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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연예단상②] 안예은의 재즈풍 무당음악 ‘창귀’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입력 2023.02.16 08:43
수정 2023.02.17 09:15

안예은의 노래 '창귀' ⓒ뮤직비디오 화면 갈무리

몸이 찌뿌둥할 때 들으면 좋은 음악들이 있다. 취향에 따라 기분에 따라 선택은 다양할 터이지만, 찌르르 온몸에 기를 충전해 주는 노래가 필요한 순간에 ‘창귀’를 듣는다.


안예은이 가사를 곡을 입힌 ‘창귀’는 사실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다. 한국적 음률과 장단, 곡의 분위기가 안예은의 음색과 창법에 안성맞춤인 데다 틀에 갇히지 않고 자유자재로 롤러코스터를 타는 느낌은 탁월한 재즈 가수의 노래를 들을 때처럼 밀도 있게 차오르는 만족감을 선물한다.


지난 2021년 8월 1일 세상에 나온 노래 ‘창귀’의 댓글들을 읽어보면 참 재미있다. ‘웬만한 무당 뺨치게 기가 센 창가’라며 곡 전반에 넘치는 ‘센 기’를 칭찬하기도 하고, ‘다니기 너무 힘들어 사표를 쓴 직장에 드디어! 후임이 들어와 그만두게 된 선임이 인수인계하는 기쁨과도 일맥상통하는 노래’라며 내용에 공감을 표하는 이도 있다.


‘창귀’는 어떤 노래인가. 안예은이 노래를 선보인 바로 다음 날 소속사 공식 유튜브 계정을 통해 공개한 영상을 보면 가사에 담긴 뜻이 자세히 설명돼 있다. 영상은 50년이 지난 2071년의 미래, 안예은이라는 이름의 고전문학 선생님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해 교과서까지 실린 노래 ‘창귀’를 설명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


우선 제목부터 보면, 창귀는 ‘갈팔질팡 창, 귀신 귀’라는 한자를 써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귀신 또는 ‘창’이라는 이름을 지닌 귀신이라는 뜻일 수 있다. 안예은 선생님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전자의 뜻에 힘이 실린다. 그럼 귀신은 왜 갈팡질팡하는가, 안 선생님은 우리의 전통 설화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범(호랑이)에게 잡아 먹힌 사람, 그의 귀신이 창귀다. 창귀는 성불하고 싶어 범의 수발을 들며 곁에 붙어 있다. 그가 성불하는 방법은 자신을 대신해 범에게 잡아 먹힐 사람을 대령하는 일이다. 내가 성불하자면 사람을 꾀어 호랑이 앞에 데려가야 하고, 자신의 억울하고 원통한 심정을 생각하면 산길을 걷다 지친 나그네에게 물을 주겠노라며 또 다른 이를 속이는 게 내키진 않으니 마음이 갈팡질팡한다. 그러다 드디어 범의 먹잇감이 걸려들었고, 결국 창귀는 범에게 그를 바치고 구천을 떠돌던 신세에서 벗어난다.


“이거 시험에 꼭 나와!” 호통치기도 하고, “조느라 못 들은 친구에게 설명해 주라”는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하는 안예은 선생님의 설명을 듣노라니, 악덕 직장에 다니다 사표를 쓴 직장인의 비애와 기쁨에 고스란히 겹친다.


범이 악덕 기업이고, 인간다운 삶을 꿈꾸며 사표를 쓴 이가 창귀이고, 이런 직장에 다른 사람을 끌어들이는 게 맞나 갈등했으나 막상 후임이 들어오니 ‘얼씨구나, 좋다’ 인수인계하고 나간다. 안예은 선생님의 설명대로 2절 후렴구의 ‘얼씨구나, 좋다’를 범이 부르는 것이라면, 이제 좀 머리가 굵어진 직원 대신 뭘 몰라 놀려먹기 좋고 일 시켜 먹기 좋은 새로운 직원을 업체도 환영한다.


호러송, 호러가수, 무당음악, 안예은이 장르다 ⓒJMG(더블엑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안예은이 의도했든 하지 않았든 ‘창귀’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며 ‘열정페이’를 강요당하는 숱한 청춘의 ‘탈탈 털린’ 영혼을 위로했다. 또 다른 이유, 저마다의 사연 속에 ‘창귀’는 자신의 상황에 맞는 가사로 들릴 수 있고, 전통에 뿌리내린 안예은의 창법과 산신령과 동자 귀신이 들락날락하는 듯한 음색은 다친 마음들을 토닥인다. 당연히 의도하고 희망했을 것이고, 그래서 각박한 세상살이에 온몸의 에너지가 방전돼서 ‘충전’이 필요할 때 찾게 되는 것이리라.


지난 2015년 말 방송을 시작한 ‘K팝스타’ 시즌5에서 안예은은 첫 무대부터 눈에 띄었다. 구별되지 않을 수 없는 차별성이 도드라졌다. 하지만 이후 화면에서 사라졌다. 이후 우예린과의 듀엣 무대 ‘분홍신’으로 재부각된 안예은은 화면 안으로 돌아왔고, 시종일관 자작곡으로 도전해 최종 준우승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당시 예심에서 심사위원이었던 박진영은 안예은의 개성은 눈에 띄나 기발하거나 특별할 것 없다고 일갈했고, 또 다른 심사위원 양현석은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데 대중이 공감할 것인지 의문을 제기했다. 하지만 마지막엔 달랐다. 박진영은 “사람 자체가 작품”이라고 극찬했고, 양현석은 “완벽한 무대”라고 만점을 줬다.


혹시 ‘창귀’만 듣고 낯설거나 특히나 부적을 연상시키는 문양에서 시작해 요지경 속을 비추는 듯한 영상에 섬뜩함을 느꼈더라도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른 노래를 더 들어보기를 바란다. 양현석과 박진영이 바뀌었듯 당신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영화에만 호러 장르가 있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 최초 호러 가수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기기묘묘한 분위기를 자아내며 ‘가수=장르’인 안예은, 답답한 속 뻥 뚫어주는 ‘무당음악’과도 같은 힐링송의 매력에 다가가는 것도 오늘을 즐거이 사는 방법의 하나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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