은 12~18개월 정도이지만, 전기자동차 구매 보조금을 미시행한 독일에서 전기차가 신차 시장에서 0.5%의 비중을 차지하는 데 걸린 시간은 3년 이상이 걸렸다.
친환경 자동차 시대는 이제 시작이다. 최근 2~3년 사이 국가 간 경쟁이 전쟁을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한 곳이기도 하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경제 대국들이 앞다퉈 자국 내 생산 전기차(친환경 차) 지원에 열을 올리는 중이다.
우리 정부도 친환경 차 보급 지원에 다시 채찍을 가하는 모습이다. 연평균 판매 수량 4500대 이상 자동차 판매사에 대해 시행 중인 저공해차 보급 목표제 목표를 상향 조정해 지난해부터는 8~12%까지 확대했다.
올해부터는 보급목표 미달성 기업을 대상으로 기여금제를 도입해 이행력을 높이고, 보급실적 거래·이월 등 실적 유연성 제도를 마련해 기업 부담도 낮출 예정이다.
공공기관 무공해차 구매도 강화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국가기관과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 등은 새로 차를 구매할 때는 모두 무공해 차량이어야 한다. 물류·운수 등 대규모 차량을 보유한 민간기업도 ‘2030 한국형 무공해차 전환100 사업’ 참여를 유도해 수요 창출을 확대하고 있다.
미세먼지 개선 효과가 큰 전기 화물차 보급도 성공적이다. 기존 디젤엔진 1t 화물차를 대신해 다양한 종류의 트럭이 시장에 나오면서 보급이 크게 늘고 있다. 시장수요 확대에 맞춰 다양한 전기 화물차가 시장에 선보이는 점도 환경부가 제작사와 체결한 ‘전기화물차 보급 확대 업무협약’ 역할이 컸다.
올해는 안전하고 성능 좋은 차량을 중심으로 지원을 다양화하고 있다. 친환경 차 구매 때 보급 촉진과 함께 구매 후 안전·편의도 고려한 지원도 이어간다. 성능·사후관리 역량에 따른 보조금 차등을 강화하고 다양한 지원책을 활용해 보급목표 달성과 전기차 이용 편의 향상을 유도할 계획이다.
박연재 환경부 대기환경정책관은 “중장기적으로 버스, 트럭 같은 다양한 무공해 상용차 보급이 확대되니 정부도 의무구매 대상을 확대해 나갈 예정”이라며 “2030년까지 무공해차 450만 대 보급을 위해 302개 민간기업이 자발적으로 무공해차 전환을 선언한 ‘K-EV100’도 상당한 성과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승용은 전기, 상용은 수소…‘투트랙’으로 친환경 간다 [저공해차 시대③]…에서 계속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