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종선의 캐릭터탐구㉛] ‘카지노’ 차무식 vs ‘대부2’ 비토 꼴레오네
입력 2023.01.04 11:51
수정 2023.01.30 14:52
배우 최민식이 힘을 쫙 뺐다.
드라마 ‘카지노’(연출 강윤성)에서 인생역정 끝에 필리핀의 카지노 왕이 된 남자 차무식으로 분했는데, 영화 ‘범죄와의 전쟁: 나쁜놈들 전성시대’(감독 윤종빈, 2012)의 최익현처럼 능글능글하게 연기했다면 아쉬웠을 것이다. 메소드 연기의 일인자답게 새로운 인물이 되어, 담백하게 우리 앞에 섰다.
# 대부…차무식에게서 비토 꼴레오네가 보인다
차무식의 말과 행동에 드러나는 성격을 보노라면 영화 ‘대부 2’(감독 마틴 스콜세지, 1974)의 비토 꼴레오네(로버트 드 니로 분)가 연상된다.
차무식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당면한 문제나 맡겨진 임무를 해결하고, 뱉은 말은 반드시 지키고, 아내와 자식을 챙기고, 후배들에게 좋은 형 노릇을 하고, 믿는 후배 부탁이라고 일면식 없는 사내에게 거금을 턱 내준다. 비토 꼴레오네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제과점 종업원부터 도둑질, 올리브오일 유통까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다. 약속은 꼭 지키고, 배신하지 않는다. 아내의 부탁으로 이웃집 과부의 집 임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 돈을 내민다.
내게 어려움이 닥친다면, 웬만해선 해결하기 힘든 문제라면 더더욱 찾아가고 싶은 사람. 무식과 비토는 믿을 만하고 정감 있고 융통성 있는 ‘대부’이다. 알고 보면 법과 한 편인 사람이 아님에도, 정의롭지는 않아도 섣불리 악인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판단을 유보 시키는’ 보스다.
# 최민식-로버트 드 니로의 이유 있는 ‘유연함’
최민식과 로버트 드 니로는 인간미 넘치는 대부를 유연하게 연기했다. 흔히 생각하는 거칠고 사나운 캐릭터의 조직 보스와 다르다.
결국엔 보스가 되지만, 두 남자의 인생 면면은 보통의 우리와 다르지 않다. 차무식만 봐도 아내 폭행을 일삼고 도박에 찌든 ‘아버지와 다른’ 인생을 살고 싶어 하는 우리, 가난하다는 이유로 괄시받는 천덕꾸러기로 살기보다 돈 많이 벌어 주변 사람들에게 야박하게 굴지 않고 후하게 베풀며 ‘폼나게’(멋지게) 살고 싶은 우리의 희망과 욕망이 보인다. 그런 인물이기에 뜨겁게 요동치게 연기하지 않고, 강물 흐르듯 덤덤하게 표현해낸 두 명배우의 선택에 무릎을 치게 된다.
사실, 로버트 드 니로와 최민식의 연기 결은 ‘대부 2’와 ‘카지노’의 이야기 흐름 방식과 맥을 같이 한다.
# 배우의 연기-작품의 결은 ‘닮은 꼴’
‘대부’ 시리즈들과 ‘카지노’는 하나의 사건이나 특정 시점의 이야기에 집중해 속을 파고드는 작품이 아니다.
‘대부 2’를 보면, 비토 꼴레오네가 미국에 이민 온 이탈리아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대부로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다. 영화 속 현재 시점에서, 그의 아들 마이클 꼴레오네가 조직의 외연을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번듯한 기업으로 변모시키려는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 냉철한 판단과 잔인한 결행 속에 가족마저 잃고 외로운 존재가 되는 모습과 대비시키면서 ‘이상적 보스’의 모습을 비토를 통해 상기시킨다.
그렇게 비토의 인생은 과거 이야기다 보니 마치 영웅담 들려주듯, 깊이 있게 파고들기보다는 한 발짝 떨어져 큼직큼직한 사건들을 술회하듯, 통시적으로 회상된다. 4화까지 공개된 ‘카지노’ 역시 마찬가지다. 비루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는 데 급급했고 조금만 고개를 들라치면 밟혀야 했던 차무식이라는 인물이 세상에 제 자리를 만들고 주변에서 촉망받고 추앙받는 인물로 성공하기까지의 과정을 조망한다. 마치 차무식의 인생을 5층이나 10층, 너무 떨어지지는 않은 위치에서 내려다보며 읊듯, 옛날이야기 들려주듯 보여준다. 그 과정에서, 한국 현대사의 도도한 흐름과 차무식의 인생역정이 자연스럽게 함께 물결친다.
# 한 인물에 관한 짧은 필름, 인생을 닮은 연출법
마틴 스콜세지 감독이나 강윤성 감독의 의도적 이야기 전개 방식이지만, 혹자는 “인물의 감정선이 중간중간 끊어진다”거나 “등장인물이 많아 복잡하고 지루하다”고 평하기도 한다. 흥미롭게 느낀 사건(일테면 북파 요원 활동)인데 깊이 들어가지 않고 다음으로 넘어가거나 한 인물의 인생을 통으로 다루다 보니 여러 인물이 들고나서, 당연히 그렇게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위험 부담을 안고도 ‘인생 혹은 인생에 관한 기억을 닮은’ 연출 방식을 선택하는 이유는 감독이, 작품이 하고 싶은 얘기가 있어서다. 복잡다단한 전개, 모든 인물을 다 기억하지 못해도 우리는 ‘대부 2’를 명작이라 부른다. ‘대부’에 이어 나란히 미국 아카데미 작품상을 받을 만큼, 형만 한 아우라고 말한다. 왜일까. 아들 마이클의 얘기만 해도 영화 하나가 나오고 아버지 비토의 얘기만 해도 흥미롭지만 두 인생의 대비를 통해 ‘어른이 된다는 것’, 인생의 의미가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게 한다.
‘대부 2’에 비춰 보면, ‘카지노’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이제 4화, 시즌1의 절반만 공개됐을 뿐이다. 차무식이 어떻게 제법 영어를 잘하는지, 어떻게 제 몸을 지킬 수 있을 정도의 전투력과 싸움의 기술을 지니고 있는지, 어디서 그 깡다구와 배포가 나오는지, 왜 겁 없이 사람을 믿고 주머니를 여는지, 그리고 생존력과 문제해결 능력이 유달리 강한 이유와 카지노에 인생을 걸게 된 배경이 무엇인지 정도를 알았을 뿐이다.
# ‘카지노’는 지금부터다…전반부 ‘클래식’ 매력 유지 기대
얘기는 현재 시점이 된 지금부터다. 게다가 ‘대부 2’의 비토에겐 그를 막아설 자가 없었지만, 21세기 정의와 공정을 중시하는 대한민국에서 최무식을 무소불위의 대부로 놔둘 리가 없다. 그것도 막강한 대결 상대가 투입된다. 바로 오늘 공개되는 5화부터, ‘카지노의 왕’ 최무식을 잡을 한국 경찰 오승훈(손석구 분)이 특파된다. ‘범죄도시 2’를 뒤집어놨듯, 배우 손석구가 어떻게 판세를 바꿀지 주목된다.
개인적으로 바라기는, 이야기 시점이 현재가 됐고 강력한 상대가 등장했다고 해도, 인생을 닮은 ‘유장한 작품의 결’과 오랜만에 만나는 ‘클래식풍의 매력’을 잃지 않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감독 강윤성이 ‘카지노’를 통해 우리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 선명히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