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영화 뷰] "성장 더딘 곪은 일본 영화계"…거장에서 신예까지 "한국 영화계 봐라"
입력 2022.11.04 14:13
수정 2022.11.04 14:13
'기생충', '오징어 게임' 신드롬과 필연적으로 비교
"젊은 감독들이 해외에서 인정받고 오히려 일본으로 역수입"
올해 개최된 제35회 일본국제영화제는 일본의 해외 수출 방안과 성 추문 행위가 이어지고 있지만 개선되지 않는 폐쇄적인 시스템을 논의하고 지적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만화·영화·애니메이션 등 콘텐츠 시장 규모가 약 243조 원(2021년 기준)으로, 미국과 국에 이어 세계 3위를 기록 중이지만 일본 영화인들은 현재의 자국 영화계의 성장이 더디다고 정의하며, 이유가 여기 있다고 보고 있다.
일본 영화는 만화 원작을 실사화한 작품이 대부분이며, 흥행 역시 애니메이션과 실사화 한 영화가 대부분이다. 일본의 역대 박스오피스 1위는 '귀멸의 칼날 극장판: 무한 열차편' 2위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3위 '타이타닉', 4위 '겨울 왕국' 5위 '너의 이름은', 6위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 7위 '하울의 움직이는 성, 8위 '모노노케 헤미', 9위 '춤추는 대수사선 더 무비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10위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이다.
여기에서 실사 영화는 '타이타닉'과 '춤추는 대수사선 더 무비2: 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두 편이며 나머지는 모두 애니메이션이다. 이 같은 현실에 제작자 요시자키 미치요는 "일본 영화는 흥행 성공할 것 같은 시나리오에만 투자를 하니까 다들 원작이 인기 있는 것만 영화화 하려고 한다"라고 꼬집었다.
지난달 30일 도쿄국제영화제에서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열풍을 일으킨 한국의 영화들과 달리 일본 영화들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지 않고 있음을 인식해 '일본 영화 해외 진출 가능성'이라는 제목의 토크를 진행했다. 이 자리에는 가와무라 겐키 감독과 이시카와 케이 감독이 자리했다.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해외 영화제에 초청되는 경향이 있는 일본 영화의 종류에 대해 상업 영화와 예술 영화의 차이를 언급했다. 일본 내에서는 자본이 큰 상업 영화가 굳이 해외로 나갈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이것이 일본 실사 영화가 해외 관객에게 거의 도달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라고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일본 이외의 국가나 관객은 배제하고 국내 박스오피스만을 우선시하며, 해외 영화제 역시 국내 박스오피스를 늘리고 싶어 하는 장치로 여겨지는 점도 거론했다. 실제로 일본 내에서 젊고 재능 있는 감독들이 만든 독립 영화가 해외에서 먼저 인정 받고 일본으로 역수출 되는 현상이 적지 않다.
또한 이시카와 케이 감독은 폴란드에서의 영화 제작 방식과 비교하며 일본 업계가 영화 감독에게 관대하다는 것도 개선해야 할 지점이라고 바라봤다. 이시카와 케아 감독은 "내가 폴란드에서 공부할 때 관계자들은 항상 우리에게 영상을 더 짧게 만들라고 말했다. 1분이라도 남기고 싶은 장면이 있어도 관객을 위주로 만든다. 그러나 일본에서는 감독이 편집에 대한 압박감이 크지 않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감독의 영역을 침범한 것으로 본다"라고 지적했다.
이에 필연적으로 한국영화가 화두가 됐다. 가와무라 겐키 감독은 "가장 빛나는 한국 영화만이 해외에서 상영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낌없이 지출하고 있으며, 나는 그들의 생산자와 유통업자가 이상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서는 일반 영화 박스오피스의 90%가 국내인데, 차라리 그 수치가 50~50% 정도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시카와 감독 역시 국제 유통 업제와의 협업이 더욱 활발해져야 할 것으로 바라봤다.
2020년 '기생충'이 아카데미에서 작품상 및 4관왕을 차지했으며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신드롬을 일으켰다. 일본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를 통해 아시아 영화가 할리우드에서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과 기대, 제작 가치를 향상시킬 수 있는 기회라고 분석했다. 가와무라 겐키 감독은 많은 일본인들이 유럽 축제에 집중하고 있지만 북미 진출 역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고 충고했다.
제35회 도쿄국제영화제 전체 라인업을 공개하는 기자간담회 자리에서는 질의 응답 시간에 일본 영화계 성 추문 문제에 대한 언급도 있었다. 일본 영화계는 영화 감독 겸 배우 사사키 히데오에게 성폭력 피해를 당했다는 여성의 인터뷰가 공개됐으며 기노시타 호타가 연기를 가르쳐주겠다는 명목 아래 어린 배우나 배우 지망생을 집으로 유인해 성폭행한 사실도 폭로됐다. 또 일본의 유명 감독 소노 시온이 여배우들에게 자신의 영화에 출연하면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면서 성관계를 강요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일본에서는 미국의 하비 와인스타인 스캔들 이후 전 세계로 퍼져나갔던 미투 열풍 때도 크게 동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잇따라 증언들이 나오자 현지 매체들은 일본 영화 및 TV 사업이 권력 남용과 결정권자들의 성적 학대를 숨겨왔으며 폐쇄적인 성향과 시스템, 성인지 감수성이 다른 나라들에 비해 더뎌, 뿌리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후쿠나가 타케시 감독은 "일본 영화 촬영장에 대한 경험이 많지는 않지만 계층적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고 상황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직 이상적인 모습과는 거리가 멀지만, 그러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냈으며 배우 하시모토 아이는 "다른 배우들이 겪은 일에 대해 내가 말할 수 있는 건 없다. 다만 내가 주연을 맡게 되면 발언할 기회가 있다. 사람들은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시간을 내 내 말에 귀를 기울여준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다르게 대한다"라며 "촬영장에 있는 젊은 사람들이 소통할 수 있도록 돕고, 권력층의 안 좋은 전통을 버릴 수 있도록 돕고 싶다"라고 피력했다.
일본 거장 감독 고레에다 히로카즈도 지난 달 부산 해운대구 영상산업센터에서 열린 '영화 환경 개선을 고민하는 한·일 영화단체 간담회'에 참석했을 당시, 촬영장 성희롱·성폭력 해법에 대해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재 한국에서는 2018년부터 여성영화인모임과 영진위가 만든 한국영화성평등센터 '든든'이 영화산업 내 성희롱·성폭력 문제 해결 의지가 있는 영화인을 예방교육 강사로 양성하여 영화 현장의 특수성이 반영된 맞춤형 예방교육을 시행 중이다. 또한 영화계 내 다양성과 포용의 중요성을 알리는 '다양성 교육 과정'을 신설하는 등 영화계 내 예방교육 영역을 확대하고 있다. DGK 내에도 성폭력방지위원회가 마련돼 실태 조사 및 예방교육을 해왔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한국이 성폭력이 일어나기 힘든 구조를 영화계가 주도해 만들어나가고 있는 상황 등을 참고해 일본에서도 믿음을 줄 수 있도록 시스팀을 도입하는 힌트를 얻어 간다고 밝혔다. 이후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지난 달 31일 열린 도쿄국제영화제 토크 세션 '우먼 인 모션'에 참가해 "사람들이 쉽게 발언하고 불이익을 당하지 않도록 더 많은 지원이 필요하다. 직장에서도 존중 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인티머시 코디네이터(방송 공연계에서 강도 높은 노출이나 애정행위 장면을 촬영할 때 배우의 요구사항을 촬영진에게 전달해주는 직종, 현재 일본에서는 2명)가 더 늘어나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