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 파고든 '빌라왕' 눈뜨고 코 베인 세입자들 [기자수첩-부동산]
입력 2022.12.23 07:02
수정 2022.12.23 07:02
집값 하락기, 깡통전세·역전세 등 세입자 주거불안 가중
제도 허점 파고든 전세사기, 세입자 알 권리 강화해야
기준금리 인상과 집값 하락세가 이어지면서 임대차시장 불안이 계속되고 있다.
매매가격이 전셋값과 비슷하거나 더 낮은 '깡통주택'이 증가하고 계약 당시보다 전세 시세가 더 떨어진 '역전세'도 많아졌다. 이에 따라 임대차계약이 종료됐음에도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도 크게 늘었다.
HUG가 집주인을 대신해 세입자에게 갚아준 전세보증금은 월간 기준 최고치를 기록했다. 지난 11월 기준 보증사고로 인한 전세보증금 대위변제액은 1309억원(606가구)으로 한 달 전보다 222억원 늘었다. 올 11월까지 누적 대위변제액은 7690억원에 이른다.
주택경기 침체 분위기 속 세입자들의 주거 불안을 더 키운 사건이 터졌다. 수도권에서 1139가구의 빌라·오피스텔을 사들인 일명 '빌라왕', 40대 김씨가 지난 10월 사망하면서 수백명의 세입자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김씨는 '무자본 갭투자' 방식을 취했다. 집값과 전셋값이 비슷하거나 시세 파악이 힘든 신축 빌라를 집중적으로 사들여 임차인의 보증금으로 또 다른 집을 사고, 그 집에 새로운 임차인을 받는 돌려막기 방식이다.
세입자들 가운데 HUG의 전세보증보험에 가입한 경우라면 구제받을 수 있으나 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세입자들은 손 놓고 있을 수밖에 없다. 이 같은 방식의 전세사기가 횡행할 수 있는 데는 임차인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제공 받을 환경이 갖춰져 있지 않단 점이 큰 것으로 보인다.
통상 부동산시장은 정보 비대칭성이 심한 시장이다. 하늘 아래 같은 부동산이 없고 부동산에 대한 정보는 공급자가 수요자보다 더 많이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다. 임대인이 작정하고 이렇게 범행을 저지르면 임차인은 속수무책 당할 뿐이다.
이번 빌라왕 사건과 관련해 지난 22일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전세보증금 피해 임차인 설명회'에 참석한 피해 임차인 대부분은 10월께 김씨가 사망한 사실조차 제때 인지하지 못했다.
한 피해 임차인은 "임대인이 사망한 사실도 12월이 지나서야 알았다"며 "전세계약을 태어나 처음 해봤는데 하루아침에 전세사기 피해자가 됐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좀 알려달라"고 하소연했다.
이미 정부는 세입자 알 권리를 강화하는 임대차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했고, 국회에는 관련 법안들도 상정돼 있다. 그럼에도 전세사기는 반복해서 일어나고 있다.
세입자는 집주인과 본인이 들어가 사는 집에 대한 정보를 투명하게 알 수 있어야 한다. 제도적으로 집주인과 세입자 간의 정보 격차를 줄일 수 없다면 강제력을 동원한 법적 장치들을 마련하는 게 필요하다.
정부는 제2, 제3의 빌라왕 사건을 막기 위해 국토교통부, 법무부와 관련 TF를 꾸리고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전세사기와 관련해선 제대로 된 단속뿐만 아니라 재발 방지를 위한 제도 보완도 약속한 상태다. 이제라도 미비한 제도의 허점을 파고들어 선량한 세입자를 울리는 전세사기를 막을 실효성 있는 대책이 마련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