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압수수색 영장에 '검색어 적시' 요구하자…검찰 "수사 차질" 반발
입력 2023.02.14 11:18
수정 2023.02.14 12:34
검찰 "'박사방' 사건에서도 파일명 은어로 변형"
"국보법 위반, 부패 사건 수사에도 어려움 있을 것"
법원 "압색 집행계획 참고해 영장 대상 범위 특정 가능"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를 도입하면서 영장 청구 단계에서 어떤 검색어로 압수수색을 진행할지 미리 제시하라고 요구해 검찰과 갈등을 빚고 있다. 법원은 "과도한 신상털이식 압수수색 관행을 개선하기 위한 것"이란 입장이지만, 검찰은 "디지털 성범죄와 마약, 간첩 등의 수사에 중대한 차질이 빚어질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13일 동아일보에 따르면 최근 법원행정처는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할 때 '분석에 사용할 검색어, 검색 대상 기간 등 집행계획'을 적시해야 한다는 내용을 포함한 형사소송규칙 일부개정 규칙안을 입법 예고했다. 이에 따르면 압수수색 과정에서 제출하지 않은 검색어로는 검색할 수 없고, 만약에 검색하더라도 파일을 압수할 수 없게 된다.
하지만 압수수색영장 사전심문 제도를 반대하는 검찰은 '검색어 제시'까지 현실화될 경우 수사에 막대한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피의자들이 범죄를 감추기 위해 은어를 사용하거나 일부러 맞춤법을 틀리게 하는 일이 많은데 이 경우 해당 파일을 압수할 수 없다는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텔레그램을 통해 조직적으로 아동·청소년 성 착취물을 제작 및 유포한 이른바 '박사방' 사건에서도 파일명이 여러 은어로 변형되며 동영상이 제작 유포됐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검찰이 압수한 성 착취물 파일명을 보면 파일명을 여고생을 뜻하는 비속어인 'ㄱㄷㅇ'으로 해 놓는 등 은어를 사용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 '증권1', '증권2' 등 증권 관련 파일로 위장하거나 단순 숫자, 의미를 알 수 없는 알파벳 나열 등으로 변형한 사례도 있었다. 어떤 파일명으로 위장할지 모르니 법원에 미리 검색어를 제시하기 어렵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검찰은 또 텔레그램 등으로 유통되는 마약 사건의 경우에도 신조어가 수시로 만들어지고 위장이 많아 검색어를 제한할 경우 수사가 어렵다고 지적했다. 홍완희 대구지검 강력범죄수사부장은 최근 검찰 내부망에 올린 글에서 "필로폰을 의미하는 은어 중 '아이스'가 있는데 마약 사범들은 수사를 피하기 위해 아이1스, 아이☆스, ㅏㅣ스, I스, 아이S, 아이s 등으로 표시한다"며 “무한대의 표현이 존재하는데 검색어를 기재하라고 하니 수사 실무를 이 정도로 모를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했다. 검찰은 북한 공작원과 은어와 암호, 약어 등을 주고받는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이나 각종 부패 사건 수사에도 비슷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반면 법원행정처는 그동안 검찰이 압수수색영장을 청구하며 별건 수사를 위한 '끼워넣기'를 하거나, 구체적인 내용을 기재하지 않고 범위를 광범위하게 기재한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맞서고 있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과도한 압수수색으로 인권 침해를 방지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법원행정처 관계자는 "검사가 검색어 등을 미리 제출하면 법원은 사안의 실체 및 압수수색이 필요한 대상과 범위를 용이하게 파악할 수 있다"며 "압수수색 집행계획을 참고해 영장 발부 여부 및 영장의 대상과 범위를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이 관계자는 또 "검찰의 우려는 과하다. 마약 수사 등의 특수성을 충분히 설명한다면 아예 검색어를 제한하지 않거나 검색어를 일정 정도 제한하되 다소 광범위한 유형의 검색을 허용하는 영장 발부도 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