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영화 뷰] 신인 감독들, Z세대 이야기로 실험대 위 선다
입력 2022.09.07 13:05
수정 2022.09.07 13:07
'말아' 곽민승·'성적표의 김민영' 이재은 임지선·'성덕' 오세연 감독 주목
코로나19로 일정이 연기됐던 대작들이 올 상반기 연이어 출격해, 틈이 없었던 스크린에 유망주 신인 감독들이 Z세대 이야기로 출사표를 던진다. 입소문과 공감이 어떤 작품보다 중요한 독립영화들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Z세대는 물론 전 세대에 공감이 이어질지 관심이다.
곽민승 감독은 첫 장편 데뷔작 '말아'로 관객과 만났다. '말아'는 사랑도 취업도 잘 되는 것이 하나 없는 스물 다섯 살 주리(심달기 분)가 엄마가 운영하는 김밥가게를 대신 지켜야 하는 미션을 받으면서 시작되는 청춘의 성장 일기다. 특별한 일도 꿈도 미래도 없는 주리에게 코로나19는 사회와 거리 두기를 할 수 있는 명분이다. 미래가 불안하지만 그저 주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배가 고프면 배달음식, 심심하면 캔맥주를 따고는 한다.
꿈이 없는 무기력한 일상 속에서 엄마는 외할머니를 돌보러 시골이 내려가야 하는 상황. 주리는 모든 게 귀찮지만 김밥가게 문을 열지 않으면 가만두지 않겠다는엄마의 협박에 못 이겨 김밥을 만다. 주리는 홀로 김밥가게를 지키며 단골손님을 맞이하는 순간, 멀어졌던 사회와 서서히 거리를 좁혀나간다. 하루, 이틀, 단골손님과의 만남이 반복될 수록 소소한 이야기로 근황을 나누며 기력을 회복해나간다.
주리는 얼어붙은 사회 속에서 무기력하게 살아가는 청춘의 한 모습이다. 곽민승 감독은 갈등 없이 일상에 있을 법한 이웃의 이야기로 코로나19 이후 우리가 어떻게 삶을 지속해야 하는지 따뜻한 문법으로 제시한다. 제47회 서울독립영화제 개막작, 제22회 전주국제영화제, 제7회 울주세계산악영화제, 제9회 무주산골영화제 등에 초청된 이력이 있다.
'말아'가 청춘이 싱그러운 빛을 찾아나가는 이야기였다면 독특한 제목의 '성적표의 김민영'은 Z세대 감정으로 탄생한 학창 시절의 우정 공식이다. 고3 시절, 낙엽이 굴러가는 모습만 봐도 깔깔거리기 십상이었던 민영, 수산나, 정희는 삼행시 클럽으로 친목을 다져나간다. 수능을 100일 앞두고 삼행시 클럽 해체를 선언하고, 다른 진로를 선택하며 각자의 세계로 나아간다.
하버드로 진학한 수산나, 대학에 입학한 민영, 테니스 아르바이트를 시작한 정희는 멀리 떨어져 있어도 화상 통화를 통해 삼행시 클럽의 명맥을 이어가려 하지만 쉽지 않다. 민영은 삼행시 클럽이 뒷전이 돼버렸고 수산나는 영문으로 삼행시를 잃더니 시차로 만남 시간에 불만을 갖는다. 정희는 달라진 두 사람을 보며 서운함만 쌓인다.
영원할 것 만 같았던 학창 시절의 우정이 스무 살 문턱을 넘으며 느슨해지는 경험은 누구나 경험해 봤을 것이다. 우정에 대한 상실감과 각자에게 유리하게 편집된 기억들은 서로는 물론 스스로에게 상처가 된다. 실망과 서운함의 크기는 애정과 비례한다.
'성적표의 김민영'은 개봉 전부터 전주국제영화제,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대상을 비롯하여 국내 영화제 관객상을 휩쓸었을 뿐만이 아니라 제18회 홍콩아시안국제영화제, 제41회 하와이국제영화제, 제22회 샌디에고아시아영화제, 제36회 마르델플라타국제영화제에 공식 초청되며 해외영화제까지 사로잡았다. 이 이야기는 2017년 단편으로 내놓은 이야기를 임지선, 이재은 감독이 장편으로 확장시킨 작품이다. "한국 영화계에서 본 적 없는 새롭고 신선한 이야기와 연출"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1999년생 오세연 감독의 '성덕'은 솔직함과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다큐멘터리다. '내가 학창 시절을 다 바쳤던 스타가 범죄자로 추락했다'라는 문구로 시작하는 '성덕'은 실제 오세연 감독의 이야기다. 7년 동안 정준영을 좋아했지만 성범죄 이력이 드러나면서 졸지에 '성덕'(성공한 덕후)에서 범죄자의 팬이 됐다. 애정과 동경이 분노와 배신감으로 바뀌고, 나아가 자괴감까지 든 오세연 감독은 자신의 감정을 기록하며 굿즈 장례식을 치른다.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팬이라는 이유로 상처 받은 경험이 있는 주변 사람들을 찾아가기 시작한다.
'성덕'은 맹목적으로 스타를 사랑하는 수동적인 형태로 비치는 팬이 아닌, 이제는 주체적으로 나서며 문제를 지적하고 대처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오세연 감독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정준영이나 주변 지인들이 좋아했던 스타들이 아닌, 상처 받은 팬인 '나'에 집중하며 답을 찾아나간다.
'성덕'은 26회 부산국제영화제 월드프리미어 첫 공개 이후 광주여성영화제, 부산독립영화제, 서울독립영화제, 인천인권영화제, 마리끌레르영화제, 무주산골영화제 등 국내 유수 영화제와 제25회 우디네극동영화제에 초청되어 매진 행렬을 기록한 화제작이다. 배급사에 따르면 이 작품은 공감과 입소문을 얻으며 개봉 요청이 쇄도하기도 했다.
세 작품의 감독들은 우울한 청춘, 인간관계, 우정, 팬심이 Z세대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영화라는 관점을 통해 보여준다. 요즘 사회는 이제 사회생활을 시작하게 된 Z세대를 신인류처럼 바라보고 있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우리가 지나왔던 과거의 경험이라는 공통점을 파고든다.
이들은 모두 국내 독립영화제와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현재 한국 오락 영화에 치우쳐 있는 극장가에 재기 발랄한 세 작품이 작품성에 이어 흥행까지 성공하며 영화계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지 기대된다.