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아침에 ‘길바닥’ 신세…푸르밀, 히트상품·직원들 어쩌나
입력 2022.10.19 05:34
수정 2022.10.19 06:43
내달 전직원 400여명 정리 해고 통보
LG생건에 매각 불발 후 사업 종료 결정
신동환 대표 2018년 취임 후 적자 지속
수년간 적자행진을 면치 못했던 유제품 전문기업 ‘푸르밀’이 결국 백기를 들었다. 사업 종료의사를 밝히면서 비피더스를 비롯한 다수의 히트 제품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고, 푸르밀을 떠받치던 전국의 직원들 역시 하루 아침에 뿔뿔히 흩어지는 상황이 됐다.
지난 17일 푸르밀은 최근 전 직원에게 사업 종료와 정리해고를 통지하는 메일을 발송했다. 정리해고 대상은 푸르밀 전 임직원으로 지난해 감사보고서에 따르면 406명 수준이다. 해고 시점은 11월 30일로, 정리해고 대상은 일반직과 기능직 전 사원이다.
푸르밀은 메일을 통해 “코로나19 사태 등으로 4년 이상 매출 감소와 적자가 누적됐다”며 “내부 자구 노력으로 회사 자산의 담보 제공 등 특단의 대책을 찾아봤지만 가시적인 성과가 없는 상황에 직면, 부득이하게 사업을 종료하게 됐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푸르밀은 1978년 4월 설립된 롯데우유를 모태로 하는 기업이다. 2007년 롯데그룹에서 분사하며 푸르밀로 사명을 바꿨다. 이 과정에서 신준호 회장이 부산 소주업체인 대선주조를 인수한 뒤 사모펀드에 매각해 핵심 기반인 부산에서 외면을 받았다.
업계는 푸르밀의 사업 종료를 두고 매각 시도가 무산된 영향이 큰 것으로 보고 있다. 지난달까지 푸르밀은 LG생활건강과 인수를 추진했지만 무산됐다. 당초 LG생활건강은 푸르밀이 보유한 콜드체인에 관심이 있었지만, 설비가 노후화된 탓에 사업성이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수년간 지속된 적자 역시 큰 원인이 됐다. 2018년 신동환 대표가 취임한 뒤 매출은 2301억원에서 매년 감소하며 지난해는 1800억원으로 줄었다. 영업이익 역시 2018년 손실로 전환되며 2019년 88억원, 2020년 113억원, 2021년 123억원으로 적자 폭이 커졌다.
유업계 관계자는 “표면적이긴 하지만 지속적인 실적악화가 푸르밀을 사업 종료로 이끈 것으로 보인다”며 “유업계 전반적으로 어려운 환경인데, 저출산으로 장래성도 좋지 않은 데다, 원부자재 및 물류비를 비롯한 인건비 상승 속 매각이 마지막 카드였지 않나 싶다”고 분석했다.
◇ 남은 사람들은 어쩌나…유통업계부터 전 직원들까지 ‘후폭풍’
이번 푸르밀의 결정으로 비피더스 등 효자상품 노릇을 톡톡히 해왔던 제품들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다만 푸르밀과 손잡고 자체브랜드(PB) 제품을 생산·판매하던 편의점 업계 제품들은 새로운 제조사를 찾아 판매를 지속한다는 방침이다.
가장 큰 문제는 푸르밀만 바라보던 직원들이다. 당장 내달부터 직원들의 길바닥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됐다. 하루 아침에 해고 통보를 받은 직원들은 당혹스러워 하고 있다.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는 푸르밀 직원으로 추정되는 글이 잇따라 올라오고 있다. 한 푸르밀 직원은 게시글을 통해 “위약금, 손해금 내고 다 그냥 정리하라고 내려왔다”며 “남은 직원들만 봉된 상황”이라고 전했다.
공장의 생산직도 하루 아침에 밥 벌이 수단을 잃게 됐다. 당장 이직을 해야 하는 상황이지만, 동종업계로의 이직 역시 쉽지 않을 것이라는게 업계 관계자의 전언이다. 최근 유업계는 저출산을 비롯해 대외 악재로 인한 어려움이 크다.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많다.
익명을 요구한 유업계 관계자는 “향후 직원 고용승계 문제는 물론 낙농가를 비롯해 자재납품업체, 협력업체들과의 관계 정리도 필요할 것”이라며 “정리하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문제점이 상당할 듯 하다. 생산직의 경우 동종업계로의 이직이 순탄치 않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푸르밀 노동조합(노조)은 거세게 저항하고 있다. 지난 17일 입장문을 내고 “신준호·동환 부자의 비인간적이고 몰상식한 행위에 분노를 느끼고 배신감이 든다”며 “강력한 투쟁과 생사기로에 선 비장한 마음을 표출한다”고 밝혔다.
이어 “푸르밀 노조에서는 회사 정상화를 위해 전주·대구공장별로 인원도 축소해왔다. 일반직 직원들은 반강제적인 임금 삭감까지 당했다”며 “회사 정상화를 위한 어떤 제시나 제안도 듣지 않고 노사 간 대화 창도 닫았다. 그러나 회장 급여는 삭감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전국의 대리점들도 애가 타긴 마찬가지다. 부산 지점의 한 직원은 “영남쪽은 푸르밀만 취급하고 있는 대리점이 100여 곳이 넘는다. 상품 공급이 안 되고 판매를 못 하게 되면 밥벌이가 없어지는 것이고 삶의 터전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어 “올해 대리점을 하려고 권리금을 주고 뛰어든 사람들 입장에서도 날벼락”이라며 “대리점을 하려고 냉장시설을 비롯해 차까지 전부 구입했을텐데 경제적 손실이 어마어마하다. 미리 공지라도 해줬으면 대응책을 고심했을텐데 직원들을 바보로 만들었다”고 날을 세웠다.
영남 지방의 한 대리점주는 막막함을 토로했다. 그는 “본사 직원들한테는 이메일로 통보를 했다고 하는데 대리점들은 회사로부터 공식적으로 들은 말이 하나도 없다”며 “직원들은 퇴직금이라도 받겠지만, 대리점들은 통보하면 그냥 끝나버린 거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푸르밀 제품만 취급해 영업을 한 지 올해로 22년 째다. 혼자 하다가 아들까지 사업자를 내서 같이 하고 있는 상황인데 졸지에 한 가족에 두 명이나 실업자 신세가 돼 생계가 막막하다”며 “어떻게 대응을 해야 할지 대리점 모두 고심하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유업계 일각에서는 이번 푸르밀의 사업 종료로 일부 기업들은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푸르밀의 비피더스 등 히트 상품이 빠진 자리를 다른 기업의 제품이 대체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유업계 관계자는 “비피더스가 사라지게 되면 동종업계 중 동원의 같은 이름 제품인 발효유가 떠오를 가능성이 높다”며 “푸르밀이 판매하는 우유들은 천원 중반대의 탈지분유를 섞어 만든 저가 우유가 많은데, 빙그레에서 그 자리를 차지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