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케의 눈물 60] "탄광서 경비원 퇴직 후 폐암, 퇴사·흡연여부 별개…산재"
입력 2023.03.10 05:06
수정 2023.03.10 05:06
법조계 "복합요인 질병 발생시 책임 따지기 어려워…암, 유전·환경·생활습관 모두 고려해야"
"탄광근무 이력, 산재 인정에 영향 끼쳤을 것…폐는 회복 안 되는 장기, 특수성 있어"
"급여지급 기관서 인과관계 부정하는 경우 많아…결국 법정다툼 및 증거싸움으로"
"국가책임 인정하려는 사회적 분위기…법리 의존보다 사회정의 구현 우선한 판례"
탄광에서 경비 업무를 하다 퇴직 후 27년이 지나 폐암에 걸려 사망한 근로자가 법원에서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았다. 법조계는 탄광에서 경비 업무를 주로 봤고 퇴직 후 오랜 기간이 지났어도, 탄광에서 일했던 전력이 폐암 판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봤다. 나아가 이번 판결은 온전히 법리에 따르기 보다는,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폭넓게 산재 인과성을 인정한 판례라고 강조했다.
6일 서울행정법원 제13부(재판장 박정대 부장판사)는 사망한 A씨의 유가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유가족 승소 판결했다고 밝혔다. 앞서 A씨는 1962년부터 1989년까지 장성광업소와 강원탄광에서 근무한 가운데, 갱도에서 6년가량 작업하고 나머지는 경비 업무를 했다. A씨는 탄광 근무를 그만두고 27년 뒤인 2016년 1월 폐암 진단을 받아 그해 8월 사망했다.
근로복지공단 측은 A씨가 탄광에서 일하긴 했지만 갱도 내 먼지와 상관없는 경비원으로 근무했고, 25년간 매일 반갑씩 흡연을 해왔다는 점 등을 들어 업무상 질병을 인정할 수 없다고 봤다. 반면 법원은 A씨의 탄광 근무 이력과 폐암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 유족 측 손을 들어줬다.
이 재판에서는 탄광 근무 이력과 폐암 발병의 인과성 증명과 더불어 경비 업무 기간을 업무상 재해 인정요인에 포함해야 하느냐가 주요 쟁점이 됐다. 법조계는 특히, 폐질환의 특수성이 업무상 재해 인정 판단에 큰 영향을 끼쳤을 것으로 봤다.
더프렌즈법률사무소 이동찬 변호사는 "어떠한 결과를 일으킨 원인이 하나라면 판단이 쉬우나, 이번 사례처럼 복합요인으로 발생했을 경우 직접 책임을 따지기 어렵다"며 "특히나 암은 단일요인으로 발생하는 게 아니기에 유전적, 환경적, 생활습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자연적으로 회복하는 심장 등의 장기와 다르게 폐는 회복이 안 되는 부위다. 먼지나 진폐증을 일으키는 물질들이 외부에서 들어올 경우 폐에서 빠져나가지 못하고 축적되기 때문에 갈수록 안 좋아질 수밖에 없다"며 "흡연이 암을 발병케 한 주 원인일 수도 있으나, 암 발병을 촉진한 데에는 진폐증이나 탄광에서 일했던 과거력이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했을 것"이라고 부연했다.
법무법인(유한) 바른 김미연 변호사는 "경비 업무와 별개로 채탄을 6년간 했다는 사실이 폐암 발병과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며 "산재 여부 판단시, 기간이 오래 지나고 여러 원인이 복합적으로 적용돼서 유발된 결과라고 해도 이 원인이 결과발생에 어느 정도 기여를 한 바가 있다면 인과관계가 인정될 수 있다"고 전했다.
법무법인 에이앤랩 신상민 변호사는 "상황적 원인과 근로환경을 하나씩 따지는 게 산업재해 인과관계 증명의 핵심이다"며 "인과관계를 판단할 때는 특수환경 근로자가 그 환경으로 인해 얼마나 질병이 촉진되고 빠르게 발전했는지를 따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급여지급 기관에서 인과관계를 부정하는 경우가 많아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기 쉽지 않고, 법정 싸움까지 이어지는 경우가 상당수라고 설명했다.
실제 앞서 2018년에도 근로복지공단은 19년간 탄광에서 근무한 80대가 진폐증을 앓다가 숨졌으나 산업재해로 인정해주지 않았다. 결국 최종적으로 법원에서 유족 측 손을 들어주기는 했으나, 유족은 3년 가까이 공단과 법적 다툼을 이어가야 했다.
신 변호사는 "업무상 재해 인정 판결시 진료자료나 유사자료, 전문의 소견서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하는데, 결국은 증거싸움이다. 그러나 퇴직 후 증거를 만들기 위해 병원을 다니거나, 진단을 축적해 놓는 경우는 흔치 않다"며 "대부분 증거로 인정받지 못한다. 재해를 인정받기 위해서는 본인이나 가족이 직접 회사 재직 중, 퇴직 후 꾸준히 진단을 받아 인과관계를 증명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이 변호사는 "원고 입장을 많이 들어준 케이스 같다. 만약 원고가 패소해 유족급여를 받지 못했다면, 향후 탄광 근로자가 암에 걸려 업무상 재해 인정을 받고자 해도 인과관계 입증이 더욱 어려워졌을 것"이라며 "정부 입장에서 국가책임을 인정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맥을 같이한 판결이라고 본다. 온전히 법리에 의존한 판단은 아니고, 사회정의 구현을 위해 폭넓게 인과성을 인정한 상당히 타당한 판례"라고 해석했다.
신 변호사는 "일반적인 환경이 아닌 특수한 환경에서 근무하는 근로자의 산재 인과관계 입증에 대해 잘 보여준 판단"이라며 "퇴직하고 오랜 시간이 지났다면 산재 인정을 받기 어렵다는 통념을 깨준 데 의미가 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