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사랑기부제, 정부 규제로 추진 ‘제자리걸음’?…전문가들 “민간 개방해야”
입력 2023.03.13 17:48
수정 2023.03.13 17:48
"모금 주체인 지자체, 플랫폼 한계로 적극적인 홍보 불가능"
권설필 교수 "단일 플랫폼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 등장 시, 기부 시너지"
지방자치단체가 행정안전부의 고향사랑기부제 규제로 적극적 홍보 및 기부 독려 등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주장이 연이어 나오고 있다. 고향사랑기부 플랫폼 구축에 지방자치단체 예산 약 70억원이 들어갔음에도 적극적인 홍보를 제한받고 있다는 것이다.
고향사랑기부제는 지역소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제도로, 개인이 거주지가 아닌 지자체에 기부하면 세액공제와 답례품을 제공한다. 지자체는 지역 실정에 맞게 기부금을 사용할 수 있다.
기부는 행정안전부가 구축한 모금플랫폼 '고향사랑e음'에서만 진행할 수 있다. 해당 플랫폼에서는 지역을 고르고 제공받을 답례품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기부가 이뤄진다. 문제는 기부과정어디에서도 기부자가 각 지자체로부터 기부금을 어디에 사용할지, 왜 기부를 받고 싶은지 등 정보를 알 수 없다는 점이다. 간단한 지역 정보만 확인 가능하다. “답례품 쇼핑몰 아니냐”란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양석원 열린옷장 사외이사는 “고향사랑e음은 공무원과 기부의향 시민 모두 다가가기 어려운 플랫폼”이라며 “물건을 판매하는 쇼핑몰도 상품과 회사에 대해 다양한 설명을 소비자에게 전달하는데, 고향사랑e음은 지자체와 기부자가 소통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다”고 비판했다. 이미 고향사랑e음은 제도 시행 초기부터 접속 불안정 및 결제오류 등으로 비판받은 바 있다.
각 지자체는 다른 지자체 대비 차별화된 홍보를 하고 싶어 하지만, 플랫폼의 한계로 모금 주체인 지자체가 적극적인 홍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한 기초지자체 관계자는 “고향사랑e음 시스템 자체를 급하게 준비하다 보니 플랫폼이 무거워지고 보완해야 할 측면이 많이 보인다”면서 “지자체 입장에서는 기부금을 어디에 활용할지 등에 대한 안내할 수 있는 기능이 아직 없어 아쉽다. 빠르게 기능 추가 및 안정화가 이뤄져 기부 활성화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전국 243개 지자체는 이미 총 70억원을 들여 고향사랑e음을 구축한 바 있다. 향후 플랫폼 고도화를 위해 추가비용도 부담해야 한다. 비용을 부담하고도 정당한 서비스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홍보가 가능하도록 관련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민간플랫폼 허용이 핵심이다.
현재 ‘고향사랑기부금에 관한 법률’에 따르면, 지자체는 대통령령에서 정한 광고매체로만 기부금을 유치할 수 있다. 하지만 대통령령은 광고매체를 ‘정부기관 및 공공법인 등의 광고시행에 관한 법률’에 따른 홍보매체로 한정하면서 사실상 고향사랑e음만 기부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한창섭 행안부 차관(장관 직무대행)은 지난달 16일, 국회에서 “민간시스템을 포함해 제도개선을 검토하고 있다”고 했지만, 여전히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권선필 목원대 교수는 단일 플랫폼이 아니라 다양한 플랫폼이 등장한다면, 기부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권 교수는 “고향사랑e음은 기부자들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찾아내는 역할을 못하고 있다. 지자체와 행안부간 교류하는 행정업무 처리시스템이라고 봐야한다”며 “반면 민간플랫폼은 다양한 방식으로 지자체가 스스로 홍보하고, 답례품 다양화, 이벤트 등이 가능하다. 행정은 행정이 잘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고 나머지 규제는 풀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상범 대한민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정책연구실장은 “고향사랑e음을 유일한 플랫폼으로 두는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일본처럼 민간이 참여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야 기부가 증가하고 제도가 활성화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고향사랑기부 민간플랫폼을 준비중인 위기브는 기부자에게 기부금 용도를 명확히 알리고, 답례품에 대한 소개 등을 함께 제공한다. 또한 지역 관광코스, 유명 여행지 등도 안내하고 있다. 기부자에게 기부에 따른 효능감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독려하는 것이다.
권 교수는 “243개 지자체의 특성과 특산물, 지역문제가 다양하고, 기부자들 역시 지역 특성에 따라 기부 이유가 다르다”며 “단일 플랫폼으로는 다양성을 수용하기 어렵다. 민간과 지자체가 각기 특성에 맞게 협업하며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개선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 실장도 “고향사랑기부제는 현재 중앙정부가 주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지자체를 믿고 권한을 줘 각자 새로운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시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제도 취지에 더 맞고,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