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초코우유도 내 첫 직장도 사라져"... 푸르밀 직원 글 '눈길'
입력 2022.10.18 18:49
수정 2022.10.18 23:37
커뮤니티에 장문의 글 올린 푸르밀 직원 A씨 소회
"관리자로서 소비자들께 감사"
롯데그룹에서 분사한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17일 갑작스러운 사업 종료와 전 직원 정리해고를 통보한 가운데, 한 직원이 회사를 대신해 소비자들에게 감사 인사를 전해 눈길을 끈다.
18일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 따르면, '가나초코최애'라는 닉네임을 가진 푸르밀 직원 A씨는 이날 장문의 글을 올려 사측의 사업 종료 통지 후 소회를 밝혔다. 가나초코우유는 푸르밀의 대표 상품이다.
작성자 A씨는 "푸르밀은 나의 첫 직장"이라며 "이곳은 곧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고 운을 뗐다. 그는 "어릴 때 마시던 검은콩 우유, 엄마가 마트 다녀오실 때마다 사오셨던 비피더스, 기분이 울적한 날마다 자신을 위로해줬던 가나초코우유"라며 푸르밀 제품과의 추억을 떠올렸다.
이어 "이런 건 어떻게 만들어질까, 누가 만드는 걸까 늘 궁금했었다"며 "더 이상 소비자가 아닌 관리자로 나의 추억과 애정 담긴 제품을 다룬다는 게 설렜기에 부푼 기대감을 안고 입사했다"고 회상했다.
A씨는 "그러나 현실과 이상은 달랐다"고 했다. 그는 "잘 나가던 제품도 몇 년째 매출이 빠지기 시작하더니 윗사람들이 하나, 둘씩 사라졌고 직원들의 사기와 의욕도 점차 낮아졌다. 이리저리 치이며 버티고 버티다 결국 문을 닫는다"고 회사 부진을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 회사가 사라진다는 소문이 언제 퍼졌는지 아쉬워하는 사람들, 대량 구매하는 사람들을 여기서 볼 수 있었다"면서 "관리자로서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A씨는 마지막으로 "가장 아쉽고 속상한 건 우리 직원들이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추억이었다'고 말해주는 소비자님들, 지금까지 푸르밀 제품을 사랑해주셔서 참 고맙다"며 "제품들은 곧 세상에서 사라지지만 우리 제품에 담긴 개개인의 추억은 오래 기억해주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해당 글은 1300여개가 넘는 공감을 받는 등 순식간에 화제를 모았다. 누리꾼들은 "회사에 대한 애정이 느껴진다", "일방적인 해고 통지라니 너무 하다", "마지막 물량은 꼭 사먹겠다", "어디서든 잘 되실 분 같다", "자부심, 책임감, 주인의식을 갖고 일하는 사람은 이렇게 빛나는구나"며 응원을 보냈다.
많은 댓글이 달리자 A씨는 추가 글을 통해 "이렇게 많은 위로를 받을 줄 몰랐는데 공감해주신 분들 모두 감사하다"면서 "우리 제품을 이제는 못 즐기게 돼 아쉽다는 분들께는 죄송스러운 마음이 크다. 생산 중인 물량까지는 판매 예정이니 발걸음 해서 마지막을 함께 추억해 달라"고 전했다.
앞서 푸르밀 측은 전날 전 직원에게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돼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현재까지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돼 부득이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는 통지문을 400여명의 전 직원들에게 발송했다.
회사가 통보한 사업 종료 및 정리해고일은 11월30일로, 당초 50일 전까지 해고 통보해야 하나 불가피한 사정에 따라 정리 해고를 결정했다고 푸르밀 측은 밝혔다.
푸르밀은 1978년 설립된 롯데우유를 모태로 하는 기업이다.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사해 2009년 푸르밀로 사명을 변경했다. 푸르밀은 2018년 첫 영업손실 15억원을 기록한 데 이어 2019년 88억원, 2020년 113억원, 2021년 121억원 등으로 적자 폭이 증가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