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 '박진 해임안' 통과에 갈등 고조…향후 정국도 '먹구름'
입력 2022.09.30 00:30
수정 2022.09.30 02:19
주호영 "외교수장 등에 칼 꽂는 행위"
박홍근 "與, 대의기간 결정 수용해야"
민주당, '尹 외교라인' 전체 교체 요구
국힘, '김진표' 사퇴 요구…'정국 급랭'
여야가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을 두고 갈등을 빚고 있다. 집권여당인 국민의힘은 외교 수장의 등에 칼을 꽂은 민주당을 맹비난했고, 제1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박 장관을 넘어 외교라인 전체의 교체를 요구하며 맞받았다. 이번 해임안 가결을 계기로 여야 간 갈등이 더 깊어질 것으로 전망되는 만큼 향후 정국도 급속히 얼어붙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오후 6시 30분 국회 본회의에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했다. 상정된 해임안은 재적 의원 170명 중 168명의 찬성표로 가결됐다. 반대와 기권은 각각 1명씩이었다. 여당인 국민의힘 의원들은 표결에 참석하지 않았다. 헌정사상 7번째이자 윤석열 정부 출범 후 첫 국무위원 해임건의안 통과다.
본회의에 앞선 오후 5시 30분 의원총회를 연 국민의힘은 곧바로 국회 로텐더홀에서 박 장관 해임건의안 상정을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이 시위에는 정진석 비상대책위원장, 주호영 원내대표 등을 비롯한 국민의힘 의원들은 본회의장으로 입장하는 민주당 의원들을 향해 '민생외면 정쟁유도 민주당은 각성하라', '협치파괴 의회폭거', '해임건의안 즉각철회하라'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해임건의안 철회를 요구했다.
주 원내대표는 "어제 이재명 대표가 '실용과 국익'이라는 표현을 썼는데, 과연 이런 일련의 행위가 실용과 국익에 맞는지 다시 한 번 들여다보기를 강하게 촉구한다"며 "민주당은 박 장관 책임을 묻는 과정에서 'IRA(인플레이션 감축법)도 오케이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IRA에 관해 치열한 외교활동을 벌이는 박 장관에게 불신임·해임건의안이라는 족쇄를 채우고 낙인을 찍고, 등에 칼 꽂는 행위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
여야 간 갈등은 오후 6시 본회의 개의 직후 시작된 송언석 원내수석부대표의 의사진행발언에서 본격화됐다. 송 원내수석은 "민주당이 힘의 논리로 의사일정을 변경해 국회법을 악용해 협치를 파괴했다"며 "국회의원의 한 사람으로서 앞에 계신 여러분이 국회를 붕괴시키는 것을 지켜보는 제 심정은 참담하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한 실정"이라고 주장했다.
의석에 있던 민주당 의원들은 송 원내수석이 발언하는 동안 "들어가세요", "창피한 줄 알아라"는 등 야유를 보냈다. 특히 송 원내수석이 "문재인 전 대통령이 중국에서 10끼 중의 8끼를 혼밥할 때, 기자들이 폭행을 당할 때 여러분은 무엇을 했느냐"고 지적하자 민주당 의원들은 더 큰 고성을 질렀다. 이에 국민의힘 의원들은 곧바로 "이재명 욕설", "이재명 검찰 출석하라"고 맞받아쳤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송 원내수석의 발언 직후 전원 퇴장했다.
이어 민주당은 위성곤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의 발언 직후 표결을 강행하고 해임건의안을 가결시켰다. 해임건의안 가결 직후 양금희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논평을 내고 "토론과 협의를 통해 운영돼야 하는 국회가 '정부 발목꺾기'에만 집착하는 민주당의 폭거로 또다시 무너졌다"며 "민주당이 주장하는 외교부 장관 해임 건의 사유는 그 어디에도 합당한 이유라곤 찾아볼 수 없다"고 반발했다.
김미애 국민의힘 원내대변인 역시 민주당의 박진 장관 해임 건의안 처리에 대해 "의석수를 무기로 티끌만한 정치적 이익을 도모하기 위해 실력행사를 한 김진표 국회의장과 더불어민주당을 강력히 규탄한다"며 "민주당의 무모한 시도로 외교전쟁에 나서는 외교부 장관의 명예를 실추시켰고, 자국의 신임도 받지 못한다는 낙인으로 나라의 품격을 훼손시켰다. 정쟁을 멈추고 이성을 되찾아 이제 민생의 장으로 들어오라"고 촉구했다.
민주당은 박 장관 해임건의안이 윤석열 정부의 '외교 참사'를 바로잡기 위한 조치라는 입장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해임안이 가결된 뒤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이번 순방외교가 실패했다, 부족했다고 문제를 지적하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넘어가려는 것 자체가 잘못됐다"며 "여기에 대한 명백한 책임을 묻는 것은 당연지사다. 의회 민주주의를 정면 부정할 것이 아니라면 설령 건의의 형식일지라도 국민을 대표하는 대의기관의 결정 사항을 반드시 수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해임건의안 가결로 인해 여야 간 충돌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오영환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브리핑에서 "대통령의 욕설만 남은 외교참사를 막지 못한 것도, 대통령이 빈손으로 돌아오도록 한 무능도 모두 박진 장관과 외교라인의 책임"이라며 "윤 대통령은 오늘에 이른 무능한 외교를 앞으로도 고수하겠다는 생각이 아니라면 박진 장관 해임건의안을 수용하고 대통령실 외교라인 역시 즉각 쇄신하기 바란다"며 박 장관을 넘어 윤 정부 외교라인 전체의 교체를 주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민주당은 다음날인 30일 '윤석열 정권 외교참사 거짓말 대책위원회'를 공식 발족하면서 대여(對與) 공세를 강화하겠단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여야 합의 없이 해임건의안을 상정한 책임을 물어 오는 30일 오전 중 김진표 국회의장 사퇴 권고안을 제출하며 맞받을 계획을 내놓는 등 여야간 '협치'는 상당 기간 난망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