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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수사 '밀행성' 침해 우려…대법 '압수수색규칙'에 거듭 반발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입력 2023.02.20 03:18
수정 2023.02.20 03:18

대법, 형사소송규칙 개정안 입법예고…피의자·변호인·피압수자 참여권 부여

검찰 "참여권 범위 무한정 넓혀 수사·재판 지연, 증거 인멸 위험성 높여"…변협도 비판적

대법 "기존 법리, 대검 예규가 보장한 것 이상으로 참여권 넓히는 것 아냐"

3월 14일까지 각계 의견 수렴해 최종안 확정…6월 1일부터 시행

검찰이 정진상 전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의 사무실 압수수색을 마친 뒤 압수물을 들고 나오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피의자의 압수수색 참여권 강화 등을 핵심으로 한 대법원의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을 두고 검찰이 수사의 '밀행성'이 침해될 것이라고 우려하며 거듭 반발하고 있다. 장시간 공을 들여 전자 증거를 수집해야 하는 방위산업·간첩·기술유출 범죄의 경우 피의자 압수수색 참여권이 늘어나면, 밀행성이 침해되면서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해진다는 것이다.


19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대법원이 이달 초 입법예고한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에는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은 피의자, 변호인 또는 피압수자에게 (압수수색) 집행에 참여할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는 신설 조항이 있다.


검찰은 피의자의 압수수색 참여권을 보장하는 기본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개정안의 문구가 피의자·변호인에게 '무한정' 참여권을 주는 것으로 읽힐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 경우 수사의 밀행성이 침해돼 사실상 수사가 불가능해 진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은 피의자 뿐만 아니라 피의자 주변인이나 피해자 같은 제3자의 소유물을 압수하는 경우도 자주 발생한다. 검찰은 이같은 점 때문에 대법원의 규칙 개정안이 실행되면 수사 중 수집하는 증거와 수사 진행 상황을 사건 관계자가 실시간으로 피의자에게 알려주는 경우가 생길 것이라 우려한다.


특히 밀행성이 성패를 가르는 '간첩' 사건이나 '기술유출' 수사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것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개정안대로라면 간첩이나 기술유출 첩보로 수사에 착수한 수사기관은 수사 대상자와 이메일을 주고받은 모든 사람, 이메일에 첨부된 파일의 작성자와 소지자, 해당 정보의 주체 등을 압수수색 과정에 참여시켜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압수수색 참여권 통지를 받을 사람이 한둘이 아니니 수사 정보가 샐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다. 또 일부가 "참여권을 보장받지 못했다"며 이의를 제기하면 수사가 지연될 수 있고, 이를 악의적으로 이용하는 '수사 방해'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디지털 성범죄 영역에서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걱정도 나온다. 불법촬영 성관계 동영상이 피해자의 휴대전화에만 남아있어 압수했는데, 압수 후 증거 선별 과정에 피의자가 참여했을 때다.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전경.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대검찰청 관계자는 "개정안은 범위가 불명확한 전자정보 '소유자 등'에게도 참여권의 범위를 무한정 넓혔다"며 "수사와 재판의 지연, 증거 인멸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고, 선별 전 정보의 무분별한 공개로 피해자의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대법원은 검찰이 개정안의 취지를 잘못 이해했다는 입장이다. 개정안이 제3자 소유의 물건을 압수할 때 피의자의 참여권을 무조건 보장해야 한다는 내용은 아니다는 것이 대법원 측 주장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기존 판례로 형성된 법리나 형사소송법, 대검 예규 등이 이미 보장한 것 이상으로 참여권을 넓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개정안에 나오는 "피의자, 변호인 '또는' 피압수자"라는 표현은 이들 가운데 누군가에게 참여권을 보장하면 된다는 의미로 해석해야지, 피의자나 변호인을 '반드시' 포함하라는 뜻이 아니라는 것이 대법원 주장이다.


예를 들어 피해자 소유의 전자증거를 압수했다면 참여 대상은 피압수자인 피해자이므로 피의자에게까지 따로 참여권을 보장하지는 않아도 된다고 한다. 또 피의자가 압수수색 과정에 참여하는 때는 피의자 본인의 물건과 정보가 압수된 때로 한정하면 된다고 한다. 이는 현행법에서도 적용되고 있다.


대법원은 아울러 검찰이 우려하는 간첩·기술유출 등 범죄 수사도 형사소송법 122조가 '급속을 요하는 때'는 압수수색 통지가 필요하지 않다고 정하고 있으니 지금과 달라질 게 없다는 입장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그러나 "'피의자, 변호인 또는 피압수자'는 병렬적으로 읽힐 수 있다"며 "수사·재판 과정에서 피의자 측이 제3자 압수수색의 참여권을 달라고 주장할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고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또 "법원은 '급속을 요하는 때' 같은 예외 규정이 있지 않냐고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기술유출 사건인데도 판사가 압수수색영장에 피의자의 참여를 명시해 문제가 된 경우도 드물지 않다"며 "수사하는 사람의 입장도 들어봐야 하는데 개정안이 그런 과정 없이 만들어진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대법원은 오는 3월 14일까지 형사소송규칙 개정안에 관한 각계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확정한다. 시행은 6월 1일부터다.


이와 관련해 대한변호사협회(변협)도 비판적 입장을 내놨다. 변협은 의견서에서 "피의자가 장차 발부될 압수수색 영장의 집행에 미리 대비하게 함으로써 실체적 진실 발견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박찬제 기자 (pcjay@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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